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명석(영문학박사, 세종교육연구소장)

약 30여년의 교직을 떠나려 한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다만 후회만 남을 뿐이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이 인도 갠지스강가에서 묵상의 회한으로 세상에 일갈한 것처럼 나 또한 미미한 무지의 길에서 방황하다 감당키 어려운 열정과 현실의 벽 앞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발을 디뎠다.

여행지가 아름다운 것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곳의 경치가, 먹거리가, 사람들이 좋아서 다소 위안이 될지 모르나, 진정한 여행객에게 그런 것 들은 잠시 모르핀은 될 수 있으나, 영원한 위안과 침잠은 될 수가 없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내면의 격랑의 파고가 영속적인 지적호기심으로 인도하는 한 고여 있고, 정지되어 있는 여행은 식상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간이 무지의 여행 이라면, 지금부터는 인지의 물결이 출렁이는 생동감 넘치는 희망의 여행이 될 것이다.

교육이 뭔지도 모르고 어벙하게 발을 디딘 세월이 30여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러게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고, 나는 이제 나를 되돌아보는 반추의 여정 앞에 섰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며,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지금 이 길도 이미 가야할 길이라고 좌표가 매겨진 이정표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가기에 앞서 나는 나 자신에게,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동료들에게, 학교와 지역사회에게, 그리고 국가와 민족 앞에 어떤 선생이었는지 묻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조금 더 있다 하지, 벌써 명퇴를 하느냐?”고. 이는 녹록치 않은 현실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준 따뜻한 걱정이고, 위로였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하게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 일차적 수준의 염려 때문이라면 단호히 거절한다.

수업 중 3분의 2의 학생들을 자게 만들고, 잘못된 비행을 목격하고도 외면하고, 민원이 두려워 고개를 돌리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 일신의 영달 때문에 비싼 국가 세금만 축내는, 그리고 학생들과 소통은커녕 시간만 때우는 무사안일로 교직을 정년까지 버티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자신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이 정도라면 그 누가 되었든 교직을 그만 두어야한다. 생계 차원이라면 나가서 다른 길을 가야한다. 나는 그렇게 변질되어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금이 적기라 생각하여 더 이상 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겠다 싶어 과감하게 나가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을 가지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 교육은 오로지 최소의 실패로 최대의 결과를 창출해야 하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창의적인 현장이어야 한다. 따라서 양심과 도덕성을 제일의 덕목으로 요구하는 곳이 교육현장인 것이다.

나는 이런 중차대한 가치에 지탱할 능력이 고갈되었기에 도망치듯 떠나고자 한다. 이는 교사로서 지난날의 과오가 너무나 많았기에 일종의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다.

더 열심히 가르칠걸, 더 열정적으로 연찬하여 사표가 될 걸, 더 온화하고 따뜻하게 대할 걸, 더 친절하고 여유 있게 지도할 걸, 더 꿈과 비전을 줄걸, 더 정확한 역사인식을 심어줄 걸, 더 분명한 합리적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이치를 알려줄 걸, 더 자주 나보다는 우리, 우리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의 웅대함을 제시해 줄 걸,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공부란 남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고, 더불어 상생하여 협력하고 공존하며, 세상을 보다 유연하게 살아가기 위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걸 하는 생각에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한없이 모자란 나의 그릇을 채워가련다. 1막1장의 여행길에서 이제 2막 2장의 새로운 길을 가련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내안의 나를 찾아서 거친 풍랑의 파고를 헤치고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사는 길이 뭔가를 찾을 것이며, 그 길로 긴 여행을 떠나는 진정한 나그네가 되리라.

"사람을 바꾸는 교육, 그 교육을 바꾸는 사람." "no child left behind."
“어떤 아이도 뒤쳐지게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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