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계절이 바뀌고 요모조모로 자연의 모습이 바뀌면 신비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럴 듯하게 한 번 다시금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당황감과 허망감 같은 것이다. 자연이란, 변화란, 또 세월이란 얼마나 우리를 가혹하게 닦달하고 막다른 절벽으로 내모는가 말이다. 그 채찍질 아래 우리는 점점 우리 자신도 모를 우리들이 되어가고 있고 노년의 세상으로 이끌려 간다.

저 아우성 소리 높은 젊은이들의 번득이는 눈빛을 인식한다. 우리를 꼰대라고, 쓰잘떼기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들이 일찍이 가슴 저리도록 사랑했던 자식들의 세대들을 본다.

우리는 아직도 저희들을 걱정하고 근심하고, 그리하여 밤잠을 설치는데 아직도 우리더러 무언가 더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하기는 나도 젊은 시절 대학에 안 보내준다고 집에 불을 싸질러 버리겠다고 어머니에게 으름장을 놓다가 자전거 타고 질매장에 다녀온 아버지한테 들켜 “그래, 잘 한다 잘해, 그럼 한번 네 소원대로 불을 놓아 보아라” 호통 치는 바람에 찔끔해버린 적이 있었고, 논 서마지기가 전부인 채 서른여덟 나이에 청상과부 되어 수절로 늙어 가시는 외할머니를 찾아가 넉살좋게도 그 서마지 논을 팔아주실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싸가지 없는 아이였고, 염치없는 젊은이였다.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그렇게 비비적대고 투정하고 대들 수 있는 젊은 부모와 외할머니가 계시어 좋았다.

이제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감사하게도 아버지 어머니 90 가까운 연세로 고향에 계시지만, 나 역시 나이 들고, 병약하고, 나름 번거롭고, 아직도 여기저기 기웃댈 일 많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나, 바람 많이 부는 날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날 다만 걱정으로 전화만 드리는데 어머니는 귀가 절벽이어서 “누구? 누구냐?”만 몇 차례 큰 소리로 말씀하시다 떨그덕 전화를 내려놓고 마시니 다만 답답할 따름이 아닌가.

이런 적막하고 뱃속까지 쓸쓸해지는 날, 그것도 세모 가까운 즈음, 문득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는 시 한 편이 있다. 그것은 김규동(金奎東, 1925∼2011)이란 시인이 쓴 「송년」이란 시.

이 시 속애는 ‘기러기 떼’의 귀환을 걱정하는 누군가의 잔양스런 눈초리가 들어있다. 그 기러기는 단순한 기러기가 아니다. 시인의 분신이며 우리들 자신이며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객관적 상관물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추운 겨울 밤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고단한 날개가 되고 시린 발가락이 되고 목쉰 기러기의 주둥이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그렇구나. 기러기의 땅이 하늘이라면 기러기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하늘의 땅을 걷는 것이겠구나.

여기서 애달픔이 절로 나오고 우리들 마음은 기러기의 마음이 되어버리고 기러기와 함께 하늘을 나는 동시에 기러기 또한 거꾸로 우리들 인간의 모습으로 환치되는 것이리라. 범상한 것 같지만 시인의 시는 절절한 마음을 실어 나른다. 그것은 진정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별빛과 강과 눈물의 그 차이를, 그 변용을 어떻게 설명해야만 좋은지! 차마 나는 알지 못한다.

나 자신 북에 고향과 친지를 두고 피난 온 사람도 아니고 이산의 아픔도 겪지 못한 ‘순수한 남쪽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북에서 온 인물들은 적극적인 우파로서 남쪽에서 살다가 갔다.

허지만 김규동 시인만은 나름대로 성실한 좌파로서 일관하다 돌아갔다. 이런 데서도 우리는 시인의 진정성을 보게 된다.

학생 시절(함경북도 경성의 경성고보) 스승이었던 김기림(金起林) 시인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젊어서는 전위적인 시를 쓰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이었지만, 나이 드시면서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그 쪽의 모임-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에도 관여했다.

그렇지만, 여타 참여 시인들에게서 보지 못하는 점은 바로 시와 인간의 진정성이다. 왜인가? 시인이 쓰는 시의 내용이나 주장들이 자신이 철저하게 겪은 절실한 이야기들이고, 거짓이 아닌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청을 높이지 않고 조곤조곤 말하는 시의 어법이 적절했다.

나 자신 젊은 시절 시인과는 면식이 없음에도 나의 작품으로 여러 차례 당신의 글(월평)에 올려 칭찬해주신 일이 있다.

퍽이나 인간적인 분이구나 싶었다. 말년에 몇 차례 문학모임에서 뵈었는데 이분은 참 작고 깡마른 몸집을 지닌 참으로 쬐끄만 ‘노시인’이었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청년처럼 우렁차고 그 말씀의 논지만은 꼿꼿하여 마치 독립운동가의 말을 되새겨 듣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 뒤로는 자필의 편지도 여러 차례 보내주시고 개인저서(시집 『느릅나무에게』,『김규동 시 전집』, 산문집『나는 시인이다』도 몇 차례 보내주시어 젊은 후배에게 각별한 우정을 표시해주기도 하셨다.

2천년이 올 때 새로운 천년(밀레네임)이라고 사람들은 얼마나 발광하고 떠들어대고 그랬는가! 다시는 지나간 세상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처럼 잔망을 떨었던가!

그런데 그것이 이제 10년도 훨씬 앞으로 지나고 말았다. 올해 2012년도가 허무하게 무너져 간다. 우리는 또다시 365개의 모래성을 힘겹게 쌓았다가 한꺼번에 이렇게 허무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내린/ 아름다운 꿈’, ‘누구일까 가고 오지 않는 저 그림자는’,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 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도 같이/ 짓궂은 바람’. 일일이 시인의 문장을 열거하여 해설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시를 읽고 그 먹먹한 느낌을 가슴으로 느껴 간직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그렇다 해도 후반부 일부분만은 되 뇌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쓸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진정 우리가 다시금 이런 구절을 가만한 목소리로 읊조림은 이런 심정이 오래 전 시인의 심정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오늘날 우리들 심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아, 송년! 가슴이 벅차오르는 어휘다. 희망으로가 아니라 후회스러움으로 쓸쓸함으로 벅차오르는 말이다. 올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아. 어찌 할 것인가?

그래도 우리가 살아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함만 그저 감사하여 분복으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스산하여 진정 화려한 우리들 저무는 인생이여. 뉘우침이여. 쓸쓸함이여. 송년의 날이여. 잘 가거라. 나도 뒤돌아보지 않을 테니 자네도 뒤돌아보지는 말게나.

우리는 이렇게 쓸쓸함으로 완성되고 문득 무너짐과 이별과 실패로 완성되는 그 어떤 존재가 아니겠는가!

送年(송년)

                                                                                                                                               김 규 동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 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 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도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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