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의 역사 현장과 공주 인물들-2
근현대사의 역사 현장과 공주 인물들-2
  • 조동길
  • 승인 2015.09.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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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지 못한 선각자의 꿈

정안면 소재지에서 천안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어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잔디가 잘 정비된 곳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여기가 바로 한말 개화파의 중심인물인 김옥균의 생가 터다. 그는 나라의 힘이 약해진 한말, 당시 정계의 실력자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 출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하는 과정에서 방법론상 대원군으로 대표되는 수구파와 대립,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는 개화파의 선두에 서게 된다.

개화당을 조직하여 근대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그의 노력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가고(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그는 끝내 암살자(홍종우)에 의해 피살된다.

이곳에서 차령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그 아래에 그가 성장했다는 유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출생지가 어머니 은진송씨의 친정인 대전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으나, 정안에는 그의 선대 조상들의 묘소 여러 기가 남아 있어 앞으로 더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순교의 현장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했던 조선조에서 서학(천주교)은 마땅히 배척의 대상이었다. 공주는 호서 지방의 행정 중심지답게 충청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서학의 정착이 빨랐던 곳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박해도 가장 심하게 이루어졌다. 그 박해의 현장이 지금 교육청 앞의 황새바위라는 곳이다. 충청도 땅의 천주교도들은 체포되는 대로 감영이 있던 공주로 압송되어 이곳에서 배교(背敎)를 강요당했고, 거절하면 곧 바로 처형되었다.

이도기, 이존창, 이국승, 문윤진 등을 포함하여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교인들이 여기서 참수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순교한 분 가운데 손자선은 성인으로 추존되기도 했다.

최근 천주교 교단과 공주시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이곳을 성지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 결과 천주교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성지 순례 장소가 되었고, 또 많은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보국안민의 횃불

공주 시내에서 부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턱에 위령비 하나가 덜렁 서 있다. 그 이름이 동학혁명군위령탑이다.

1894년 애초에는 탐관오리의 학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군은, 곧바로 ‘척양척왜’, ‘보국안민', '광제창생’ 등의 기치를 내걸고 내정 개혁의 요구를 하게 되었고, 이의 실현을 위해 남북접이 대대적으로 연합하여 서울 진격의 관문인 공주를 공격하게 된다.

이 싸움에는 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을 비롯하여 동학의 우두머리 손병희, 그리고 손화중을 비롯한 용장들이 모두 참여하였고, 공주 사람 이유상도 이 전쟁에 동참하여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우금티 전투에서 이들은 신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의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주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을 것은 자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이곳을 정부에서 사적지(387호)로 지정하였고,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 산화한 분들의 원혼이 조금이라도 달래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사업은 지지부진이다.

그들은 왕조에 항거한 역도들일 뿐이라는 식민사관의 인식이 아직도 엄존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 고개 넘어 이인에 유림에서 세운 의병정난비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국회에서 동학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그 후손들이 신고조차 잘 안 하고 있는 사실 또한 이를 대변한다 할 것이다.

신교육의 요람

공주 시내의 한 복판 언덕에 높이 서 있는 학교가 영명학교다. 이 학교는 백여 년 전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것인데, 우리나라 개화기 공주 지역의 교육에 큰 기여를 한 유서 깊은 학교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인물들 가운데는 독립운동가, 예술가, 정치인 등 수없이 많은데, 그 가운데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 근대 정치인 조병옥, 신문학 초창기의 소설가 방인근 등이 있다.

이들은 물론 공주 출신은 아니나 젊은 시절 한때 공주에 살면서 그들의 꿈과 이상을 키웠던 분들이다. 공주의 산과 들에는 아직도 이분들의 자취가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학

교 앞 속칭 앵산공원(정식 명칭은 중앙공원)에는 해방 후 잠시 도지사를 지내기도 했던 이 학교의 중흥자인 황인식 선생의 공적비가 서 있기도 하다.

박동진과 박찬호, 그리고 박세리

공주에서는 요즈음 삼박(三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박동진 옹과 미국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드림을 실현시킨 야구선수 박찬호, 여기에 프로골퍼 박세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박동진 선생은 고향 공주를 위하여 무릉동에 판소리 전수관을 짓고 후학들을 양성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나 그 전수관에서 여전히 그 유지가 전해지고 있으며, 박찬호와 박세리도 공주의 발전에 많은 기여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민속학자이자 민속극의 1인자인 심우성 선생도 고향 공주에 박물관을 건립, 새로운 문화·관광의 명소로 부각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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