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저수지. 그곳은 어릴 적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축구를 하다가 더우면 들어가 수영을 즐겼다.

지금은 낚시꾼도 별로 없지만, 1970년대만 해도 물고기도 많았고, 낚시꾼도 많았다. 봄장마 때면 물이 저수지 부근의 논에 까지 가득 찼으며, 밤에는 잉어를 잡느라 쇠스랑이나, 포크, 톱을 든 사람들이 논을 헤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런 주민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잉어는 주민을 피해 자기들을 잡기 위해 진치고 있는 사람을 피해 논 저쪽에서 펄쩍 뛰어 올라 밤늦도록 집에 못 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 우리들은 횃불에 족대를 들고 붕어를 잡느라 신나게 뛰어다녔다.

가뭄으로 물이 빠지면 저수지 중간정도에 있는 대추나무가 보이기도 했으며, 동네 청년들은 그곳까지 수영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나의 집 돌담장 아래엔 나와 동갑인 친구가 살았다. 앳된 얼굴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나의 친구는 이 계룡저수지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감자를 캐오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나와 나의 형은 감자를 캐고 있었는데, 형은 감자를 캐다말고 저수지로 놀러갔다. 나는 어머니께 혼날까봐 안 갔다. 형과 나와는 나이는 네 살 차이였지만, 형이 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하는 관계로 형은 당시 6학년이었다.

한참 있다가 형이 감자 캐는 현장에 돌아왔는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함께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내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함께 물놀이를 했던 동네 아이들은 대변을 보러 갔으려니 했는데 한참을 지나도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 때마다 사고를 의식, “저수지에서 물놀이 하지 말라”고 강조했으며, 하지 말라는 물놀이를 했으니 만약 내 친구가 잘못되면 선생님께 혼이 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사고’를 예감했고, 어른들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의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친구가 물에 빠진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친구의 어머니는 머리에 썼던 수건으로 가슴을 치면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저수지로 달려갔다.

동네 청년들이 친구를 찾느라 저수지에 모였고, 한참 만에 동네 청년의 손에 친구가 들려 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말 풀이 칭칭 감겨 있었다.

당시 저수지에 있던 말 풀을 먹기도 했었는데 나의 친구는 집에 한차례 말 풀을 뜯어가 가져다 놓고 두 번째로 뜯으러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입술이 파래진 친구는 눈을 감고 있었으며, 사고 소식을 듣고 저수지에 오셨던 선생님은 당시 계룡면에 하나 밖에 없던 권의사가 올 때까지 마우스 투 마우스로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이윽고 도착한 권 의사는 눈을 뒤집어 플래쉬로 비춰보고, 항문을 벌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냥 돌아서 갔다.

당시 그가 저수지에 들어가기 전에 벗어 놓았던 조그만 주머니가 있는 핑크색 팬티와 신발이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날 이후로 난 일주일동안 무서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어른들은 “정을 떼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위로해 주셨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상처이자, 악몽이었다.

그 애랑은 참 추억이 많았다. 아버지가 당시 즐겨 피우셨던 필터 없는 새마을 담배를 훔쳐다가 보리밭에서 몰래 함께 피우기도 했고, 당시 학교에서 가난한 학생에게 주던 밀가루 빵을 내가 타서 먹고 있었는데 그 애가 나의 집이 부자라고 선생님께 꼬질러서 못타 먹게 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다.

3학년 1학기 때 딱 한번 그 애보다 내 성적이 1등 뒤졌다. 그 애가 18등, 내가 19등이었을 것이다. 그 애는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동네에 소문냈고, 우리 식구들이 이 사실을 가지고 나를 놀렸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오기가 생겨 그 다음에 2등으로 올라섰고, 그 오기는 이후에도 몇 번 발휘됐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내가 버티고 있는 것도 오기의 힘이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애의 부모님을 가급적 피한다. 나를 보면 그 친구를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 그렇다.

계룡저수지를 지날 때마다 그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부디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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