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 김덕수교수의 파워칼럼-세종의 리더십①

요즘 들어 세종의 리더십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KBS-TV의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이 가세하면서 세종의 인기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세종이 수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리더십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32년이라는 재위기간 동안 그가 어떤 자세로 국왕의 역할을 수행했고, 역사와 자신 앞에 놓인 숱한 난제難題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수성의 리더십과 창업의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가?

위화도 회군(1388년 5월 20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통해 정권을 잡은 다음, 1392년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종, 그리고 태종 이방원(이하 태종)은 창업 기에 해당하는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들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특히 왕권과 신권의 향방을 놓고 잠시 동안 흔들렸던 창업 초기의 혼란과 무질서는 태종의 카리스마와 매서운 결단력에 의해 말끔하게 평정되고 조선은 강력한 왕권중심의 통치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역사의 모든 악업惡業은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 그러니 주상은 성군聖君의 이름을 만세에 남기라”는 태종의 유시諭示에서 우리는 세종 치세治世의 대성공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

후세 사가들은 태종에 대해 가차 없는 혹평을 해대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들 이도李祹가 아닌 임금 세종의 입장에서, 태종은 자신의 정치적 지평을 넓혀준 훌륭한 선왕先王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종은 조선의 4대 임금으로서 풍평豊平의 시대를 열어나가면서 뛰어난 수성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위대한 CEO 군주였다.

그는 창업기의 부왕 태종이 즐겼던 ‘마상馬上의 정치’를 계승하지 않았다. 또 그는 사화士禍나 역모라는 이름으로 선비들을 죽이지도 않았으며 편 가르기를 통한 코드 정치나 배제의 정치와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만약 세종이 태종의 잔혹한 기질이나 정치적 술수를 답습했다면 그는 수성기의 군주로서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창업의 리더십과 차별되는 수성의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정치적 안목과 지혜를 갖고 있었고, 그것은 조선과 조선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행운이었다.

세인世人들은 수성의 리더십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견해는 대부분 ‘수성은 창업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수성이 창업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일례로 IMF 금융위기 시절, 전문 경영인이 아닌 재벌 2세가 경영권을 승계했던 재벌기업의 50% 이상이 자멸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의 얘기가 그리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런 논리는 정치 세계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다. 왜냐하면 고객이나 유권자들의 생각과 기호嗜好가 마치 갈대처럼 시시각각으로 요동치고 표류하기 때문이다.


세종이 보여준 수성 리더십의 3대 핵심인자; 포용, 중용, 우도牛刀

세종은 약 2개월간의 짧은 세자 수습기간(1418.6.17~1418.8.9)을 거친 후, 1418년 8월 1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의 4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그리고 이튿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자 비전을 담은 즉위교서(일명, 취임사)를 발표했다.


“태조께서 조선을 창업하시고 부왕 태종께서 큰 사업을 이어받으셨고, 지금에 이르러 내가 그것을 이어받게 되었다. ...<중략> ... 나는 태조와 태종께서 이뤄놓으신 법도를 따라 할 것이며 아무런 변경이 없을 것이다.”...<중략>... ◇ 출처 : 세종실록 1418/08/11


위 교서에 나타나 있듯이 세종은 정권이 바뀔 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보복이나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미리 차단함으로써 선대왕을 비롯한 신하들과 백성들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를 보면 세종은 왕이 되기 이전부터 예민한 정치적 후각으로 권력의 생리를 터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한 상황판단능력까지 구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세종은 황희를 비롯한 자신의 정적政敵까지도 끌어안는 포용력과 인간의 허물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창업 초기의 극심한 인재난을 극복하면서 국민대통합을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또 그는 지나친 극단狂과 극도의 조급함狷을 경계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중용 정신으로 국정을 이끌면서 언어, 예제, 법률, 음악, 과학기술, 국방, 농업, 의학부문에서 조선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대과업을 완수했다.

세종은 기존의 국정운영시스템을 혁신하는 과정에서도 우도牛刀(소를 도살하고 해체하는데 사용하는 칼을 의미)를 놓치지 않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의 자세를 견지했다.

도살한 소를 해체하는 작업은 소의 각 부위를 쓰임새에 따라 절단해나가는 어려운 작업이다.

이때, 소의 생리구조를 잘 모르는 어설픈 사람이 우도를 잡으면 쇠고기는 이 부위 저 부위가 한데 섞여져서 제 값을 받고 팔수가 없게 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우도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혁신의 본질과 생리를 꿰뚫어보는 전문가의 자세로 가장 효율적인 혁신안을 도출한 다음 은근과 끈기로 그것을 밀고 나가는 집념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세종은 국가가 지향해야 할 미래모습으로서의 정치적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광범위한 공론公論과정을 통해 조직구성원들의 민의民意를 수렴한 후, 그것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불굴의 군주였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일이 무엇인지, 또 일 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해주었다. 후세 사람들이 세종을 향해 ‘온 겨레의 성군’이라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한 평생 자신을 짓눌렀던 온갖 병마病魔와 개인적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과 조선 백성들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그의 열정과 집념에 대한 미의微意에 불과했다.

성공하고 싶거든, 세종을 치열하게 학습하라!

시대가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들은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를 상고詳考하면서 자기반성과 자기혁신을 위한 영혼의 에너지氣를 얻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카오스로 점철된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6세기 전에 세종이 몸소 실천했던 수성의 리더십을 치열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세종이 수성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권도權道(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임시웅변으로 취하는 방편을 의미)를 남용하지 않고 경도經道(법과 제도로서 현대적 개념으로 ‘시스템’을 의미)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국정을 물 흐르듯이 운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치졸한 명분이나 허례허식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유연한 사고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자세로 실사구시를 도모했기 때문에 청사에 길이 빛나는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와 도약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다. 또 올해는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창업기를 거쳤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거시적인 국정운영의 틀이 어느 정도 정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그 특유의 독단과 카리스마, 그리고 절대 권력을 앞세운 권도로 ‘대한민국의 창업’이라는 역사적 미션을 수행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遺業은 그 이후의 대통령들에 의해서 제대로 기단녹장棄短錄長(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채택한다는 의미)되지 못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지난 10여 년 동안 소모적인 내부 갈등과 지리한 혼돈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그에 대한 반성적 고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2007년 말에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과거 8년간의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그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에 따라서 판명날 것이다.

그가 수성기의 대한민국을 잘 이끈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그 자신부터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 철저하게 학습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수성기의 군주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던 세종의 리더십에 대한 학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왕 세종, 그는 아직도 우리 모두의 영원한 스승이다!

김덕수 교수는 충북 오송에서 태어나 충북대 경제학과,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려대 강사, KAIST, KIST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1996년에 공주대 교수로 부임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공주대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책 집필, 정부기관 및 기업체 특강,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그가 집필한 책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역시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던 명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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