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이 입춘이었다. 중부 지방에선 폭설소식이 들려오나, 남녘은 어느새 훈풍으로 봄기운이 돈다.

어릴 적 이맘때쯤 시골 저수지에 가보면 겨울얼음이 두꺼워도 저수지 어느 모퉁이에는 벌렁거리는 숨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물고기가 얼음 밑에서도 숨을 쉬고 산다고 생각했다.

유독이 길고 추운겨울이었다. 덩그러니 서 있는 겨울나무가 애처롭다. 우리 살갗이 메마른 건기를 감지하듯 겨울나무는 온몸으로 추위를 맞으며 그 긴 계절을 버티어냈다.

겨울엔 나무가 자라지는 않지만, 속으로 여물어진다. 큰 겨울나무 가지에 까치집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맨 가지로 찬바람을 맞고 함박눈을 맞으며 온 겨울을 버텨낸 가지는 까치집도 제공하고, 추위에 떠는 참새에게 쉴 자리도 비워주고, 온 누리에 산소를 공급해주니 고맙다.

이제 곧 봄소식이 가까우니 물길 따라 꽃길 따라 겨울나무에도 새순이 돋고 청초한 이파리를 반짝거리며 여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찌 계절에만 혹한이 있겠는가! 우리네 삶의 여정에도 겨울길이 있다. 겨울 길을 지날 때 우리는 단단히 훈련을 받고 속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앞에 놓이더라도 겨울을 잘 버텨내야한다. 겨울이 지나야 따뜻한 봄이 올 것이므로.

겨울 길을 도도히 통과해 얼음이 녹고, 푸근한 그런 계절이오면 `겨울' 이라는 고단함이 `아름다운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줄지도 모른다.

난 최근에 나름대로 훌륭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은 `아니면 말고(高), 들이대(大)'를 나왔다고 소개하는 현직 대학총장을 보았다.

시골 빈농의 장남으로 삶에 이끼가 낄 틈도 없이 평생을 돌돌 굴러서 큰 인물이 되었다. 늘, 도전과 비전과 응전의 삶을 살다보니 많이 울었고, 아팠고, 많이 손해 보는 가운데 훌쩍 고비를 넘고 한 단계 올라선 자신을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애쓰는 가운데 최대공약수가 나오고, 인생 최적의 꼭지점을 만나게 된 겨울 길을 잘 걸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절반이라더니 새해가 시작되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마음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세상이 너무 빠른 것을 요구한다. "빠름~빠름~"하면서. 변화에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고, 바보가 되는 기분이 되어 움츠려들게 된다.

세상이 어지럽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만남이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때로는 정신분열이 일어날 만큼 힘들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내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은 몇 안 된다.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 나도 모르게  등급을 나누어 생각해보게 된다. 천박한 인격은 안 된다. 허접한 농담이나 하며 영혼을 어지럽히는 사람은 싫다.

30분만 얘기하고 나면 머리 아프던 문제가 시원해지게 하며 물꼬를 터주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좋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 머리에 수지침 맞은 것처럼 삶에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진품 향기 나는 사람이 멋있다.

중요하고도 어려운 게 사람사이의 일이다. 미국의 IT벤처 성공 사업가 스티븐 케이지는 "나는 MIT공대에서 공학기술은 배웠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것은 배우지 못했다. 내가 공학기술과 인간관계의 능력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인간관계의 기술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관계가 힘들다. 현대는 풍요속의 빈곤이다. 홍수 때 마실 물이 없고 사람은 많으나, 친구가 없다. 일자리는 있으나, 내 자리는 없다.

컴퓨터를 켜나 TV, 휴대폰에서 더 이상 흥미를 찾지 못한다. 정작 필요한 소식은 없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피상성에 열심인 광고, 온갖 잡다한 정보가 넘쳐 맘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진다. 정보와 내 머리 속의 지식은 다른데 뭘 많이 아는 것처럼 착각하며 지나간다. 착각, 착각….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 지나치게 밀도가 높은 관계 망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오히려 도망치고 싶어 한다.

간섭하지 않는 컴퓨터가 친구가 되고, 온라인상의 세계를 항해하는, 감성이 거세된 로봇들로 변하여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안증에 빠지거나 폭력적인 행동에 의지하게 된다.
 
힘들어도 세상과 단절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조금 천천히 하여도 좋으니 자신만의 삶의 꽃을 피워 보아야 한다.

우리는 왜 괴짜 같은 한 대중가수에게 주목하는가? 마약, 군대를 두 번 이나 갔다 온 말썽쟁이 이단아, 한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헷갈리던 가수 싸이.
그가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길을 못 찾고 헤매 일 때 비 호감 몸매를 흔들어대며, 휴지를 날리며, 별짓 다 하다가 마침내 자기에게 꼭 맞는 춤동작을 찾아낸 것이다.

절대 강남 스타일 수 없는 싸이가 역설적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촌스러움을 개발, 자기 스타일 화 시켜 미국 사회를 거쳐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쉽고, 간단하게 성공하는 법은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 절망, 시련의 인생 겨울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날린 결과이다.

삶은 야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생생한 삶은 가장 야생적이다. 문학에서도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야생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학교로 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햄릿과 일리아드, 모든 경전과 신화 속에 있는 문명화 되지 않은 야생의 사고이다.

우리는 내 삶의 겨울 길을 가는 동안 길러진 야성으로 나머지 삶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때론, 혼란이 축복이다. 환란이 복이 될 때가 있다. 너무 쉽고, 편한 길만 기대하지 말자. 반드시 겨울 길을 통과해야만 아름다운 봄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  마음의 자유를 누릴 때 우리의 삶은 들풀처럼 자연스럽고, 새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담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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