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전통적인 학과 명칭인 영어영문학과, 불어물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중어중문학과 등이 어느 사이엔가 미국학과, 프랑스학과, 독일학과, 중국학과 등으로 바뀐 곳이 많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철학, 수학, 과학 등의 학문 영역과 큰 나라 이름 뒤에 ‘학’을 붙인 이 ‘신학문’들이 어떻게 병립할 수 있는지 필자로서는 가늠할 수 없지만, 위기 상황의 대학으로서는 불가피한 자구책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이름이 바뀐 학과에서는 과거 언어와 문학 중심 커리큘럼에서 문화와 비즈니스 등 취업에 유리한 내용으로 교육 내용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비단 외국어문학 관련 학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거의 전 방위적으로 대학의 모든 학과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취업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학과의 통폐합과 명칭 변경은 물론 교육 내용도 과감하게 뒤집어 버리는 게 작금의 대학 현실이다. 대학의 이념과 본질마저 위협하는 이런 실용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로 인해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할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도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는 지방 자치와 맞물려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학문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해 전부터 몇몇 대학에서 자신이 위치한 지역의 명칭을 붙인 강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양 강좌로 설강된 곳도 있고, 특정 학과의 전공과목으로 개설된 대학도 있다. 이

런 강좌는 대개 그 지역의 명칭 뒤에 ‘학’을 붙여 명명되는 경우가 많다. ‘충청학’이니, ‘영남학’이니 하는 게 그 실례다. 이런 강좌를 통괄하는 이름으로 ‘지역학’이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지역학 강좌가 발전하여 정식 대학의 학과로까지 이어진 곳은 아직 없지만, 이 낯선 새로운 학문은 양적 팽창에 몰두하던 대학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하나의 탈출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시군 지역까지 난립한 대학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 싸움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성화 내지 차별화된 학과나 교육 내용을 개발하는 것은 이제 필수적인 일이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학과 그 대학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 주민들과의 상호 협력 내지 상생 전략은 더욱 증대되고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이 생존하는 데 장애가 될 수밖에 없고, 동시에 지역 사회도 대학으로부터 고급 정보와 지혜를 빌려야 발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역학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공멸을 막는 장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주대학에 공주시의 지원으로 공주학연구원이 설립되었다. 한옥으로 건축된 사무실도 문을 열었다. ‘공주학’이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공주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생각할 때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그 명칭의 적합성은 빼어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연구원의 성격 정립과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에 있다.
이 연구원에 대한 공주시의 행·재정적 지원은 소모적인 낭비가 아니라, 공주의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로 보아야 한다.

이는 시장의 호불호에 따라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연구원 또한 공주에 대한 고답적인 학문적 연구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공주시의 장·단기적인 발전 전략 내지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 개발 및 제안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공주대학은 70년 역사를 가진 전통 명문 대학이다. 공주시 또한 옛 백제의 수도에서 고려, 조선 시대 내내 지역의 중심 수부 도시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주대는 최근 장기적인 총장 공백 상태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공주시 또한 인근 세종시의 안정적 정착과 연관하여 인구 감소는 물론 여러 면에서 도청 이전 시절 못지않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 해소를 위한 여러 대책들이 백가쟁명 식으로 난무하고 있지만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뚜렷한 합의점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공주시와 공주대학이 손을 잡고 공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공주학연구원이 그 연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면에서 연구원의 설립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공주시는 물론 시민들의 열정적 참여, 공주대학의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는 지혜의 산물인 아이디어와 정책이 만나면 공주대와 공주시의 위기는 충분히 극복되고 나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새로 출범한 공주학연구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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