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외신의 한국 관련 기사 한 토막에 한국 젊은이 대부분은 인기 연예인과 운동선수를 몹시 부러워하면서 집착한다고 써 있었다. 좀 과장된 말 일지 모르지만 조금은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인이 가지고 있는 돈, 인기, 근사한 커플, 멋있는 모습과 멋진 행동 등을 바라볼 때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필자도 젊은 시절 그랬었는데….

몇 해 전에 인기 최정상에 있던 미모의 여성 탤런트가 갑자기 자살한 사건이 있어 온 나라에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그녀는 방금 말한 부러움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녀의 자살동기를 신문 발표로만 본다면 꼭 그래야만 했을까 몹시 안타까웠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껍데기와 알맹이는 다른 것 같다.

유명인들은 밖으로 보여줘야 할 그 껍데기를 늘 관리하고 신경 쓰면서 그 유명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긴장가운데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그들의 껍데기만을 볼 뿐이다.

얼마 전 인기 정상의 개그맨 한분이 “자기는 한동안 인기유지에 골몰하다가 ‘공황증(恐惶症)’에 걸려 고생한 일이 있었다”고 실토한 일이 있다. 스스로 껍데기를 벗고 고뇌(苦腦)의 알맹이 일부분을 보여준 용기 있는 말 이었다.

이쯤 해두고 오늘 말 하고 싶은 오복(五福) 얘기를 하자.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유好德), 고종명(考終命) 이 다섯 가지를 오복이라 하는데 유교의 삼경(三經)중의 하나인 서경(書經)의 홍범편(洪範編)에 적힌 말이다.

건강하게 부자로 오래 살면서 이웃에게 좋은 일 많이 하다가 병도 안 걸리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여 그야말로 오복을 다 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는 많은데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는 노인네. 돈은 많은데 자식을 잘못 두어 속 썩는 부자. 이웃에 좋은 일 많이 하던 착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슬픈 소식. 오복을 다 누리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속담에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는 말이 있다. 즉 어떻게 살든 죽지 않고 오래 살고 보자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 뜻은 그게 아니라 죽음이란 허무한 것이며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강녕에서 ‘강(康)’은 육신의 건강을 의미하며, ‘녕(寧)’은 정신이 건전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먼저 목숨(壽)이 강녕한 상태로 있을 때 나머지 삼복이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재물은 오물(汚物)과 같아서 모아 놓으면 악취가 나고, 흩어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라는 말을 그동안 많이 들어 왔다. 딴은 옳은 말인데, 부자가 실행하기에는 그리 쉬운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물을 가득 채운 소쿠리를 품에 안고 뛰는 인생이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또한 덧없는 인생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우린 모두가 욕심 부리며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지난 해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에 해마다 거액을 표 안 나게 내려놓는 아름다운 손이 있어 화제가 되었다. 유호덕을 갖춘 어느 부(富)의 참모습을 본 것 같다.

이 세상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우리 모르게 묻혀 있는 아름다운 일이 참 많이 있다. 오복 역시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던 평범한 오복 이라면 그리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일 하면서 부자는 아니지만 알뜰히 모은 재산 가지고 이웃의 애경사(哀慶事)나 어려움에 외면하지 않고 늘 온화한 성품으로 건강하게 늙어가다가 편안히 죽었다는 사람을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평범한 행복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좀 더 멋있고, 화려하고, 유명한 것에 눈이 쏠려 있다. 너무나 부러워한 나머지 흉내라도 내고 싶어 한다. 짝퉁인줄 알면서 유명 상품을 과시하고 싶어 불티나게 사가는 현상을 보면 어쩐지 씁쓸하다.

한손에 부채를 들고 외줄에 올라서서 재주 부리는 사람은 많은 갈채와 박수를 받겠지만, 실제로 그는 방심하지 않고 늘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러다 만약 실수로 떨어진다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칠 것이다.

평지에서 편한 마음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은 긴장할 일도 없고 편안할 뿐 아니라 설사 넘어진다 해도 일어나 궁둥이 툭툭 털면 그만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명예스런 혐의에 연루 되어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 외줄 위에서 박수 받다가 떨어진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부러워해 왔던 많은 허상(虛像)에서 벗어나 보자. 그리고 옛 사람이 말했던 오복을 곰곰 생각해 보자.

“레 미제라블”을 쓴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일생동안 사는 목적이 잘 죽는데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잘 죽는다” 라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죽으면 끝난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그가 세상에 남겨 놓은 것과 그에 대한 평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끝을 잘 맺어야 잘 죽는다는 의미이고 진정한 고종명이라 생각해 본다.

며칠 지나면 설날이다.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면서 덕담으로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눌 것이다. 말인즉 ‘복’은 ‘운 좋게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는 뜻이 담긴 인사말 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사 모든 일을 복 탓으로 돌리려 한다. 가난하면 재물 복 없다 하고, 자식한테 속 썩으면 자식 복 없다 하고, 누구한테서 피해를 보면 인복이 없다고 푸념을 한다.

어차피 잘못된 일 핑계거리라도 있어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게 아니겠는가. 세상 살다보면 예상하지 않았던 행운과 복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생활을 불확실성에다 내 맡길 수는 없을 것 이다.

그동안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허상의 껍데기를 부러워했다면 이제는 진정 참다운 오복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리 먼데 있는 것도 아닐 듯싶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가끔 한번쯤 고종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멀지 않은 미래 일 테니까 .

고종명(考終命)

피할 수 없는 길떠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네
누가 다녀와서 설명해준 일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네
캄캄한 곳일까 환한곳일까
매마른 들판일까 바람부는 언덕일까
에이_ 부질없는 생각일랑 그만두자
어차피 닥칠 확실한미래
미리 생각해서 뭐하겠나
마음을 접어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철없는 어린애 놀던곳처럼
치우기 만만찮고 어지러져있네
자세히 살펴보니 다 허사로움일세
그래도 그냥두고 갈수는없네
한가지 한가지씩 치워보겠지만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며는
미안하다 말한마디 하고가야지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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