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복作 우리들의 동산Ⅱ-사과Ⅰ2005

햇빛에 반짝이는 탐스러운 사과. 그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바라볼 수만 있고, 먹지는 못하도록 한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입안에 침은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는데, 먹지 못하게 한다면? 그저 묵묵히 바라만 봐도 좋을 수 있을까? 이 금단의 열매를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29년 동안 사과를 그린 이광복 화백. 그에게 있어 사과는 ‘그리움’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아픈,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의 그러한 그리움은 ‘예술’로 승화되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고, 그 승화된 그리움은 2002년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메소기오스 2002 사과전’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임동식 화백의 표현대로 금강에서 잉태된 화가의 꿈을 지중해 물가에서 이룬 이광복 화백이 그린 3,650개의 금단의 열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광복 화백은 그리고 지난 해 3월 서울 흰 물결 갤러리에서 ‘그리움 사과이야기’이광복展을, 그해 6월 앵콜展을 펼쳤다.

그러한 그가 사과를 그리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내년에 색다른 사과展을 준비하고 있다. 사과展의 배경에 공주(公州)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 그래서 그는 1950년대~60년대의 공주의 전경을 간직한 사진 등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사과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어떤 묘한 매력이 한 화가의 붓을 30년 동안이나 붙잡고 있도록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는 또 왜 그러한 사과에 공주를 담고자 할까?

예술의 깊이는 예술가의 상처가 클수록 깊어진다. 괴테는 1772년 업무 때문에 베츨라르에 출장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요한 케스트너라는 친구를 사귀게 됐고, 친하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괴테는 아름다운 한 여인을 보고 짝사랑을 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자기의 친구인 요한의 약혼녀였다.

친구의 약혼녀를 짝사랑하던 괴테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게 되는데 이 소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며, 괴테는 이 소설로 하루아침에 유명작가가 됐다.

이광복 화백의 인생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광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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