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한 사상에 빠지기 쉽다.
- 공자 -

위의 글을 인용하며, 어느 남성작가가 요즘 시대 여성들을 우려하며 쓴 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고, 시댁에 잘하지도 않으면서 친정의 재산 상속에는 사생결단으로 소송을 벌여 문중의 재산까지도 나누려 하는 딸들의 태도를 우려하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잘 이해하고, 그 정신을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여성들이 깊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들이 동등한 유산상속자로 상속법이 바뀐 지 십 수 년이 되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셔도 법이 바뀌기 전에 상속을 마쳐버린 집안의 딸들은 억울할 것이고, 상속받을 재산이 있는 집안 딸들은 속으로 ‘야호!’를 부르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상속재산 못지않게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도 따른다. 재산이 많은 집이야 그 욕심으로라도 아들딸 동등함을 부르짖으며 자기 몫의 부양에 힘을 다하겠지만, 재산이 없는 부모가 걱정이다. 자식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부양을 기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경우 딸들은 모르쇠하며 오빠가 아들이니까 하고 미루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 어떤 며느리들이 기꺼이 부모를 모시겠는가. 그리하여 벌어지는 광경이 형제들의 부양 의무 회피이다.

아픈 부모로 인해 많은 집들의 형제자매가 의가 벌어지고 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흐르면서 양성 평등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여성들이 자신의 이권만 내세우지 말고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연로하신 친정 부모가 살아계신다.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새어머니가 계시니 병원을 가신다거나 하면 시간이 있는 내가 두 분을 보살펴 드리는 편이다. 주위에서 효녀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실은 효녀는 못된다.

미룰 사람이 없어서 좀 더 일할 뿐이다. 그런 나도 내 아들과 며느리가 다니러 오면 외가가 가까운데도 인사를 다녀오란 말을 못했다. 내가 종종 다니고 있으니 바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손자가 생기고 재롱을 떨기 시작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이처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손자인데, 이놈들이 커서 제 아비한테만 인사 다니고 할미 할애비를 안 찾아온다면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외가에도 꼭 인사를 다녀오게 한다. 애들이 인사가면 바쁜데 뭘 왔냐고 하면서도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모른다.

자식이 7남매나 되는데도 평소 얼마나 쓸쓸하시면 씨앗 값도 안 나오는 채소를 심어놓고 하루에 몇 차례씩 둘러보실까. 방울토마토나 상추가 나올 때면 봉지봉지 냉장고에 넣어놓고 누구라도 방문하면 반갑게 나눠주신다.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더더욱 기다리실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눈물 난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 맘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즘, 어이없는 소식을 가끔 들으며 나는 이만큼 살고 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시댁을 무시하지 않는 두 며느리가 들어온 것에 감사하고, 며느리들이 제 남편을 존중하며 잘 대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아이들을 둘씩이나 낳아 키우는 것도 감사하다.

또한 두 아들이 장모님을 잘 만난 것도 감사하다. 못된 장모들은 시시콜콜 참견하며 사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야단쳐서 부부금슬까지 멀어지게 한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그런 일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흔히들 며느리를 딸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지만, 딸이 없는 나로서는 정 붙일 곳이 며느리 말고 어디 있으랴. 그러나 너무 스스럼없이 대하다보면 서로 섭섭할 일이 생길 테니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크게 기대를 안 하면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욕심은 되도록 버리고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또한 서로 예의를 지켜 거리를 유지하도록 나를 훈련시키며 사는 중이다.

점심때 식당에 가보면 남자는 몇 안 보이고 여성들 판이다. 동창회나 계모임 등 여기저기서 여성들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남편을 비롯한 남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잠시 드는 순간이다. 하지만 저녁에는 남성들이 많겠지 하며 위안해보기도 한다.

내 주위에 딸만 셋을 둔 여성이 있다. 세 사람의 장모인 셈이다. 그분은 딸들에게 늘 시댁이 우선임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시댁에 잘 해라, 좋은 것 있으면 먼저 드려라, 명절에도 우선 시댁으로 가라, 주말에도 자주 시댁에 가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딸들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그래서인지 딸들이 시댁에 잘 하는 것을 본다. 차가 없는 시어머니가 장보려면 힘들다고 설탕이나 밀가루, 식용유 등 필수품들을 명절이나 제사 전에 미리 사다드린다고 한다.

주말이면 외식도 시켜드리고, 드라이브도 시켜드린다고 한다. 이처럼 친정엄마의 올바른 가르침이 우리의 효 문화를 지속되게 하리라.

요즘은 ‘시댁, 처가 동등하게’를 많이 실천한다. 남녀 동등시대니 그래야 당연할 것이다. 헌데 그 동등하게 때문에 멍이 드는 남성, 혹은 여성이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꼭 동등하게 보다는 좀 기우는 쪽에 더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젊어서 우리 시댁은 가난하여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했는데, 친정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하시고 나보다 경제력이 나으시니 용돈 한번 제대로 못 드리고 살았다.

그때는 좀 속상하고 친정 부모님께 죄송했는데, 살다보니 시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친정아버님이 살아계시니 용돈도 드리고 종종 외식을 시켜드릴 기회가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남편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부모님도 오래 사셨으면 좀 더 효도할 수 있었을 텐데, 어려운 시기에 고생만 하시다 가신 부모님이라 제대로 효도를 못했으니 말이다.

딸을 둔 여성들께 부탁하고 싶다. 딸들에게 시댁, 친정 너무 따지지 말고 기우는 쪽에 더 좀 잘하고, 남편 기죽이지 말라고 말이다. 제일 행복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할 때라고 하지 않았는가.

본인이 터득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부모들이 가르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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