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이후에 공주 동학사 벚꽃축제에 다녀왔다. 강가에 시원한 잔디밭이 그저 좋았다. 대학시절 봉사활동을 다녀왔던 구석기시대 유물이 있는 석장리를 지나 청벽의 수려함이 간만에 나를 설레게 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이 강변길은 필자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길이다. 대학시절 급성 맹장수술이 끝 난지 10일정도 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삽 들고 개천 복구 작업을 했던 기억이 되 살아나는 곳이다.

시골 부모님의 일손 돕기는 공부 핑계를 대고 무작정 농활에 뛰어든 곳이 바로 이 곳 석장리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의 아픔이요, 미안함이 서려있는 곳이다.

존경하는 소리꾼 박동진선생의 생가를 지나 눈길은 금강변의 벚꽃에 꽂힌다. 동학사는 한 바퀴 산책하는데 시간도 알맞고, 볼거리도 많다.

도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저 계룡산은 보기만 해도 빠져들 것 같아서 좋다. 길가에 개불 알 풀꽃이 지천이다. 저 앙증맞은 보라색 꽃은 이름을 민망하게 달고 나와서 우스개 꽃이 되었다.

저녁은 동학사 입구에서 오리훈제로 벚꽃 축제분위기를 한껏 올렸다. 하루 종일 강의에 지친 동료들과 함께한 동학사 가는 길은 글자 그대로 환희의 대로였고, 위로의 선택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도 없었지만, 사람구경도 좋았고, 벚꽃 구경도 야경에 비추어 일색이었다.

총선이 끝나자 ‘정탈’이란 말이 유행한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정신적 허탈이란다.

정권심판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얻어 정권의 무능함을 바로 잡고, 원하지 않던 경제정책이나 국제조약도 수정하거나 폐기할 것을 기대했을 터인데 전국지도는 Red Color(붉은색)로 칠해지고 말았다.

심한 표현으로는 무능한 야권심판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고교시절 은사님께서 편지를 보내셨다. 천안의 봄꽃 소식을 딸이 만든 영상에 음악을 곁들여 멋지게 꾸며 주셨다. 편지의 끝에 이렇게 적고 계신다. "봄꽃은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동학사에는 벚꽃이 만개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벚꽃만 봄꽃이 아니다.

동학사에는 별꽃, 개불 알 풀꽃, 냉이 꽃, 현호 색, 바람꽃, 광대나물, 괴불주머니 등 등 수많은 봄꽃들이 피어 있다. 다만 우리가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지 못해서 보지 못할 뿐이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 있고, 진 사람들은 낙담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봄꽃에게 허리 숙여 눈을 마주쳐 보길 바란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한 번도 선거기간에 눈길을 주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과와 배상을 위해 싸우는 분들, 오랜 기간 파업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 선거기간에도 야근을 해야 했던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들, 대학 등록금을 벌어 보겠다고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들이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보내길 바란다.

여야를 떠나서 힘을 모아야 할 부분도 많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서 민족적 견지에서 협력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다.

여야, 승자와 패자를 떠나서 정신적 허탈 상황을 떨치고 수많은 봄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가지고 사는 낮은 세상을 바라보자.

FTA의 독소조항은 의회가 단합해서 개정하자. 안보문제와 남북협력 문제는 여야와 계층의 이익을 떠나 협력하자.

총선을 끝낸 우리에게 봄꽃들이 전해주는 편지를 허리 숙여 읽어봄이 어떨까? 여전히 꽃은 피면서 진다. 우리 인생도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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