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충절의 고장인 공주지역에서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사진은 1954년 영명고등학교 졸업사진.)

일제강점기, 충절의 고장인 공주지역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핍박과 탄압에 조직적·적극적으로 대항, 그 흔적들이 공주 곳곳에 남아있다.

이런 흔적은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 있는 동학혁명군위령탑, 유관순 열사 등을 배출한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던 영명학교, 공산성 주차장에 있는 독립운동가 오동진(吳東振) 선생 추모비, 정안면 석송리의 3.1독립만세기념비, 마곡사 5층 석탑 옆에 있는 김구선생 식수 향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또 공주시 우성면 용봉리와 맞다은 청양군 목면 송암리의 모덕사에는 의병장 면암 최익현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있다.

공주시 우금치에 있는 동학군혁명위령탑.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민중항쟁 에너지의 시발점이자 근대사회를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활빈당운동, 영학당 운동, 항일의병항쟁 및 3.1운동정신 등으로 이어졌다.

또 동학혁명은 민중의 자각에 의한 농민항쟁으로써 1차 농민항쟁은 자유 민권을 위한 반봉건 항쟁이었다.

2차 농민항쟁은 일본 침략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민족자존의 반외세 항쟁으로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 가면 원혼을 달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공주영명학교 100주년 기념탑으로 유관순열사, 조병옥선생 등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공주시 중동에 위치한 영명중·고등학교는 올해로 개교 101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1919년 일본 도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윤창석 선생, 유관순열사와 1919년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준석(유관순열사 사촌오빠) 선생, 유석 조병옥박사와 중앙대학교를 설립한 임영신 등 수 많은 민족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에는 동맹휴학을 결의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구속되기도 했으며, 학생들의 계속된 항일운동으로 일제로부터 집중탄압과 감시를 받는 등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공산성 주차장 한편에 모셔진 독립운동가 송암 오동진선생 추모비.

공주시 금성동 연문광장 앞 공산성 주차장 한편에는 항일운동 당시 남만주지역에서 ‘백두산 호랑’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선생 추모비가 쓸쓸히 서 있다.

지난 1993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한 오동진선생(1889~1944)은 평북(平北) 의주군(義州郡) 광평면(廣平面) 청수동(靑水洞) 659번지에서 출생했으며, 선생의 휘(諱)는 동진(東振), 아호(雅號)는 송암(松菴), 별호는 순천(順天)이다.

오동진선생은 극렬한 무장투쟁론자로 항일에 전 생애를 바쳤으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는 절친한 친구이자 김일성을 키워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오동진선생은 3.1운동 참여 후 중국 관전현(寬甸縣) 안자구(安子溝)로 망명, 비밀결사 광제청년단을 조직하고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1920년 광복군총영 총영장으로 선임돼 관청파괴 및 요인 암살, 대한통의부를 조직해 군사위원장으로 항일전 전개, 정의부 사령장으로 각종 군사 활동전개, 고려학명당 군사위원장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27년 옛 동지인 김종원(金宗源)의 밀고로 중국 장춘에서 피체,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며 33일간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1932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경성형무소를 거쳐 1944년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는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같은 해 5월 20일경 옥중에서 순국한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있을 수 없다, 광복하고 환국하는 날 푹 쉬게 될 것이다”라며 옥중에서까지 2차례에 걸쳐 단식투쟁을 벌인 송암 선생의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 있는 공주3.1독립만세사적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33-2번지에 위치한 공주3.1독립만세기념비는 공주지역의 3.1만세운동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지난 1982년 3월 1일 건립됐으며, 이곳 광장에서 매년 4월 1일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펼치고 있다.

석송리 만세광장은 공주장날이었던 1919년 4월 1일 공주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석송리 만세둑에 운집한 민중에게 유림 이기한선생이 선두가 돼 농기구 등으로 무장한 농민들이 정안면 광정리 일본 주재소를 부수고, 일본인 집에 불을 지르며 일본헌병과 격돌, 이병림 선생 등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25명이 체포됐다.

마곡사 경내의 백범 김구선생이 식수했다는 향나무와 입산수도한 암자.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위치한 마곡사에는 신탁통치 반대하며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겨레의 큰 스승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보광대전 좌측으로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이 식수했다는 아름다운 향나무 한 그루와 입산수도했다는 암자가 희지천의 맑은 계곡 물을 따라 서 있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범인 일본군 특무장교를 황해도 안악에서 처단한 후 인천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탈옥, 마곡사 백련암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 마곡사를 다시 찾은 김구선생은 은거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공주시 우성면과 경계인 청양군 목면 송암리 면암 최익현선생의 항일투쟁과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모덕사(慕德祠).

공주시 우성면과 경계인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는 의병대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항일투쟁과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14년 창건된 모덕사(慕德祠)가 있다.

1984년 충남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된 모덕사는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영정 및 위패(位牌)가 봉안돼 있으며, 유품 등도 전시돼 있다.

공주 우성면과 청양 목면의 지경 계곡을 막았다해 앞 글자를 따서 붙여진 우목저수지가 모덕사 앞에 자리해 영당(影堂)을 비롯한 고택과 잘 어우러져 비경을 뽐내며, 매년 4월 13일을 기해 면암 최익현선생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이 밖에도 을미사변 직후 진잠현감을 지낸 문석봉(文錫鳳)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공주시 와야동(소학동)에서 공주목에 주둔하던 일본군과 일전을 벌이기도 하는 등 공주지역 곳곳에서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15일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지 예순 두 해를 맞이했다. 광복절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경축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순국선열들의 호국정신을 일깨우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의 광복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며, 가족과 일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한 선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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