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유가儒家에서 불문율로 정해놓은 ‘적장자嫡長子계승의 원칙’을 깨고, 당시 셋째아들이었던 충녕대군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했다.

유가에서 ‘적장자계승의 원칙’을 주장했던 것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꽤 설득력이 높다. 즉 적장자는 다른 자식들보다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적 경험, 인맥 형성, 인생준비기간 등의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그런데도 태종은 유가의 불문율을 따르지 않고 적장자인 세자 양녕(본래 그는 4번째 아들이었다. 그러나 위의 세 형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적장자가 되었다.)을 폐하고 충녕대군 이도李祹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또 그 도박은 태종 스스로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하 賢擇)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관한 ≪세종실록≫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중략>...연회에 입시했던 여러 신하들이 차례대로 헌수하고 춤추니, 임금도 일어나 춤추어서 헌수하고, 상왕도 역시 춤을 추며 변계량에게 말하기를, “자식이 왕이 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여, 그 아비가 되어 누리게 되니, 이와 같은 일은 고금에 드물 것이다.”하고, ...<중략>...전일에 일찍이 임금이 정사를 보는데, 그 처결하는 것이 각기 그 사리에 합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주상이 현명한 줄은 알았지만, 노성(老成; 노련하고 성숙함)함이 여기까지 이른 줄은 알지 못하였구나.”하고...<중략>...또 일찍 교외에 거둥했을 때, 임금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매양 스스로 좋아하면서 말하기를, “만일 부인(원경왕후를 지칭)의 말을 들었더라면 큰일을 그르칠 뻔했다.”하니...<중략>...』

◇ 출처 : 세종실록 2년(1420년)/5월/16일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비정한 정치세계에서 권좌를 물려주고 퇴진한 사람이 후계자와 그의 신하들에게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체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태종은 세종의 훌륭한 국정수행능력과 행동거지를 보면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더욱이 세종의 왕위 등극을 끝까지 반대했던 부인의 말을 들었더라면 큰일을 그르칠 뻔했다는 태종의 말에서 우리는 세종시대의 태평성대를 예측할 수 있다.

필자는 셋째아들인 이도李祹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태종의 현택賢擇을 ‘3’과 ‘가家’의 논리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3’이라는 숫자로 태종의 현택賢擇을 음미하다!

태종이 세자 양녕을 내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이유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태종이 맏아들 양녕을 내쳤다면, 세자 자리는 응당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차지가 되는 게 순리다. 그런데 태종은 효령대군을 제쳐두고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을 국본(國本; 세자를 지칭)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태종은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효령대군이 국본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치졸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효령대군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효령대군은 성질이 매우 곧아서 정치를 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내 말을 들으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다.”가 그것이다. 이것은 효령대군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태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에 불과하다.

물론 아버지로서 태종이 보기엔 셋째아들이 둘째아들보다 좀 더 나은 측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태종은 “사람과 말馬을 보는 눈眼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즐겨했던 만큼, 그의 판단이 정확했을 수도 크다.

다만, 필자는 태종의 현택賢擇이면에 혹시라도 그가 감추고 싶었던 마음속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3’의 문제를 꺼내보고 싶은 것이다.

그 이유는 태종의 의사결정에서 이따금씩 비상식적인 측면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가 척전(擲錢; 동전을 던져 점을 치는 것)을 통해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확정시킨 것과 점占을 쳐서 새로운 세자를 선택하려고 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우리 전통문화를 보면, 유독 ‘3’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대체로 ‘3’에는 세 가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첫째는 ‘3’은 많은 것 또는 오랜 기간이나 많은 시간을 뜻한다. 가령, ‘서 말의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에서 ‘서 말’은 많은 구슬을 의미한다. 또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에서 ‘삼년’은 오랜 기간을 시사한다.

둘째로 ‘3’은 ‘안정’과 ‘튼튼함’을 상징한다. 낚시의자와 정족(鼎足; 일명, 솥의 다리)의 숫자가 3개인 이유는, 그것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삼(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제도가 국왕의 신변안전을 위해 고안된 제도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2)정승(좌의정, 우의정)이나 단독(1)정승체제였다면, 빈번한 독살 시도나 쿠데타로 국왕이 죽음을 당하거나 권좌에서 쫓겨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밤에 일어났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5.16 쿠데타 이후부터 정권 중반기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대통령은 핵심권력의 삼각 축(중앙정보부장,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 경호실장)을 냉철하게 운영했다.

즉 세 사람에게 33.3%의 권력을 배분해 주면서 상호견제와 감시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현모양처였던 육영수 여사를 잃은 후부터 그의 예리한 총기聰氣는 날로 무뎌졌고, 절대 권력은 대통령 경호실장(당시 경호실장은 차지철이었음) 1인에게로 집중되었다.

즉 어심御心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그들 상호간의 견제와 감시기능이 실종되어버렸다. 그 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었고, 상관의 목숨을 온몸으로 지켰어야 할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현장에서 ‘나 몰라라’로 일관하는 비겁卑怯과 야만野蠻을 연출했다.

이제 지도자들은 ‘3’의 시사해주는 정치적 의미를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해도 제2, 제3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음을 깊이 자각自覺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3’은 천지인天地人사상을 상징하는 숫자로서 ‘완벽’ 또는 ‘영원’을 의미한다. 그 출처는 ‘천부경天符經’이다. 이때의 ‘3’은 각 기관의 최고지도자들이 의사봉을 3번 두드리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고지도자들은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최종적으로 확정지을 때, 의사봉을 3번 두드린다.

이것은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천신天神, 지신地神, 백성百姓들에게 고할 만큼 ‘완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 ‘셋째(3) 딸은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말에서 ‘3’은 ‘완벽’을 뜻한다. 따라서 셋째 딸은 ‘완벽’한 딸이기 때문에, 맞선을 볼 필요도 없이 데려간다는 것이다. 혹시 태종 자신도 <셋째아들 = ‘3’ = ‘완벽’한 왕재王才>이라는 등식을 연상시키면서 효령대군의 카드 패를 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설령, 그것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인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엄청난 착각일지라도.

‘가家’의 논리로 태종의 현택賢擇을 음미하다!

‘가家’는 ‘지붕 면(宀)’과 '돼지 시(豕)‘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家‘의 존재 이유는 조상에 대한 제사, 부모 봉양, 대를 이을 자식의 생산 및 훈육에 있다.

그런데 조선과 일본이 각각 정치적 문법으로 채택한 성리학과 양명학은 ‘가家’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후계자 선정에 관한 한, 그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조선의 ‘가家’에서 가장 중시되었던 것은 조상에 대한 제사祭祀이다. 즉 ‘누가 조상의 신위를 모시며 제사를 지낼 것인가?’가 최대 이슈였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맏아들(조선 초기에는 자녀들이 번갈아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던 가정들도 있었다.)이 그 책임을 떠맡았다. 그것은 맏아들이 다른 자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측면(예: 연장자로서 리더십 발휘 가능, 성공 가능성이 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모의 유산은 맏아들에게 제일 많이 상속되었다. 그마 만큼 조선의 부모들에겐 자신의 사후死後에 얻어먹는 제삿밥의 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한편 ‘가家’라는 소집단에서 국가라는 대집단으로 영역을 확장시켜보면, 국왕 역시 종묘사직의 제사를 맡아주고 자신의 대를 이어 국정을 이끌고나갈 후계 자리를 맏아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욱이 태종은 부왕인 태조 이성계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던 불운의 왕자였다. 그는 태조의 지근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부왕을 도와 조선왕조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와 신권臣權강화를 노렸던 정도전 일파의 강력한 태클로 부왕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부왕의 후계자가 ‘적장자계승의 원칙’이나 ‘창업에 대한 공적功績’이 아니라 계모인 강씨의 베갯밑송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했다. 결국 와신상담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정보와 지략을 앞세운 기습작전으로 자신의 정적들(정도전 일파, 세자 방석을 비롯한 이복형제와 그의 매형)을 모두 주살誅殺해 버렸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처럼 온몸에 피를 묻히며 권좌에 오른 태종은 ‘적장자계승의 원칙’에 따라 차기 후계자를 선정하는 룰rule을 번듯하게 세움으로써 조선 왕실의 권위와 왕권 강화를 확립하려고 했다.

태종은 맏아들 양녕을 세자로 책봉하고, 그에게 왕위를 넘겨주려고 무던 애를 썼던 ‘고슴도치 아비’였다. 그러나 세자 양녕은 부왕 태종의 간절한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잇따른 방종, 일탈, 정치적 독립상에 대한 의구심, 추문 등으로 인해 태종과 그의 신하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다.

태종은 공의公議라는 과정을 거쳐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을 차기 후계자로 선택했다. 그런데 이러한 태종의 선택이 일본식 ‘가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계자 선정방식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일본식 ‘가家’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제사보다는 ‘누가 가업家業을 이어서 더욱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점이다.

또 가업의 계승은 ‘적장자계승의 원칙’이 아니라 ‘능력우선의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진다. 부모의 가업은 여러 자식들 가운데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식에게 상속되고, 만약 자식 모두가 부적격하다고 판단되면 사위나 평생 동안 자신을 모셔온 아랫사람(일본말로 ‘시다’)에게 그것을 넘겨준다.

경제대국 일본의 이면裏面에는 ‘능력우선의 원칙’에 따른 가업계승과 그것을 기꺼이 용인하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고체계가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자신의 그룹경영권을 장남이나 차남이 아닌 셋째아들 이건희에게 물려주었다.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그는 ‘천재경영’과 핵심역량을 강화해나가는 ‘업業경영’으로 호암(고 이병철 회장의 ‘호’임) 회장이 물려준 기업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호암 회장이 셋째아들에게 그룹경영권을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와세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업계승과 관련된 일본인들의 경영철학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것의 장점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요즘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비자금 특검特檢 때문에 코너로 몰리고 있다. 그것은 이건희 회장이 기업경영에는 성공했지만, 기업윤리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에는 2%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 천상天上의 호암 회장은 사면초가에 놓인 이건희 회장에게 무엇을 주문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아무튼 태종이 충녕대군에게 왕위 자리를 넘겨주고, 호암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경영권을 승계시킨 것은 조선의 ‘가家’개념(= 제삿밥)으로서는 쉽게 해명할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현택賢擇으로 밝혀졌다. 이씨李氏 가문의 아들, 그것도 셋째아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세종과 이건희 회장이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던 것을 보면, ‘3’이 ‘완벽’을 상징하는 좋은 숫자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덕수 교수는 충북 오송에서 태어나 충북대 경제학과,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려대 강사, KAIST, KIST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1996년에 공주대 교수로 부임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공주대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책 집필, 정부기관 및 기업체 특강,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그가 집필한 책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역시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던 명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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