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는 공주시 남쪽, 부여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그런데 이 고개 이름을 우금치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혼동 끝에 어느 게 맞느냐고 묻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둘 다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지명의 역사성을 고려하면 하나로 통일해 쓰는 것이 옳다.

우리 역사에서 순수한 우리말을 대대적으로 한자어로 바꾸어 표기한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당나라 문물을 수용한 신라 진흥왕 때고, 또 한 번은 일제가 세밀한 측량을 거쳐 지도를 새로 만들면서 모든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였다.

그런데 우리말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원래 이름과는 전혀 다른 뜻의 글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크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 ‘마’를 그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가축 ‘말’(馬)을 뜻하는 글자로 바꾼 것이라든지, ‘위’를 뜻하는 우리말을 가축 ‘소’(牛)를 뜻하는 글자로 바꾼 것들이 그 예다.

원래 고개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은 ‘티’나, ‘재’다. 그런데 한자에는 ‘티’를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다. 그래서 ‘치(峙)’라는 한자를 빌려 표기했다.

또한 순수한 우리말에서는 ‘치’는 ‘티’의 구개음화된 발음이다. ‘같이’라는 단어가 ‘가티’가 아니라 ‘가치’로 발음되는 게 그 예다.

그런데 고개 이름을 뜻하는 ‘티’는 원래 ‘틔’였기 때문에 구개음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동이 생겼다. 같은 이름을 놓고 우리말로 할 때와 한자로 쓸 때 발음이 다른 두 말이 혼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주 주변의 몇 예를 들어보면 공주에서 논산 가는 길에 있는 ‘널(늘)티’와 판치(板峙), 반포 가는 길에 있는 ‘마티’와 ‘마치(馬峙)’, 청양 가는 길에 있는 ‘한티’와 ‘대치(大峙)’가 그 예들이다.

지명은 보수성이 강해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져도 옛 이름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한자 이름과 우리말 이름이 함께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우금티’와 ‘우금치’도 이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개 지명에는 그 유래에 얽힌 전설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말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엉뚱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큰 고개’를 뜻하는 ‘마티’에 말 (馬)과 관련된 전설이 생겨나는 것에 그런 예에 속한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널리 알려진 우금티 전설도 이와 관련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만약 ‘우금티’가 순수한 우리말이라면 이를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런 오해로 인해 ‘소’와 관련된 전설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은사이신 동초 선생은 우금티를 원래 ‘윗곰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도적이 많아 소를 끌고 늦게 가지 말라고 해서 우금(牛禁)이라 했다’는 전설은 그야말로 엉뚱한 조작이 아닐 수 없다.

또 이 전설의 신빙성이 문제되는 것은 조선시대 일부 문헌에 이 고개 이름의 한자 표기가 우금치(牛金峙)라고 된 것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본디 지명은 특정한 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지만, 이 이름에 역사성이 덧붙으면 그 이상의 의미를 생성해 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시간과 공간의 불가분성을 ‘스페이스타임’이라는 용어로 정리했고, 미하일 바흐찐은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예를 들어보자. ‘청산리’는 저 북녘 땅의 작은 마을 이름이지만 우리에게는 김좌진 장군의 통쾌한 항일 전투 승리를 떠올리게 한다.

‘황산벌’은 논산 지역의 작은 들이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는 결사 항전하던 계백 장군을 떠올린다.우금티는 고개 이름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동학농민전쟁이다. 그로 인해 이곳은 국가 사적지(제387호)로 지정되었다.

또 특별법에 의해 이곳에서 산화한 분들의 명예회복과 서훈도 추진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반면 자발적으로 나서 이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계승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시민 단체도 있다. 한 세기 전 처절한 전투 끝에 스러져 간 무명 농민군들의 구호(자주, 평등, 대동)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세계화 경쟁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사람들은 이 고개 이름을 줄곧 ‘우금티’라고 불러왔다. ‘우금치’라고 해서 어학적으로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명의 역사성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그 고유성을 살려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청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 ‘우금치’라고 표기된 것은 ‘우금티’로 통일하여 혼동을 줄여야 한다. 이제부터는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라고 제대로 불러주자.

▊ 우금티 영령 추모 제례 고축문

단기 사천삼백삼십이년 동짓달 열나흗날,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대표와 회원 일동은 백여 년 전 갑오년에 이곳에서 억울하게 산화하신 영령 앞에 삼가 아뢰나이다.

예로부터 농민들은 땅을 일구고 거름 주며 곡식을 가꿔 사람들을 기르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일한 만큼 정확히 되돌려 주는 대자연의 진리에 따라 남을 속일 줄도 모르고, 부귀영화를 탐하지도 않으며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박한 농민들도 나라의 위태로움과 위정자들의 탐학이 계속되자 일하던 손에손에 괭이와 낫을 들고 떨쳐 일어섰습니다.

그분들의 싸움은 출세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 안하고 잘 살자는 욕심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그 한 가지 소원밖에는 없었습니다.

들불처럼 타오르며 번지는 그 함성에 온 나라의 농민들이 다 합세했습니다. 그리하여 저 간악한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 가던 나리를 건져내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어, 최후의 진격지로 가는 길목인 이곳 공주 우금티에서 영령들의 발길은 더 나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심 없는 우국충정과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는 무자비한 신식 무기와 잘 훈련된 직업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꺾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이름을 부르며 저 산봉우리와 골짜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영령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역사에서는 영령들을 역도라고도 했고, 폭도라고도 했습니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먼 타향에까지 와서 죽은 것만도 억울한데, 거기다가 폭도와 역도라는 누명까지 씌워 두 번 죽이는 그 만행에 영령들은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하셨을 것이고, 명부에도 들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와 정의는 아무리 파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습니다. 영령들의 대의와 명분을 위한 희생은 고귀한 교훈으로 다시 살아나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동안 우리 공주에서는 뜻 있는 몇몇 사람들이 먼 객지에 오셔 억울하게 희생되신 영령들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조촐하게나마 해마다 치러 왔습니다.

그것으로 어찌 영령들의 하늘에까지 사무친 억울함이 달래질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없이 크나큰 가르침을 내려 주고 계신 영령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알고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늘 안타까웠던 것은 이 행사에 영령들의 직계 후손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뜻이 널리 알려져 올해에는 우선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몇 단체가 뜻을 합쳐, 당시의 행군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를 겸해 이 위령제를 같이 치르게 되었습니다.

늦기는 했으나 지금 영령들 앞에 함께 꿇어앉아 한마음으로 올리는 정성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옵소서. 내년에는 더 많은 지역과 단체가 동참하여 가히 전국의 모든 영령들 후손이 한 자리에 하게 될 것입니다.

영령들이시여. 세월이 많이 지나기는 했으나, 아직도 우리나라와 겨레는 그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치와 탐욕스런 지도자들로 인해 나라는 분단된 지 반 세기가 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불평등이 극에 달하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 고통의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멀쩡한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죄 없는 청소년들이 떼죽음을 당하는가 하면, 어여쁜 처녀들은 유흥가에서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팔아야 합니다.

농가마다 부채는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다 떠나버린 농촌에는 아이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품삯도 안 나오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들을 굽어 살피시어, 분단된 겨레가 통일되고, 국론이 하나 되어 부강한 나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보람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 그 보상이 따르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웃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나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세상이 되도록 힘을 보태 주옵소서.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전북과 충남의 기념사업회와 농민회 회원 모두는 삼가 간절히 아뢰오며, 작은 정성으로 마련한 간소한 제수를 올리오니 마음껏 드시기 바랍니다.

특히 올해 제상에는 저 전라도에서 영령들의 후손들이 손수 재배한 제수를 멀리서 가지고 와 함께 올리오니 즐거운 마음으로 흠향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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