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1985년 일본 여행 중에 후쿠오카 시 어느 가정에서 한 일주일 머무는 동안 제대로 된 다도를 만난 것 같다.

한 두어 모금이면 없어질 아주 작은 찻잔에 온몸을 다하는 정성스러움이 마치 신을 대하는 것 같은 다도가 하도 낯설어 내 기억 창고에 깊이 꽂혔다.

‘飮茶興國’이란 말을 신의 계시처럼 섬기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말은 어쩜 맞는 말일 것 같다.

차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마음까지 가라앉혀 주지만, 술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하지 않던가.

그 후 집에 돌아 와 그들의 차 생활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지만, 늘 바빴던 내 생활과 내 몸에 쉽게 베어들지 않는 다도가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공주시의 시민참여 프로젝트인 ‘웅진예원’의 차와 예절반 운영이 8년 째 되었는데도 나는 2011년도 3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이제 다섯 살 박이 손녀와 함께 배워야 하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되었다. 회원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그냥 버거웠다.

구영본 선생님과 회원들의 따사로운 배려에 어렵게 상반기 교육을 모두 마치고 현장학습을 떠나는 날인 5월 23일 오전 7시 50분.

경남 하동으로 제다체험을 하기 위해 유리와 시청 별관 앞에 준비된 버스에 동승했다. 우리 유리를 잘 아는 친구 K는 유리에게 멀미약을 챙겨주기도 한다.

오늘 남부지방에 비소식이 있었지만, 유리와 처음으로 떠나는 차밭여행길엔 설렘 가득, 기쁨 가득이었다. 그저 즐겁기만 했다.

유리는 차안에서 심심할 까봐 키티 셋 캐릭터들을 챙겨왔으나, 처음으로 타보는 버스의 휙휙 스쳐가는 창밖 풍경에 푸욱 빠져 놀며가자는 생각은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

창밖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하동은 다 와 가는데, 어찌 눈에 익은 차밭은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니 보성 차밭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하동은 지리산 깊은 계곡과 섬진강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안개, 바람, 풍화토 같은 이곳만의 기후와 토양에 맞게 야생으로 자라는 차나무들이 키가 작고, 듬성듬성 분산되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영산 지리산이 품고 섬진강과 바다가 감싸않아 겨울이 따뜻하다는 하동에서도 작년 겨울의 혹한을 비켜갈 수 없었던지 냉해 입은 차나무가 벌겋게 군데군데 죽어버린 곳이 아주 많았다.

먼저 하동차 문화관에 들러 하동차의 유례도 듣고 차 시음 행다를 했는데 구 선생님께 미리 들은 바처럼 우리가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쌍계사 옆 화개장터를 지나 어느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화랑수 다원에서 마중 나온 아주머니 뒤를 따라 둘이 우산 하나씩을 각각 받아 들고 우리 회원들은 모두 총총걸음으로 갔다.

비는 멈출 줄 모르고, 바람까지 불어대 날이 추웠다. 1창2기, 1순1엽 찻잎만을 골라 따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날씨관계상 미리 따놓은 찻잎으로 우선 제다체험을 시작했다.

뜨거운 가마솥에 재빨리 덖고, 멍석에다 꺼내어 또 덖고, 이런 방법을 세 번 반복하면 건조로 들어간다.

이리하여 나는 茶道 라고까지 말할 순 없으나 내가 완전한 차 자리를 익히는데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쌍계사에서 차운하다(초의선사)

발길이 산사에 까지 닿아서

흥겨움에 즐겁게 놀았느니라

시내는 계곡 사이로 굽이쳐 흐르고

산세는 하늘을 둥글게 감쌌다.

솔바람소리는 빈집에 어리었고

대나무 그늘은 여울을 덮었다.

다시 여기 와서 자고 간다고 그런 언약이야

어찌 또 하겠느냐 마는

깊은 산사에 비가 많이 내리더니

저녁에야 비로소 맑게 개었구나

어느새 으슬으슬 찬 기운 도는데

노송 앞 텅 빈 산사에는

용처럼 얽힌 뿌리 옛 빛 머금고

수압은 재연각에 놓여있구나.

슬프도다! 황매로 가는 길목에서

오조(五祖)의 법을 어찌 얻을 것인가.

 

(하동 차 문화관 앞)

(야생 하동 차밭)

 
(1창 2기 찻잎만 골라 딴다)
 
(찻잎을 땄다)

 

(가마솥에서 초벌 덖는다)

(가마솥에다 덖어 나온 찻잎)

(멍석에다 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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