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다. 9월은 아직 더위가 남아있어 '잔서지절(殘暑之節)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계절은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나무는 아직도 초록빛이지만, 안으로는 붉고 노란 빛깔들을 준비하고 지난여름 유난스럽던 뙤약볕 아래서 고군분투하던 곡식과 열매가 탐스럽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밭농사를 많이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농사에 비해 밭농사는 일이 많다. 부모님은 그 중에서도 유독 손이 많이 가는 고추 농사를 하셨다.

지금이야 밭이 땅값도 비싸고 소득도 높아 농가에서 반기지만, 그때는 부의 척도가 쌀농사 몇 가마니 소출에 소 몇 마리 키우느냐로 가늠되던 시절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린 시절 고추농사는 그저 지겹고 하기 싫은 일중 하나였다. 숙제 한다는 핑계로 일부러 늦게 귀가하기 일쑤였고 손수레의 무게만큼이나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

공일이면 온 가족이 출동하던 고추밭은 평생 어머니의 일터요 유일한 소득원이자 희망이었다. 뙤약볕 아래 가물가물 끝도 보이지 않던 이랑에 엎드려 종일 땀을 흘리면서 억척같이 일을 하셨다.

어릴 때 본 어머니는 늘 강하고 크신 분이셨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생때같은 자식을 앞세우고 서럽고 아픈 인생의 역풍 속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땀으로 눈물로 토해내며 고추밭을 일구어 가셨다.

홀로 남은 자식들을 지켜 내야하는 어머니는 강해져야 했고, 이웃들 보다 더 많은 수확과 품질 좋은 고추농사로 돈을 샀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들의 공부 밑천이 되었다.

밭농사 못지않게 자식 교육에도 남다른 열의를 가지셨던 어머니는 근교에서 고추농사도 일등 자식농사도 일등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셨다.

세상에 겁날 것이 없고 거침없이 살아오시며 든든한 육남매의 방패 막이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맥없이 쓰러지셨다. 뇌출혈이셨다.

일곱 시간의 대 수술로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이셨고 병원 생활을 거쳐 집으로 모셨으나, 지금의 어머니는 불과 몇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계신다.

우선 좋은 약과 치료를 병행했다고는 하지만 몸이 완전치 못하여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작년 내 출판 기념회에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하셨던 고운 자태는 어디가고, 무대 위에서 내가 발을 씻겨드리자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소녀 같은 어머니는 어디로 가시고 손수 한복 고름 하나 야무지게 멜 수 없는 몸이 되셨다.

"이렇게 살아서 뭐한다냐...’"대나무 숲을 지나오는 바람처럼 가늘게 서러움을 토해 내신다. 누구보다 자존감이 강하신 어머니가 스스로 몸을 단장하지 못하고 살림살이를 살뜰히 챙기지 못하시는 현실이 얼마나 원통하고 기가 막히실까.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 얼마나 당황해하실까.

그런 어머니는 어디에다 화풀이를 하고 어떻게 순간을 이겨내실까. ‘어머니가 운다. 하잘 것 없는 아주 같잖은 나의 짜증에 칠십 구세의 어머니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이 흐른다.’

어느 시인이 쓴 ‘어머니의 눈물 ’을 민망하게도 요즘 자주 대면한다. 언제나 크고 강하신 분 인줄 알았던 내 어머니의 실상은 깨어지기는 쉽지만 밖에서 속을 볼 수 없는 질그릇 같은 존재였다.

겉으로는 강철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자식들의 말한 마디에 일평생 지녀온 신념마저 포기할 수 있는, 무심한척 자신을 중무장하면서도 가슴으로 울어야했던 약한 분이셨다.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초적인 감성을 흔들어놓는 이름 어머니. 가난하던 유학시절 어머니의 빈자리가 못내 아쉬워 반백이 된 지금도 마음이 허허로운 날이면 그 품으로 달려가게 된다.

일과 중에 틈틈이 들려 어머니계시는 방문을 열어보면 방 한쪽에 힘없이 늘어진 노인이 누워있다. 낯선 현실이 속상하다.

이러시다가 정말 삶의 의지를 놓치게 될까봐 한 끼 된장찌개를 주문하며 어머니를 독려한다. 그때마다 힘없는 몸을 일으켜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내시고 혼자 입맛 없어 하실까봐 마주앉아 보지만 눈물인지 밥인지 목을 틀어막는다.

언제나 신앙처럼 떠받들던 장남 앞에서 어머니는 어린아이가 된다. 머리가 아프다고,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또 오늘은 배가 아프다고 하신다.

더 큰 병원으로 모시고가 검사도 받아보고 싶고 더 좋은 치료도 받게 해드리고 싶고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며 좋은 구경도 시켜 드리고 싶다. 내 삶에 얽매여 바쁘다는 핑게로 진작에 건강을 체크해 드리지 못한 후회와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진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 갈 때는 당연한 것 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결여됐을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내게 소중하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제 오랜 시간 차를 탈수도 없고 자유로이 걸어 다닐 수 도 없는 시점에서야 그것을 알게 되니 안타까움과 회한뿐이다. 지금까지 내 어머니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명해 본적이 있었던가?

시인 타고르는 사랑은 ‘이해’ 라고 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고 공감은 타인의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 사람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제 우리 곁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허락해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 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길에 어머니를 뵈러갔다.  홀로 잠드신 어머니가 외로워 보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자못 서늘하여 얇은 이불을 머리위로 끌어올려 본다.

살아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살기가 팍팍할수록 더 그리워지는 어머니. 지치고 힘든 발걸음이 달려갈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지금 전화버튼을 누르면 ‘밥은 먹고 다니냐?’ 신호음을 따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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