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고집 센 사람과 나름 똑똑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함께 구구단 놀이를 하면서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고집 센 사람은 3×7=20이라고 주장했고, 똑똑한 사람은 21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참을 다투다보니 두 사람은 감정이 상해 싸움까지 하게 됐고, 결국 고을 원님을 찾아가 시비를 가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원님은 한심스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본 뒤, 고집 센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3×7=20 이라 말하였느냐?” 그러자 고집 센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는데 글쎄 이 멍청한 놈이 21 이라고 끝까지 우기지 뭡니까?”

그러자 고을 원님은 다음과 같이 선고 했습니다. “21이라고 답한 놈에게 곤장을 열대 쳐라!” 똑똑한 사람은 어리둥절했고, 억울하게도 곤장을 맞았습니다.

고집 센 사람은 이에 으쓱대며 그 자리를 떠났고, 곤장 맞은 똑똑한 사람은 “너무나도 억울하다”며 고을 원님을 원망하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원님은 대답하기를 “3×7=20이라고 말하는 아둔한 놈이랑 싸워서 여기까지 온 네 녀석이 더 어리석은 사람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고집이 세고, 아둔한 사람과 끝까지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것 보다 그를 더 보듬어주고 큰마음으로 품어줄 때, 돌처럼 딱딱한 그 사람의 굳어진 마음을 녹일 수 있다는 원님의 현명한 판단이 참으로 명쾌합니다.

우리는 어찌 보면 고집불통이고, 아둔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고,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내 자신이 세상의 유일한 기준인양 멋대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내 아집과, 고집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살며시 다가오셨습니다.

고집 센 우리와 끝까지 싸워 이기려고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갑고, 무딘 우리의 마음을 녹이려 오셨습니다.

재판에 넘기고 우리를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큰마음을 지니고 사랑으로 품고자 내려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의 입맞춤인 하느님의 비우심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오신 아들의 거룩한 탄생입니다.

‘친구란 언제나 사랑해 주는 사람이고,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형제를 보내주신 것이 아닙니다. 친구를 보내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내가 어려울 때 한번 도와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영원히 사랑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비밀과 신비를 우리에게 전부 일러주시며, 나를 당신과 한 몸으로 일치시키시는 벗이요, 나와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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