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3일부터 17일간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 당진 솔뫼성지를 방문할 예정이다.

▲ 관광객들이 비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예정지인 당진 솔뫼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지에는 순례자 외에도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관련된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당진솔뫼성지와 생가지를 둘러보고, 믿음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김대건 신부의 가족사를 살펴보며 그 고귀한 순교정신을 기리고 있다.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지 모습

지난 5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이었다. 솔뫼성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가 탄생한곳이다.

▲ 생가지 마루위에 걸린 초상화

1821년 8월 21일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1836년 6월 프랑스 모방 신부로부터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고, 1836년 12월 최양업(토마), 최방재(F. 하비에르)와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중국 마카오 신학생으로 선발돼 6개월 동안 걸어서 중국 마카오 신학교로 유학길에 오른다. 그 당시 김대건 신부의 나이가 16세 소년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중국 상해 김가항 신학교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충청도 나바위에 상륙하게 된다.

김 신부는 1846년 6월 귀국하여 선교 활동에 매진하던 중 황해도 순위도 부근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같은 해 9월 사제생활 1년여 만에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참수됐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는 경기도 미리내에 매장, 1857년 9월 가경자로 선언됐으며, 1901년 유해를 용산 신학교로 옮겼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호 11세로부터 시복을 받아 지금은 7월 5일 대축일 날로 정해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1949년 11월 한국성직자들의 주보로 결정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시성을 받게 된다.

김대건 신부의 집안에서는 순교한 분들이 많다. 순교가 확실하신 분으로 김진후(증조부), 한현(작은 할아버지), 김택현(할아버지), 희현 (막내작은할아버지), 선식(막내작은아버지의 자)등이 있고, 성인품에 오르신 분만해도 아버지(김제준 이냐시오)와 데레사, 그리고 김대건 신부 등 3명이다.

▲ 당진솔뫼성지.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

당진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김대건 신부의 김진후 증조부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며 4대에 걸쳐 직계와 방계 순교자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당진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순교기념비와 기념관이 전시되어 있으며, 김대건 신부 동상과 생가지, 십자가의 길, 솔뫼 아레나원형공연장 겸 야외성당 등이 있다.

▲ 아레나원형공연장 겸 야외성당에 세워진 12 제자
▲ 당진솔뫼성지 앞에는 관광객을 위해 당진관광지도가 그려진 전시판이 있다.
▲ 솔뫼성지 안에 있는 경당모습. 7일 비가 오락가락 하는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 김대건 신부상 모습
▲ 솔뫼성지를 알리는 표지석
▲ 솔뫼성지내에 있는 십자가 고상
▲ 십자가의 길
▲ 당진 솔뫼성지 앞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어르신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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