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수 공주대 대외협력본부장

요즘 해병대에 대한 비판의 얘기가 많다. 연이어 발생한 사병자살, 민항기 오인경고사격,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마치 나사가 풀린 듯한 해병대의 헝클어진 모습은 해병혼(海兵魂)의 참뜻을 망각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해병은 군대에 끌려간 사람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해병대를 선택했다. 그런 만큼 그들은 혹독한 훈련과 천자봉 정복을 통해 불퇴전(不退戰)의 군인정신과 뜨거운 전우애를 체험하고 순검(巡檢) 과정에서 엄정한 군기를 배운다.


그 모든 과정을 제대로 이수해야만 빨강색 명찰, 팔각모자, 해병 정복, 세무 군화를 지급받는다. 이 4가지가 ‘무적 해병’의 아이덴티티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죽거나 부상당한 전우를 전장(戰場)에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해병들이 전근대적인 구타, 왕따, 기수 및 작업열외와 같은 가혹행위로 동료전우를 죽게 만든 것은 해병혼에 대한 모욕이자 해병의 수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해병대 일부 지휘관들이 그것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문맹자가 많았던 시절에는 구타와 같은 가혹행위가 군기를 잡는 첩경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군기는 사적(私的) 감정이 실린 가혹행위가 아니라 엄정한 공적(公的) 군율로 잡아야 한다.


가혹행위와 군율의 본질적인 차이는 ‘병사 개인에게 그것을 적용시킬 때 분노를 느끼게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가?’의 차이다. 병사 개인이 작은 분노라도 느꼈다면, 그것은 분명 가혹행위다.


 해병의 대선배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군율을 위반한 병사들에게는 가차 없이 곤장을 치셨고, 무단 탈영병은 목을 베어 부대 앞에 내걸었다.


그런데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이 시행했던 군율은 사적 감정이 아닌 공적 룰(rule)이었기 때문이다.


또 13척 전함으로 130여척 왜군 전함을 맞아 싸웠던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회피하는 거제 현령 안위와 중군장 김응함에게 들이댄 것도 가혹행위가 아니라 군율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삼도수군통제영의 군율이 엄격했기에 그들은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국토 수호와 국민 안녕을 위해서도 우리나라 해병대는 강해져야 한다. 젊은 피를 끓게 만드는 표어,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가 해병의 자존심이 되기 위해서도 낡은 병영문화는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 가혹행위를 일삼는 군대가 어떻게 많이 배우고 곱게 자란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겠는가!


해병대는 현빈이 아니라 해병대 특유의 엄정한 군율로 젊은이들의 지·덕·체를 막강한 전투력으로 엮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군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군율은 엄정하지만, 그 안에서는 상관과 부하 간에 언로(言路)가 개방되고, 세밀한 인적관리 시스템이 끊임없이 작동되는 군대가 진짜로 강한 군대다. 그런 해병대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해병대 지휘관들의 몫이다.


 그런 다음, 우리 해병들은 1966년 8월 11일 베트남 투이호아 전투에서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하게 산화한 고(故) 이인호 해병소령의 살신성인 정신과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임준영 해병상병이 보여준 불퇴전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들은 진정한 해병혼이 무엇인지, 또 우리 해병들이 지켜야 할 진정한 군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입증해주었다.


 해병에게 죽을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악한 적(敵)과의 교전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에 찬 동료전우의 총에 순직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서글픈 해병은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귀신 잡는 ‘무적 해병’의 참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총기난사 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한 해병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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