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상호 공주기독교역사위원장

지난 11월 24일부터 12월 1일까지 리버스컨벤션 주은선교센타에서는 공주기독교역사 발굴전을 잘 마쳤다.

공주기독교역사위원장으로서 정작 공주기독교역사순례기를 쓰지 못했다. 물론 여러 번 다녀왔고, 이번에 공주기독교순례안내 팜프렛도 만들었다. 

먼저 공주제일감리교회이다. 교회역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례 1번지로 하였다.

공주 초기 감리교회로 1902년 초가 1동을 구입 충청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시작하였다.

영명학원과 영아관을 운영하며 인재양성과 사회적 활동에 주력하였고, 충청지역 선교의 중심역할을 감당하였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당부분 파손되었으나,벽체 및 굴뚝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교회건축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고, 금년에 교회역사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제일교회에 대해서는 직접 방문하여 더 자세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제일감리교회 역사관

다음은 공주기독교사회복지관이다. 1924년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소속 덴마크 출신 마렌 보딩 여 선교사가 우리 공주에 와서 대한민국 최초 우유급식소를 운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아진료소로 시작한 당시의 유아복지사업은 오늘의 기독교 종합사회복지기관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었다. 직 역사관은 갖추지 못했지만 우리 지역에서 사회복지에 관한한 대단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기관이다. 

 

▲ 기독교사회복지관

이번에는 영명학교이다. 1904년 샤프 선교사가 명설학당을 세우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질병으로 갑자기 소천하면서 문을 닫았다.

1906년 윌리엄선교사가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우리말로 우리암은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무려 34년 동안 많은 역할을 하였다.

학교의 교육 목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몸 바치는 애국정신을 심어주어 1919년 4. 1 공주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으로 1942년 강제 폐교되기에 이르렀다.

남편을 잃은 샤프 부인(A.J. Hammond Sharp 사애리시)은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공주를 찾았다. 그리고 "남편이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며 30년 넘게 공주에서 명선학당, 영명여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은 아예 양녀로 데려다 키웠고, 중앙대학교 설립자 임영신, 한국인 최초 여자목사 전밀라, 여성교육의 박화숙, 한국인 최초 여자 경찰서장 노마리아 등을 키워냈다. 

영명학교는 1949년 해방 후 복교하여 1951년에는 남녀공학 영명중고등학교로 발전, 황인식 조병옥 등 많은 인재를 양성한 학교이다.

교정에는 1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서 있고, 우리암, 사애리시, 황인식, 조병옥, 유관순 등 공덕비와 두상석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말 그대로 영명永明, 어둔 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빛으로 신교육, 근대여성교육을 통하여 우리에게 빛을 밝혀 주었다.

▲ 영명학교

잠시 이동하면 영명동산 기슭에 있는 옛 선교사 가옥을 둘러볼 수 있다. 1905년 11월 미국 감리회 소속 샤프 선교사가 지은 사택으로 3층 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다.

▲ 영명동산

샤프선교사는 이 집에 신방을 차린지 불과 3개월 만에 순직하여 안타까움을 간직한 집으로 현재는 등록문화재이지만, 개인소유로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 한다. 모쪼록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건물이지만 초기 선교사들의 다양한 선교사업을 추진하던 건물이다. 

▲ 옛 선교사 가옥

다시 영명동산을 오르다보면 선교사 묘원을 만난다. 이곳은 선교사와 자녀들이 잠든 묘원이다. 특히 1906년 2월 말 논산지방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상여집에서 비를 피해 잠시 쉬웠는데 마침 발진티프스(이질) 환자 장례 후라 전염되어 젊은 나이에 순직한 샤프 선교사와 에스더(6세), 올리브(11세), 로저(2세) 등 어린이와 윌리엄 2세 우광복 등이 잠들어 있다.

▲ 선교사 묘원

특히 우광복은 공주에서 태어나 아버지 윌리엄이 대한민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지어준 이름이다. 해군 중령(군의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미군정청 하지 장군의 통역관으로 한미동맹 정부수립에 기여한 바 있다. 1994년 87세의 일기로 소천하였으며,유언에 따라 고향인 영명동산 동생 올리브가 잠들어 있는 이곳에 안장되었다.

 끝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꿈의교회(구 공주침례교회)이다. 중부권 한국 침례교회의 문을 연 역사적인 교회이다.

1896년 미국 엘라씽선교회 폴링 선교사 일행이 선교활동을 통해 설립된 이 교회에서는 현 침례신학대학의 전신인 성경학교를 열었다.

2002년 웅진동에 성전을 신축하며 꿈의교회로 개명하고 웅진동시대를 열었다. 최근에는 대전시, 세종시 등에 지교회를 세우며 활발히 선교하고 있다. 교회에 미리 알리고 찾아가면 깔끔하게 정리된 역사전시실도 둘러볼 수 있다.

▲ 꿈의 교회

공주대 지수걸 교수는 말한다. 대구처럼 근대문화유산 관람코스를 개발할 경우 공주는 대구보다 코스의 동선이 훨씬 더 짧을 뿐만 아니라 동선 내의 길거리 풍경도 대구보다 훨씬 시골스러워 좋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람자들의 동선 내에는 ▲백제박물관(일제의 백제만들기, 무령왕릉 발굴) ▲앵산공원(4·19기념탑, 황인식기념비) ▲대추골(6·25전쟁시 학살터) ▲국고개(비선거리, 효자이복) ▲대통다리(홍예교, 중수비) ▲약전골목(광창당) ▲관아대로(호서극장 건물) ▲충청감영터(포정사·선화당 건물, 신사터) ▲큰샘골(궁정, 홍원표 고택) ▲풍덕원(마곡사, 갑사, 고아원, 선행비) 등등의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03년 7월경부터 공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미 북감리회 선교사들은 봉황산 맞은편 쪽 ‘청라언덕(영명동산, 앵산공원)’에 병원, 학교, 교회, 복지관 등 선교센터(스테이션)를 건설한 뒤 공주지역의 근현대사 전개에 다양한 차원의 영향을 미쳤다. 

▲ 앵산공원

뿐만 아니라 공주지역의 ‘고도육성사업’과 관련해서도 감리회공동체가 남긴 문화유산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공주지역 감리회 공동체가 영명동산 인근에 남긴 문화유산들은 대구 청라언덕의 그것들 못지않게 유용한 자원이자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 교수는 대구 ‘골목투어’를 벤치마킹한 사업을 시작한다 할 경우 훨씬 더 짧고 다양하게, 주제의식이나 킬링콘텐츠가 뚜렷한 코스들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바램이 있다면 공주기독교역사순례지 조성사업이 잘 이루어져 우리 공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관광인프라가 구축되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유관순이 2년 동안 다녔던 길은 유관순의 길로 명명하고 각 순례지마다 역사관이 조성되어 둘러볼 것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30명이 넘는 공주를 다녀간 선교사들의 행적과 유품, 기록들을 찾아내 선교사 기념관을 지어 공주기독교역사관도 만들고, 선교사들의 쉼터도 마련했으면 한다. 

이 일을 위해 2013년에서 선교사가 처음 우리 공주를 찾은 1896을 빼니 117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교계나 뜻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117명의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의미있는 사업들을 펼쳐갈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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