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임금 내외[합장] 무덤에는 당대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무령 임금은 53세에 태자를 잃었다. 이후 자손 번성[안산 포함]에 대하여 눈물겨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임금 무덤은 한 나라 명제[57 ~ 75] 이후 불ㆍ도ㆍ유의 통합적인 문화의 산실이 되었다. 또한 백제 사람들은 무병장수를 꿈꾸며 ‘생활의학’을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임금 내외의 자손 번성과 안산 기원

무령임금의 무덤에는 임금 내외간이 얼마나 자손에 애정이 깊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대할 수 있다. 짐작컨대 그 출발점은 임금이 53살 때 순타 태자를 잃은 때부터라고 여겨진다.

또 다른 생각은 무령임금이 3 차례[임금 자리에 오르기 전 1 차례와 오른 후 2 차례]나 백제를 휩쓴 유행병[여역]에 대한 ‘경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특히 수많은 아이들이 죽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손과 관련된 자료란 자손의 번성과 안산을 기원한 귀걸이[식이, 이환], 다산을 기원한 푸른구리그릇[청동잔], ‘의자손’이란 시경의 구절을 쓴 구리거울[의자손신수문경], 아이의 질병 등을 막으려던 아물렛Amulet[허리에 차는 물건]인 동자상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 앞 부분의 자료는 거의《특급뉴스》에 이미 ‘비밀’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동자상과 관련시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령 임금의 태자가 죽었다는 근거는《일본서기》권17 계체천황[507 ~ 531, 다른 학설로 일본인 학자의 500 ~ 527년설과 한국인 학자의 507 ~ 527년설이 있다]이다.

가을 8월 계미삭 무신[26일]에 백제 태자 순타가 죽었다[전용신 옮김《일본서기》1990:291].

이를 믿는다면, 백제의 중흥 군주로 꼽히는 임금이 그것도 노년에 태자를 잃었으니 얼마나 좌절감이 켰을까 짐작이 간다. 임금에 된지 13년이 되어 이제 뜻을 제대로 펴고자 했던 시기라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53세의 늙은 임금은 그 지극한 슬픔을 태자의 무덤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면, 6호분이 가장 적절하다. 우선 합장이 아니고 단장이란 점, 무령임금 무덤보다도 정교하다고 할 정도로 공력을 들인 점 등이 논의의 대상이다.

‘殤’[상]이란 상례에서 19살 이전에 죽었을 때 쓰는 용어이다. 본래 남녀가 19살 이전에 죽으면 합장하지 않는 의례가 있다[《주례》‘지관’]. 무덤을 옮기는 것과 시집가서 일찍 죽은 사람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정현[127 ~ 200]도 이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유리동자상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아물렛[유행병을 접근하지 못도록 하는 물건]의 하나였다.

한 쌍의 유리동자상은 왕비의 웃옷 썩은 모직물 허리띠에서 나왔다. 이것은《무령왕릉 발굴조사보고서》[1973]의 내용이다. 웬일인지 임금의 아내 부장품을 소개하는 본문에서는 빠져 있다. 금제 관식[1쌍]을 비롯하여 호박조옥[7개]으로 27종이 있으나 유리동자상은 보이지 않는다. 영문판에만 다음과 같이 보인다.

Her garment was laden with all sorts of beads and a pair of tiny boy statuettes made of glass were suspended from her decayed fabric belt.[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73]《무령왕릉발굴조사보고서》280쪽]

대략 번역을 해본다면, ‘왕비의 웃옷에는 썩은 모직물 허리띠에 매달린 유리로 만든 자그마한 아이의 한 쌍과 구슬들의 모든 종류들이 매달려 있었다’고 할 것이다.

한 쌍 가운데 완전한 상의 높이는 2.5cm이고 녹색 유리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산화되어 변색되어 있다. 더욱 산화가 진행된 다른 동자상[1.6cm]은 하반신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보존이 잘 된 동자상이 여성이라면 하반신이 사라진 그것은 남성이다.

한 연구자[성주탁]는 불교의 화생불 내지는 탄생불이나 500동자와 동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유교나 도교의 동자상과도 마찬가지라며 ‘왕비 생존시의 수호신격’을 띠고 만들어진 ‘소박한 민속신앙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조는 한 나라 명제 이후 불·도·유의 섞임이 기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견해로 여겨진다.

동자상의 허리에 구멍이 있어서 모직물 허리띠에 꿰어 있었다. 성주탁은 완전한 동자상을 실에 꿰어 매달아본 결과 머리 부분이 무거워 거꾸로 매달렸다고 실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차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잠자리 눈알’[달리 청령옥]을 보기로 들고 있다. ‘잠자리 눈알’이 아니고 ‘그것처럼 동그랗고 중도문이 있는 장식품이라는 것이다.

중앙에 구멍이 뚫려 꿰어 매달았는데[여기서 ‘매달았다’는 표현은 실로 꿰어 허리띠에 다시 매달았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허리띠의 선에 직접 꿴 것과 구별해야 할 것이다.

동자상이 ‘부적’의 기능이라면, 부적은 ‘차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학자에 따라 문자로 쓴 부적과 물건인 부작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번개를 맞은 대추나무, 호랑이 이빨 등도 부작에 속한다. 구중회[2006]《옥추경 연구》‘부적에 대하여’를 참조[80~83쪽]하기 바란다.

부적의 활용 방법은 탄부[삼키는 부적], 분부[불살라먹는부적], 점부[붙이는 부적], 축부[축원하는 부적], 매부[묻는 부적], 패부[몸에 차는 부적] 등이 있다.],

B.C 1,5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국시대의 중국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신라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성주탁의 ‘잠자리 눈알’에 대한 소견은 일본에서 발행된 사전류에서 끌어온 지식이다. 이러한 견해는 아물렛[부적]의 발생과 전파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래 아물렛[부적] 형태는 메소포타미아의 문화권인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동자상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임금의 아내는 어머니로서 아이의 출산이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에 효험이 있다는 ‘동자’ 아물렛이 있다면, 당연히 차고 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아물렛’은 ‘하늘의 문자 내지는 말씀’이기 때문에 신성성을 담보로 한다. 그러므로 신성성을 담보할 조건이 있어야 한다. 성주탁은 동자상의 제작지를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으로 짐작한다고 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누군가 땅 속에서 찾아 바친 것이어야 한다. 그와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쉽지 않다. 오히려 서역을 통하여 보내온 ‘영험한 품목’이어야 한다.

특히 임금의 아내가 임금보다 많은 차이의 젊은 분이었다면, 아이에 대한 편안한 출산과 아이의 평탄한 성장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는 일이나 아이를 기르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김원룡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출간한《무령왕릉》에 동자상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 바 있다. 기복의 벽사로 왕자의 안산에 대한 기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祈福, 辟邪か 王子を 産むためのまじない 具ごあゐらしい[김원룡《무령왕릉》동경:근등출판사 1979:66쪽]

이 글은 아물렛의 기능으로 보았다는 증거이다.
불교에서는 ‘호제동자다라니경’이 있다. 이 경은 글자 그대로 동자 어린이를 지킨다는 뜻이다. 여기서 동자는 우리말이 아니라 범어로 Kumāra의 번역어이다.

[동자의 불교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범어 Kumāra의 음역으로 구마라이다. 중될 마음을 내고 절에 와서 불교를 배우면서도 아직 출가하지 않은 어린 아이를 말한다. 2) 태외 5위의 제2, 7세에서 15세까지의 아이를 말한다. 3) 보살을 말하는데, 보살은 여래의 왕자이고 또는 음욕의 생각이 없는 아이들과 같으므로 이와 같이 일컬는다. 4) 절에서 심부름 하는 아이를 말하는데, 법회 때에 꽃을 쓰고 행렬에 참가하거나 혹은 번을 들기도 한다. 덕이 높은 승려가 바깥에 다닐 때에 데리고 다니는 아이를 말한다.《한국불교대사전》 816쪽].

‘호제동자다라니경’은 금강동자를 모시고 기도하는 밀교에서 읽힌다. ‘동자경법’ 또는 ‘15동자법’이라고도 한다. 금강동자는 극락의 교주인 무량수불의 화신으로서, 얼굴에는 분노를 띠고, 손에는 금강저를 쥐는 도상을 하고 있다.

▲ 유리제 동자상[왼쪽은 여성, 오른쪽은 남성]

 

 

 

 

 

 

 

이 경은 아이들의 병을 없애거나 임산부의 순산 등을 위하여 밀교의 수법인 금강동자호마법이 행하여진다.

팔만대장경의 불설호제동자다라니경은 1권[분류번호 K.440]으로 인도의 경문이다. 6세기 초에 인도 출신의 학승 보제류지가 번역한 것이다.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열다섯 귀신의 죄행과 주문을 외워 그들을 물리치고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설교하고 있다.

이 경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밝히는 설교 장소와 청중들에 대한 부분이 없고 부처가 처음 불도를 깨달았을 때 대범천[백불을 가지고 항상 제석천과 함께 불의 좌우에 모신다고 한다.]이 그를 찾아와 이야기하였다는 데서 시작된다. 즉 대범천이 열다섯 귀신의 죄행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잘못되거나 출생할 때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야차 귀신과 나찰 귀신들이 아이들의 태를 먹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마수가를 비롯한 열다섯 귀신의 이름을 열거하고 그 생긴 모습과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수법에 대하여 말하였다. 예를 들면 마수가귀신은 소처럼 생겼는데 이 모습으로 아이들을 놀라게 하면 아이들의 눈이 돌아간다고 한다. 

  

▲ 야차의 모습

그 다음은 주문을 외워 귀신을 물리치는 법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만 소개하면 여인들이 정성껏 불도를 닦으면서 매달 8일과 15일 밤에 깨끗이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다음 머리 위에 겨자를 얹어 놓고 주문을 외우면 아이들이 탈 없이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끝 부분은 주문의 원문을 소개하고 있다. 주문은 부처가 외운 것과 대범천이 외운 것의 두 종류가 있다.
이와 같이 이 경에서는 아이들을 잘 기르자면 귀신을 물리치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당시에 경문이 들어왔다고 보기보다 풍속이 먼저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유리제품이 페르시아 산물이고 이런류의 아물렛이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2 무령 임금 무덤은 불ㆍ도ㆍ유의 종합 문화

처음 ‘무덤읽기’를 쓰면서 ‘우리문화에 외래문화 끼워주기’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가 우리문화에 하나씩 끼어들기도 하였으나, 한꺼번에 끼어들기도 하였다.  

더구나 한나라 명제 이후에 무덤문화에 불·도·유가 통합한 이래로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이다. 12가지 비밀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것도 이러한 현상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집안 통구 동진님묘중 대량으로 불ㆍ도의 벽화가 결합체로 나타났다. 장천 1호무덤[1982년 발굴] 무늬천정[조정] 가운데 하늘무늬[천문] 현무 주작 기린 등이 보이고 또한 연화를 든 비천, 쌍두화생, 기악천 쌍사자 보좌의 불상이 있다. 양 쪽 공양인이 있고 석굴 안에는 설법도가 있어서 완전한 하나의 유형을 만들었다. [단문걸 ‘돈황벽화개술’《중국미술전집》회화편 14 돈황벽화 상 1988:14]

이 자리에서는 임금 비[아내]의 머리받침[두침]에 보이는 도상을 중심으로 이를 검토하여 보기로 하겠다. 서왕모 신화와 제석천의 결합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 무령임금 무덤 발굴 40주년 전시회[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일향 한국미술연구회에서 제공한 ‘영기화생’설로 풀이하고 있다. 신령스런 기운이 생명으로 꽃모양으로 형성되면서 천지만물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 형성 과정을 도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동양문화에서 특히 종교 그림은 ‘소의경전’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단순한 하나의 그림일지라도 그 배경에는 ‘경전’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영기화생’이 어떠한 경전을 바탕으로 하였는지 밝히지 않아서 그 실상을 알기 어렵다. 만약 경전이 없다면, 개인적 상상력에 머물기 때문이다.

임금 비[아내]의 머리받침[두침]에 나타난 도상을 보면, 제석천비[서왕모]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왼쪽의 비천과 오른쪽의 오획의 도상이 그러하다.

돈황석굴에서 서위[535 ~ 556]와 북주[556 ~ 581] 시대 도교 계통의 서왕모와 불교 게통의 제석천비는 동일한 도상으로 나타난다. 
 

▲ 머리받침

머리받침의 왼쪽 맨 끝에 해당하는 귀갑형 안에 비천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귀갑형 안에 오획[지금까지 ‘어룡’으로 파악되었다.]이 보인다. 머리받침과 서왕모[제석천비] 도상은 비천과 오획의 위치가 같다. 서왕모 도상은 오획이 앞에서 끌고 비천이 서로 따르며 하늘 꽃을 날리는 모습이다.

서왕모[제석천비]와 동왕공[제석천]은 한 짝의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왕모는 서해에 거주하는 신이다. 무령돌문서[매지권]의 서쪽을 비워둔 것과 일치한다. 죽으면 서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 위는 동왕공[제석천], 아래는 서왕모[제석천비]

 

▲ 비천과 오획을 좀더 확대하여 보이면 다음과 같다.

▲ 왼쪽이 비천이고 오른쪽이 오획이다.

왼쪽의 비천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비천 도상이다.

▲ 비천 도상이다. 가운데가 무령임금 비[아내]의 것

손이 자유롭고 오른쪽의 비천은 피리를 들고 있다. 왼쪽의 비천은 호위하는 도상이고 오른쪽은 설법을 예찬하는 도상이다. 임금 비[아내]의 도상은 호위하는 도상으로 손이 자유로운 것을 알 수 있다. 죽은 이가 사후에 머물 서역을 향하여 떠나가는 도교와 불교가 통합된 도상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도상을 비교해 보이기로 한다. 

 ▲ 왼쪽은 머리받침의 도상이고 오른쪽은 동왕공[제석천]의 그것이다. 전자가 도상 가운데 나뭇잎은 오획의 날개를 그렸다고 할 수도 있다.

역시 왼쪽은 임금 비[아내]의 하늘꽃[천화]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도상이 제석천[동왕공]과 비[서왕모]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특히 하늘꽃에서 4개의 꽃잎들이 후자에 가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꽃이 날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하여 임금 비[아내]의 머리받침[두침]은 죽은 뒤 서해로 가는 도상인 것이라 할 것이다. ‘영기화생’이라는 불교적 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불ㆍ도ㆍ유의 통합의 도상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3 백제시대의 ‘생활의학’

여기서 ‘생활의학’이란 오늘날의 ‘의학’이라기보다 경험론을 바탕에 둔 백제 당대의 그것을 말한다. 백제 시대에는 ‘약부’라는 기관이 있었고, 의약·복서[거북등껍대기와 시초로 점을 치는 것]·점상[오늘날 사주, 풍수, 관상 등과 같은 것] 등이 같은 기능이었다[《주서》권41 열전 ‘백제전’].

생활의학과 오늘날 의학과 같은 개념으로 의박사, 채약사[《일본서기》흠명주 14(553)]와 주금사[《일본서기》민달주 6년] 등이 등장한다. 이들을 묶어 백제 시대의 ‘생활의학’이라고 했다. 의학의 영역이 ‘치료’, ‘예방’, ‘양생’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〇 아물렛Amulet과 탈리스만Talisman에 대하여

서양의 종교학에서 아물렛과 탈리스만은 우리나라 부적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아물렛은 불운과 질병, 악령이나 사람과 같은 악한 존재의 공격을 피하려고 사람이 지니고 다니거나 집이나 헛간, 사업장에 진열해두는 물건이다. 이에 대하여 탈리스만은 사람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지는 물건이다.

무령 임금 무덤에서 수많은 구슬[옥]류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실체를 아직은 풀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구슬 류가 죽은 이[무령 임금 내외분]에게 좋은 일이 있고 산 이[성 임금과 백성]에게도 역시 좋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물렛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논의하기에 앞서서 탈리스만의 보기를 들고 가기로 한다. 이탈리아에서 마노는 악마의 눈에 대적하는데 효과가 있고, 시리아에서는 장 질환에 효과적이다. 수정은 수종[종기]과 치통을 치료하며 다이아몬드는 해독 작용을 하며 폭풍우를 피할 수 있다.

게다가 보석은 사람의 열정과 애정을 고무시킨다. 녹주석은 희망을 주고, 둥글게 다듬은 석류석인 카벙클은 에너지와 자신감을, 루비는 사랑을 준다. 산호에 대해서 말하자면, 친구가 죽으면 산호가 사라진다고 한다. 각 달마다 해당하는 돌이 있는데 이는 종종 사람의 별점을 그린 12궁도가 묘사된 브로치의 형태를 띤다.

아물렛은 죽은 사람과 함께 개오지 조개껍질[고대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화폐로 쓰임], 켈트, 화살촉, 돌 등을 넣으면 죽은 뒤 그 사람이 보호를 받는다는 문화현상과 관련된다.

이러한 풍속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관습으로 남아 있다. 선사 시대의 벽과 기념비에 그려진 눈 그림도 같은 의미이다. 사악한 악령의 눈에 대항하여 자애로운 신이나 신령이 천우신조로 지켜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Eliade, The Ecyclopedia of Religion, Amulet· ·Talisman 등의 항목].

아물렛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원전 4천년 전, 미라를 감쌌던 붕대로 싼 파양스 도자기와 장석, 홍옥수, 흑요석, 벽옥 그리고 이와 같은 종류로 아물렛을 만들었다. 이 아물렛는 시체의 각각의 팔, 다리에 놓이는데 대개는 해당 팔, 다리 위에 놓인다. 이를 수긍한다면, 무령 임금 무덤의 팔·다리에 놓인 구슬[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신의 조각상 외에도 호루스[Horus, 매의 머리를 한 이집트의 태양신]의 심장과 눈의 모형, 개구리, 사다리, 계단 모형 등이 있다.

보통 한 쌍인 호루스의 눈은 금, 은, 청금석, 적철석, 또는 자기로 만들어지며 모든 강력한 힘과 호루스의 매서운 주의력을 나타내어 살아있는 사람들이 건강과 보호를 기원하며 지니고 다녔다.

개구리는 전형적으로 풍요의 상징으로 죽은 이의 부활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의미로 삶을 상징했다. 사다리 모형은 승천을 의미했으며 네팔의 망고르Mangor 강가의 무덤 옆에는 아직 이 사다리 모형이 존재한다.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흙으로 만든 사다리 모형을 전통적으로 관 옆에 둔다. 성서 창세기 28장 12절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를 떠올릴 수 있으며 단테의 천국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이 등장한다.

경주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허리띠가 발굴된 바 있다. 이 허리띠에는 5개의 사다리나 있다. 이러한 도상의 이동은《로마문화의 왕국, 신라》[요시미즈 츠네오가 짓고 오근영 옮김(2002)]을 또 확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특히 무령임금 무덤의 유물을 보면 이러한 아물렛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직감’이 든다. 
 

▲ 황남대총 북쪽 무덤의 출토 허리띠

무령임금 내외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보석들은 백제 사람들의 생활의학관에서 비롯한 것이라 보여진다. 금제, 은제, 철제, 유리제, 호박제, 조옥, 편옥, 흑옥 등의 종류나 색깔들이 이런 실증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여러 가지 아물렛과 탈리스만들

〇 역림과 식점에 대하여

백제 사신이 유송에서 450년[비유왕 24] ‘역림’과 ‘식점’을 ‘요노’[무기]와 함께 가져왔다[《송서》이만전 백제조]. 여기서 ‘역림’과 ‘식점’도 역시 ‘예방’과 관련된 생활의학의 활동이다. 조선시대 홍만선[1643 ~ 1715]《산림경제》에서 집터를 잡고 명리[사주를 보는 것]를 ‘치병’으로 분류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의학에서 몸의 각 기관마다 신들이 거주한다는 생각도 생활의학의 근거가 된다.

1) 초씨역림 초공[한 나라]
808-269~438

《초씨역림》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전은 문연각 사고전서 808권에 수록되어 있다. 권1은 19괘[건1 곤2 둔3 몽4 수5 송6 사7 비8 소축9 이10 태11 비12 동인13 대유14 겸15 예16 수17 고18 임19 ], 권2는 11괘[관20 서합21 비22 박23 복24 무망25 대축26 이27 대과28 감29 이30], 권3은 23괘[함31 항32 둔33 대장34 진35 명이36 가인37 규38 건39 해40 손41 익42 쾌43], 권4는 21괘[구44 췌45 승46 곤47 정48 혁49 정50 진51 간52 점53 귀매54 풍55 여56 손57 태58 환59 절60 중부61 소과62 기제63 미제64] 등 총 64괘이다.

각 괘의 구성은 건1, 곤2, 둔3........기제63, 미제64 순으로 되어 있다. 다만 해당 괘만 맨 앞에 오고 다른 순서는 변동이 없다. 가령 ‘곤지 제2’는 곤2, 건1, 둔3...., ‘둔지 제3’은 둔3, 건1, 곤2, 몽4.... 등과 같다.

흠정사고전서《역림》‘제요’에 의하면, 총16권이었다. 상수[상수 역은 의리 역과 대칭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상’은 ‘하늘’을 의미한다. 하도낙서처럼 숫자로 우주를 설명하면서 풀이하는 동양적 세계관의 산물이다.]의 책이다. 1괘가 64이고 64괘가 4,096이다. 문체는 4언의 운으로 되어 있다.《한서》예문지에 의하면 13가의 역림이 있고 15가의 시귀가 있었다.

책은 시대를 거치면서 자기의 모습을 그 시대에 맞춰서 변화시킨다. 고체로 죽은 것이 아니고 숨을 쉬면서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본다. 융희 2년[983] 봄에 이인을 만나 점괘를 뽑으니 ‘비22’가 나왔다.

동쪽으로 나가려다가문이 없어서
서쪽 화산으로 나갔다.
길이 난관으로 막히니
놀고자 하는 아이가 고민이 된다. 東行無門 西出華山 道塞於難 遊子爲患

이러한 점괘를 비록 원본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뒤에 보면 원본과 다르다는 것을 변별할 수 없다.
따라서 비록 역림이 중국의 점서이지만 백제인들도 볼 만했다고 생각된다. 마음의 편안함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행위였던 것이다.

2) ‘식점’에 대하여

식점은 나라를 움직일 만한 일을 점치는 행위의 하나이다. 태상시의 태복서에서 담당하였다[이보림《당육전》권14 태상시]. 당 나라의 경우 관직은 영 1명[정8품하], 승 2명[정9품하], 복정 2명[종9품하], 복사[거북등껍질로 점치는 기능을 가진 사람] 20명, 무사[무당의 기능을 가진 사람] 15명, 복박사[거북등껍질로 점치는 박사] 2명[종9품하], 조교 2명, 복서 학생 45명[수 나라의 경우 복생 40명 서생 30명]이 있었다.
 

종류로는 1) 거북[구], 2) 조짐[조], 3) 역법, 4) 3식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식점은 1) 뇌공식, 2) 태일식, 3) 육임식 등 3종류가 있었다. 그런데 1) 뇌공식과 2)태일식은 민간인들이 행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3) 육임식만 활용할 수 있었다.

식점을 통하여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과 같이하고 하늘의 때를 알았다. 지금 그 격식은 풍목을 하늘로 하고 조심을 땅으로 하여 12신을 새기고 아래에 12신을 펼쳐 점을 치게 된다. 월장으로 복점할 때에는 일신의 음양을 살펴 4과를 세운다. 1) 해[일]의 양+, 2) 해[일]의 음-, 3) 시간[신]의 양+, 4) 시간[신]의 음-이라 한다. 4과 중에 해당 5행을 관찰하여 상극인 것을 취하여 3번 전달한 다음에 사용한다.

그리고 12장과 12월의 신을 변별한다. 12장은 천일을 우두머리[수]로 하고 앞에서 1) 등사, 2) 주작, 3) 6합, 4) 구진, 5) 청룡이라 하고 뒤에서 1) 천후, 2) 태음, 3) 현무, 4) 태상, 5) 백수, 6) 천공이라 한다. 앞에서 5)까지, 뒤에서 6) 다음에 천일이 가운데 서서 12장이 된다.

12월의 신이 있다. 정월은 등명, 2월은 천괴, 3월은 종괴, 4월은 전송, 5월은 소길, 6월은 승선, 7월은 태복, 8월은 천윤, 9월은 태충, 10월은 공조, 11월은 대길, 12월은 신후이다.

이러한 음양의 여러 가지 점은 길흉과 회한을 점치는데 적용은 9가지이다. 1) 혼인하는 것[가취], 2) 물건을 만드는 것[생산], 3) 역법을 풀이하는 것[역주], 4) 집에 관한 것[옥택], 5) 사람의 출세와 명운과 관련된 것[녹명], 6) 관리에 임용되는 것[배관], 7) 제사지내는 것[사제], 8) 병이 생기는 것[발병], 9) 상례하는 것[빈장] 등이 된다.

역법을 풀이하는 것은 6가지 방법이 있다. 금성, 수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의 5 별이 모두 모이면 1) 대회라 하고, 몇 종류만 모이면 2) 소회, 다른 별과 관련이 있으면 3) 잡회, 목성과 관련되면 4) 세회, 12건에 따르면 5) 제건, 사람과 관련이 되면 6) 인신이라 했다.

오늘날 사주팔자와 비슷한 의미가 ‘녹명’ 즉 녹봉과 명운인데 역시 6가지가 있다. 1) 녹봉과 관련되는 것[ 녹], 2) 명운 즉 장수와 단명과 관련된 것[명], 3) 관리에 오르는 것[역마: 현재는 역마살이라고 하여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이동하는 것을 뜻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관리’의 의미이다.], 4) 간지와 오행 그리고 팔괘를 서로 연결하여 점치는 것[납음], 5) 병하[미상], 6) 달[월]의 별 자리와 관련된 것[성수] 등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요인들을 변별하여 그 소식[오늘날의 기별이나 편지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라지는 것과 숨쉬는 것을 말한다]을 통하게 길흉을 결정한다.

〇 의박사·채약사·주금사에 대하여

약부라는 국가기관이 있었고, 거기서 활동하던 의박사, 채약사 그리고 주금사 등이 의하여 확인된다.
백제를 비롯한 고구려, 신라, 가야 등은 심신론, 본초학, 방제학, 침술 등과 임상의학, 불교의학은 물론이고 의료 제도도 확립되었다.

의약과 관련된 백제 시대의 인물로 마라난타, 왕유능타, 번량풍, 정유타, 관륵, 다상, 법명, 법장, 익전직금종, 억인, 소수미 등도 있었다[한국한의학연구소(1996)《고려시대 이전 한의약학에 관한 연구》

약부에 관한 자료는《주서》권41 열전 ‘백제전’이다. 내관에는 전내부, 곡부[오곡], 육부[정육], 내략부, 외략부, 마부[말], 도부[무기], 공덕부[종교], 약부[의약] 목부[나무], 법부[법률], 후궁부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학계에서는 약부를 비롯한 내외의 22관사와 5부5방의 제도가 확립된 시기을 웅진백제 시기로 보고 있다. 체제가 갖추어져 해외로 파견을 하는 시기는 사비백제라고 정리하고 있다.

오경박사가 일본에 교대로 파견하기 시작한 기록은 계체 7년[513, 무령 임금 13]부터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醫박사, 易박사, 曆박사 등이 흠명 14년[553, 성 임금 31]에 보인다.

의박사는 나솔 왕유능타가 있었고 채약사는 시덕 번량풍과 고덕 정유타가 있었다[전용신 《일본서기》1999:341].

의박사 왕유능타[? ~ ?]는 나솔의 벼슬로 16관등제의 6등급에 속한다. 그는 ‘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진 높은 직책에 있는 의과대학의 교수’였다[한국한의학연구소《고려시대 이전 한의약학에 관한 연구》1996:182].

채약사로 변량풍[? ~ ?]과 정유타[? ~ ?]가 있다. 이들의 등급은 변량품이 시덕으로 16관등 중에서 8등급이고 정유타가 9등급이었다. 채약사는 당 나라의 채원사와 비슷한 기능이었다면, 시기에 맞춰 각종 약을 심고 수확할 뿐만 아니라 관리하고 처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금사는 주금[불교 용어는 진언]으로 유행병[여역]를 쫓아내는 도사나 승려를 말한다. 주금은 진언, 다라니[만달,《대일경소》권1]이다.

백제국왕은 환사 대별왕들에 딸려서 경론 약간 권 아울러 율사, 선사, 비구니, 주금사, 조불공, 조사공 6명을 헌상하였다. 이들은 난파의 대별왕의 절에 안치시켰다.[전용신 《일본서기》민달주 6년. 1996:359~360]

주금사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주금에 대한 것은 불교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 확인이 된다.

밀교 계통에서는 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주문을 외우는데 이것이 주금이다. ‘주치경’[이] ‘주목경’[눈] 등과 같이 ‘주’자로 시작되는 경전이 대개 밀교 계통인데 이들은 구체적인 의학적 내용을 남고 있기보다는 아플 때 외는 주문을 기재하고 있다[복부민량 지음 이경훈 옮김《불교의학》1987:248~249] 당시 전염병은 ‘역’, ‘여역’이라 하였는데 ‘역신’의 소행으로 보았다.《삼국유사》에는 이러한 기록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의박사와 채약사, 그리고 주금사는《당육전》권14 태의서에 비교적 상세하게 나온다. 이를 정리하여 참고하기로 한다.

태의서는 가장 높은 직위로 영[2명]이었고 가장 낮은 직위가 장고[4명]이 있었다. 태의령과 승은 그 소속은 의사·침사·안마사[오늘날 도교의 양생과 관련됨]·주금사 등이었다. 그 숫자는 다음과 같다.

의박사 1명 의조교 1명, 의사 20명, 의공 100명, 의생 40명, 전학 2명
침박사 1명, 침조교 1명, 침사 10명, 침공 20명
안마박사 1명, 안마사 4명, 안마공 16명, 안마생 15명
주금박사 1명, 주금사 2명, 주금공 8명, 주금생 10명

이 가운데서 해당 부분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의생·침생이《[신농]본초》를 공부할 경우에는 약물의 형태를 식별하고 그 성질을 알게 하고 《명당》을 공부할 경우에는 경락도에 따라 실습하여 해당 공혈을 알게 하고《맥결》을 공부할 경우에는 병의 상태에 따라 그 징후를 반복 진찰하게 하여 4계절의 부·침·삽·활의 상태를 알게 하고 《소문》《황제침경》《갑을맥경》을 공부할 경우에는 모두 이를 정통하고 숙련하게 한다.

박사는 이들을 달마다 한 번 시험하고 태의령·승은 계절마다 한 번 시험하며 태상승은 연말에 종합시험을 보게 한다. 학업과 의술이 현임관보다 뛰어난 경우에는 교체하거나 교체할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9년간 배우고도 성과가 없을 경우에는 본래의 신분으로 한다.

무릇 의사·의정·의공은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고 그 완치된 다소를 기록하여 그들의 고과로 삼는다. 매년 상한, 시기, 학, 이, 상중, 급창의 약을 조제하여 사람들의 질병에 대비한다.

약원사는 시기에 맞춰 각종 약을 심고 수확한다. 경사에는 약원 1곳을 두고 양전 3경을 택해 서인 가운데 16세 이상 20 이하를 취하여 약원생으로 충원하고 악업이 이루어지면 약원사에 보임한다.

무릇 약에는 음성과 양성의 배합, 자모형제의 관계, 뿌리, 잎, 꽃, 열매 및 풀, 돌, 뼈[골], 살[육]의 차이, 아울러 독의 유무, 약제를 그늘에 말릴 것과 햇빛에 말릴 것, 약을 채위하고 약재로 만들 시기가 있으니 모두 분별해야 한다.

약은 850종이다. 360종은 《신농본초》182종은《명의별록》에 기재되어 있고, 114종은 《신수본초》에 새로이 부가되어 있으며, 194종은 이름은 남아 있으나 용도는 없다. 모두 약재가 나는 지역을 변별하여 매년 수납하고 보관하며 그중 양질의 것을 택하여 상약국에 올린다.

의박사는 1명[정8품상]과 조교 1명[종9품상]이다.
의박사는 의술을 여러 의생에게 가르치는 일을 관장하여 《본초》《갑을맥경》을 교습시키고 나누어 그 전종을 삼게 하였다. 1) 재료, 2) 창종, 3) 소소, 4) 이목구치, 5) 각법 이라 한다.

의생들은 여러 의학 경을 학습한 뒤 전공을 나누어 교습을 받는데 대략 20명 가운데 11명은 체료, 3명은 창종, 3명은 소소, 2명은 이목구치, 1명은 각법을 배운다. 체료의 경우에는 7년간 완성해야 하고 소소 및 창종은 5년, 이목구치에 대한 질병 및 각법은 2년간 완성해야 한다.

주금 박사는 1명으로 종9품하이다. 수의 태의서에 주금박사 1인을 두었고 당은 이를 따랐는데 또한 주금사·주금공을 두어 보좌하게 하고 주금생을 가르쳤다.

주금 박사는 주금생을 교습하여 주금으로 사매에 기인하여 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일을 관장한다. 도금은 산에 거처한 사에서 기원하였고 금주는 불교에서 기원하였다. 5종의 금주 방법으로 신통하게 한다. 1) 존사, 2) 우보, 3) 영목, 4) 장결, 5) 수인이라 한다. 이것은 익히려는 자는 모두 우선 매운 것과 고기를 금하고, 단장에서 목욕재계하고 받는다.

이상으로 백제 생활의학의 실상을 대략 짐작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되풀이한다면, 의학을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당대 사회에 의거하여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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