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회적 논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동국대 강정구 교수(이하 강 교수)의 돌출적인 언행과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강 교수는 ‘역사란 무엇인가?’와 ‘이 시대, 교수들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강요한 바 있다.

배腹속은 온통 메탄가스로 가득 차 있지만, 배설排泄이 시원스럽지 않을 때 느끼는 짜증스런 기분으로 음습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햇볕에 말려보려 한다.

역사란, 강자의 입장에서 기술한 픽션에 불과하다!

‘역사란, 본디 힘(권력, 부, 필력 등)있는 자, 또는 승리한 자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된 픽션이다.’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역사가인 젠킨스 역시 “역사란,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담론談論, 즉 사람과 계급과 집단이 말 그대로 자신들을 위해 과거의 해석을 자서전自敍傳적으로 구성해내는 전쟁터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일례로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김춘추와 김유신 일당이, 백제의 의자왕을 삼천 궁녀와 놀아났던 타락한 인물로 폄훼시킨 것은 백제의 부활을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다.

의자왕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타락한 왕이 아니었다. 삼천 궁녀 역시 김춘추와 김유신 일당이 꾸며낸 허구虛構에 불과하다.

2006년 12월말 현재, 부여 인구는 채 삼만 명이 안 된다. 그러면 약 1400년 전인 660년에 부여 인구는 몇 명(어림잡아도 오천 명이 채 안되었을 것이다)이었을까?

또 그 가운데 궁녀들의 숫자(기껏해야 3~30명 이내였을 것이다. 채 1000평도 되지 않는 공주 공산성의 왕궁 터 자리가 그것을 입증해 준다)는?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질문과 논리적 추론을 반복하다보면, 삼국역사가 얼마나 많은 픽션과 사기詐欺, 그리고 추악한 술수로 가득 차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농경문화를 대표할만한 역사가歷史家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칭기스칸(그는 요즘말로 유목민족의 영원한 오빠였다)이 읽었다면, 그는 과연 ‘사기’와 사마천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사기’는 용렬하고 비겁한 사기詐欺로 가득 차 있으며, 희대의 사기꾼 사마천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해야 할 놈이다”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농경문화의 덕택으로 필력筆力을 연마할 수 있었던 역사가들은 자신과 삶의 양식이 다른 유목민족들에게 몽고蒙古, 돌궐突厥, 흉노匈奴, 서융西戎, 남만南蠻과 같은 불손한(?) 명칭을 붙여주면서, 그들을 미천한 오랑캐 무리로 깎아내렸다.

그것은 문자의 사용과 필력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던 농경문화의 역사가들이 유목민족들에게 내리꽂았던 천박한 저주의 비수匕首이자, 명백한 역사왜곡이었다.

그러나 농경문화의 역사가들은 중국의 한나라가 흉노제국에 조공을 했고, 유목민족이 중국의 북위北魏, 수隋, 요遼, 금金, 원元, 청淸나라 등의 절반 이상을 꾸려나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고 있다.

이처럼 역사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기술記述하거나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강 교수의 학문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시대, 교수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강 교수는 지식인으로서 적지 않은 내적 한계를 갖고 있다.

필자는 그와 관련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愰선생과 1996년 가을에 발표되어 이목耳目을 끌었던 소설 ‘교수들의 행진(계명대 국어국문학과 민현기 교수의 작품이다)’을 떠올려본다.

퇴계는 걸출한 인재를 368명이나 배출했던 당대 최고의 스승이었다. 그분은 스승임을 자처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다정한 벗처럼 대했다고 한다.

또 제자의 학문 정도에 따라 ‘토론식 강의’를 했다고 하니, 이미 조선시대에도 상당히 높은 경지의 수준별 교육이 실행(미국의 열린 교육과 수준별 교육을 떠벌리면서 우리의 대오각성을 주장하는 교육인적자원부 관료와 외국 먹물을 묻히고 들어와 국내 교육계를 좌지우지하는 교육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부터 반성해야 한다)되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퇴계에 대한 감동은, 그분의 문하생인 권호문權好文과 유응견柳應見이 나누었던 귀가길 대화에서 잔잔하게 배어나온다.

권호문 왈 ; “매번 이곳에 이르러 선생을 뵙거나 말씀을 듣노라면, 마치 묵은 때를 씻 어 내는 것처럼 시원하고 꿈속에서 비몽사몽非夢似夢하던 것이 갑자기 선명 해지는 것과 같다네.”

유응견 왈; “동감일세. 선인先人들이 구름과 안개를 헤쳐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가시밭 길을 다듬어 바른 길을 낸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그 심정일세. 그러니 내 어찌 학문 정진에 나태할 수 있겠는가?”


‘그 스승에 그 제자’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모습(필자는 그분들의 만분의 일이라도 흉내 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이 아닐 수 없다.

퇴계가 제자들로부터 학문적인 인정과 인격적인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실천했던 그분의 고결한 교육자적 성품 때문이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의 주장이나 이론은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 그 어떤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

교수와 거지의 6가지 공통점

한편, 민현기의 소설 ‘교수들의 행진’은 박사학위 논문심사나 교수임용을 둘러싼 검은 돈의 거래, 명예․돈․보직에 대한 끝없는 탐욕, 연구나 교육보다는 학내 정치에 몰두하는 속물지성俗物知性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연작 형태로 구성된 그 소설에서 민현기는 광수와 철우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화를 통해 먹물 집단인 교수들의 이중성을 거침없이 까발리고 있다.

“교수와 거지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는 광수의 질문에 철우의 대답이 사뭇 시니컬하게 이어진다.

철우는 “항상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얻어먹을 줄만 알지, 대접할 줄은 모른다. 되기가 어렵지 일단 되고나면, 어떻게든 밥은 먹고 산다. 일단 되고 나면, 전직轉職하기가 어렵다”는 말로 교수들에 대한 뒤틀린 심사心思의 일단을 드러낸다.

민현기의 날카로운 풍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 앞에서 오금을 못 쓰는 교수를 ‘돈’과 ‘페스탈로찌’를 합성시킨 ‘돈탈로찌’라고 부르고, 교수敎授를 ‘교활한 짐승’이란 뜻의 교수狡獸로 비하시켰다.

물론 민현기는 먹물들의 후환이 두려웠는지, “교수들 중에는 학문적인 측면이나 인격적인 측면에서 존경할만한 교수들도 많이 있다”는 얘기를 첨부해 놓았다.

그러나 필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말해주듯, 현재의 교수사회(필자는 한국의 교수사회가 전형적인 조직폭력배 사회라고 단언한다)가 이와 같은 세인들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퇴계와 강 교수를 오버랩(overlap)시켜 본다. 강 교수는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일으킨 통일전쟁이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400만 명에게 미국은 은인이 아니라 원수였다”라고 주장했다.

또 2005년 10월 18일자 시사저널에서 “나는 합리적인 반미주의자이며, 적화통일 가능성은 0%도 없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강 교수는 북한 정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을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이 0%의 적화통일 가능성을 단언하는 자체가 한마디로 난센스다.

만약 퇴계가 강 교수의 이와 같은 얘기를 들었다면, 그분께서는 혹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이 보시오. 강 교수! 당쟁黨爭만 즐기던 조선이 일제日帝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후, 식민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 아니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독립전쟁을 치를만한 힘이 없었지요.

결국 미국의 원자탄 세례와 소련의 약삭빠른 개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된 겁니다. 그런데 종전終戰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가만히 놔둘 까닭이 있었겠소?

당연히 그들은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남북분단으로 고착固着된 거 아니오? 당신이 미국이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기 때문이오. 나는 당신 얘기를 듣고 몇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소.

첫째는, 미국을 원수의 나라로 공격하기 전에 국가와 국민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던 우리들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뒤돌아보는 자성自省이, 당신의 주장에 빠져 있다는 점이오.

‘내 탓’에 대한 반성과 고뇌는 포기한 채, ‘네 탓’ 찾기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없는 법이오.

더구나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네트워크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좋든 싫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야할 나라를 원색적인 북한식 용어를 써가며 비판하는 태도는 학자로서 옳은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되오.

둘째는, 민족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김일성이 채택했던 6.25 전쟁과 400만 명의 죽음을 바라보는 강 교수의 시각은 이미 균형감각을 잃고 있소.

당신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제 아무리 민족통일이 중요하고 시급한 당면과제였더라도,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6.25 전쟁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문제요.

또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당신이 말하는 원수들(미국을 포함한 UN군)의 개입이나 그 엄청난 인원의 허망한 죽음도 없었을 것 아니오.

그런 것에 대한 내적 성찰이나 지적知的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 한, “내 학문적인 정체성과 소명의식은 냉전 성역을 허무는 것이다”라는 당신의 주장은 그리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하오.

물론 북측 입장에 편향偏向된 일부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구세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시대의 진리이자, 대세라고는 볼 수 없소.

셋째는, 강 교수는 시사저널에서 “냉전체제에서 학자들은, 예민한 문제는 외면하거나 양시양비론으로 서술하며 보신주의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했지요?

그런데 당신과 두 아들의 인생항로를 따라가 보면, 그 주장 역시 설득력이 거의 없어 보인다오. 들리는 말로는 당신이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장남은 미국의 법률회사에 근무 중이고, 차남은 카투사로 복무했다고 합디다.

그러한 배경을 가진 당신이 시혜施惠의 나라 미국을 원수의 나라로 공격하는 것이, 내게는 지식인의 가증스런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에 대한 당신 입장은 뭐요?

강 교수! 미국에서 공부했고 당신 전공이 사회학이니까, ‘희망’과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의 저자인 스코트 니어링을 잘 알거요.

그는 ‘거대한 광기’라는 책에서 미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근무했던 두 대학(펜실베이니아, 톨레도 대학)에서 잇따라 해고되었지요.

그 후, 그는 낙향해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 동안 저술과 강연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세인世人들에게 전파하는데 전념했지요.

특히 그는 젊은 시절에 작성한 비망록에서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사교춤과 화려한 야회복으로 대표되는 생활을 포기하겠다. ...(중략)...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계급투쟁운동을 계속하겠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 균형 잡힌 인격체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히고, 초지일관된 삶을 살다가 1983년에 저 세상으로 소풍을 떠났지요.

더욱 놀라웠던 것은 자기 아들이 보수단체의 일원이 되어 우파적右派的 삶을 살자, 자신의 좌파적 신념을 견지하기 위해 부자간에 의절義絶까지 했다는 사실이오.

나는 21세기 한국의 강 교수를 보면서, 20세기 미국인의 정신적 지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코트 니어링을 떠올려 보았소. 역시 두 사람 사이에는 학자적 양심과 인격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려.

강 교수! 내가 주제넘게 당신의 삶을 거론한 것 같아서 미안하게 생각하오. 또 새로운 진리를 찾아 떠나려는 당신의 학구적 자세에 대해서는 비판할 생각이 조금도 없소.

다만, 학자라면 모름지기 내 자신과 이웃, 그리고 국가와 세계의 흐름을 냉철하게 파악하면서 보편적, 합리적, 객관적인 자세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오.

당신 말대로 냉전의 성역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정권의 비민주적인 권력세습과 인권탄압, 국군포로, 강제로 납북된 사람(예: 김영철씨)과 납북선원의 송환(장기수들의 북측 송환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을 궁핍하게 만든 좌파정권의 실상과 폐해弊害부터 철저하게 파헤치는 연구를 시작했으면 좋겠소.

그것이 ‘맥아더 동상의 철거’보다 훨씬 더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오. 저 세상에서 당신의 양심적인 연구를 지켜보고 있겠소. 열심히 노력해 보시구려.”


또 민현기의 소설 ‘교수들의 행진’에 나오는 광수와 철우는 강 교수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할까?

소설 속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백수로 지내는 부잣집 아들 광수는, ‘좌파정권의 비열한 암묵적 지지를 등에 업고 무언가 좀 튀는 언행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려는 속물인간’으로 강 교수를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배부른 돼지가 소크라테스로 변신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부재의 상태로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광수에게 있어, 강 교수는 단지 자신과 같은 부류(안락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데는 교수라는 직업처럼 좋은 게 없다)의 하등 동물일 뿐이다.

학원 강사인 아내에 빌붙어 살며 박사학위논문을 준비 중인 철우 역시 강 교수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인 발언을 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교수들에게 당했던 설움과 구박, 하는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 교수들에 대한 분노와 질시가 마음 가득히 쌓여 있기 때문이다.

또 속으로는 미국 지향적인 삶을 살면서도, 겉으로만 미국을 증오하는 정의의 사도로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위선적 태도에 대해 원초적인 거부감을 나타낼 지도 모른다.

지식인에 대한 사르트르의 경고

쟝폴 사르트르(Sartre Jean-Paul)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순矛盾된 삶을 살면서, 그 모순을 극복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다.’라고 정의했다.

도대체 이것이 뭔 말인가? 그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에서 ‘지식인은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자기 모순적 존재다’라고 주장했다.

즉 지배계급에게는 그들의 통치를 뒷받침해주는 하수인으로, 노동자계급에게는 지배계급의 비열한 앞잡이로 비춰지는 회색분자(필자는 그런 유형의 사람을 ‘경계인(marginal man)’이라고 정의한다)라는 얘기다.

따라서 지식인이 회색분자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사회와 자신의 모순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까뮈가 ‘이방인’에서 설파한 부조리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부조리는 개념상에 큰 차이가 있다)와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 지식인으로 전락轉落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가르침이다. 필자는 남북분단에 얽힌 블랙박스를 풀기 위해 오늘도 노심초사하고 있을 강 교수에게 지식인에 대한 사르트르의 경고 메시지를 꼭 들려주고 싶다.

김덕수 교수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 , , ,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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