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박목월 선생이 제일 싫어하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거짓말이고, 또 하나는 당신의 작품 가운데 「나그네」를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거짓말 건은 그렇다 치고, 대표작 건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본래 시 「나그네」는 조지훈 선생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시和答詩다. 그러니까 조지훈 선생이 먼저 박목월 선생에게 시를 보내고 이에 대해 박목월 선생이 답을 한 것이다. .

이러한 정보는 청록파 3인 시집인 『청록집』에 수록된 「나그네」와 「완화삼」을 보면 안다. 먼저 「완화삼」에는 그 제목 아래에 ‘목월에게’란 부제가 붙어 있고, 「나그네」에는 ‘술 익는 강 마을의 / 저녁노을이여―지훈’ 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박목월 선생의 시 「나그네」에 들어 있는 시 구절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이다. 이 대목은 조지훈 선생의 「완화삼」에 들어간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목월 선생도 당신의 작품 아래 그 부분을 따서 부제로 삼은 것이리라.

그러나 이 대목은 더 나아가 조지훈 선생의 한시 「여회旅懷」에 나오는 내용이다. 칠언율시七言律詩인 이 시에 ‘주숙강촌난석휘酒熟江村暖夕輝’ 란 구절이 나오는데 번역하면 바로 조지훈 선생의 「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가 되고 이를 다시 굴리면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의 한 구절이 된다. 시의 변천으로 보면 ①「여회」(조지훈)→②「완화삼」(조지훈)→③「나그네」(박목월)의 순이다.

어쩌면 박목월 선생은 당신의 다른 좋은 시도 있는데 하필이면 조지훈 선생의 시 구절이 들어간 이 작품을 당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독자들이 야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그런 시인들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읽은 대로 정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면 오히려 시의 평가는 맨 나중의「나그네」가 완성도 면이나 감동 면에서 가장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박목월 선생은 이 작품이 당신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니 시인과 독자의 거리는 아무래도 먼 듯싶다. 엘리엇이 말한 대로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는 충고를 가장 잘 실천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자료 삼아 이들 시 세 편을 적어보면 이러하다. 

① 旅懷(여회)

趙芝薰

 

千里春光燕子歸(천리춘광연자귀) 멀리 봄빛에 제비는 다시 오고
雲心水性動柴扉(운심수성동시비) 설레는 마음 사립문 열게 하는데
苔封路石寒山雨(태봉로석한산우) 깊은 산 이끼 낀 돌에 내리는 차가운 비
酒熟江村暖夕暈(주숙강촌난석훈) 술 익는 강마을에 저녁놀만 눈부시구나.
*원시의 일부만 옮김

② 완화삼玩花衫
―木月에게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③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芝薰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함께 읽는 시

도봉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