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진석 국회의원

 ‘이낙연 후보의 약점’을 묻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百濟),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일종의 ‘호남 필패론’이다.  대선 후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지역 감정을 조장한 적이 있었던가?

호남 출신인 이낙연, 정세균 후보가 펄펄 뛰고 있다. 이재명 지사의 ‘백제 운운’ 발언은 견강부회식의 천박한 역사 인식이다.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지사, 역사 공부 좀 하십시오!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내가 부끄럽습니다."

백제는  A.D.  475년 한성에서 공주(웅진)로, 538년 부여(사비)로 천도했다.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무너뜨린 것은 서기 660년, 고구려를 함락한 것은 668년이다.

한반도 전체가 처음  통합된 것은 정확히 1353년 전의 일이다. 백제의 건국은 B.C. 18년으로 추정된다. 이재명 지사는 도대체 무얼 기점으로 ‘5000년 역사’를 얘기하는 것인가?

올해는 서기 521년, 백제 무령왕이 고구려를 격파하고, 백제가 다시 강한 나라가 됐다고 갱위강국(更爲强國)을 선포한 지 1500년이 되는 해다.

백가제해(百家濟海)에서 유래한 나라 이름처럼 백제의 문화와 예술은 불꽃처럼 화려하게 주변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천여년 전부터.

백제가 당-신라 연합군에 함락되자, 왜(일본)는 661년부터  663년까지 4만7000명의 대군을 보내 백강(금강)에서 당-신라 연합군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뤘다. 조상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백제는 한반도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중국의 산동성 일대, 왜(일본)에 집단 주거지를 두고 동아시아를 호령하며 활발하게 주변국과 교역하던 나라였다.

우리가 자랑하는 한류의 원조가 바로 백제였던 셈이다. 백제인들의 개방성과 포용성, 창조적 문화역량이 우리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백제를 시원찮은 어느 부족국가 쯤으로 여기는 이재명 지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공주의 무령왕릉과 국립 공주. 부여박물관을  한번 찾으시길 권한다.

그리고 백제인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은 공주-부여 분들에게, 사과 한마디 해주셨으면 한다.

신라에 이어 한반도를 ‘통합’한 고려는 부족 연합체였다. 고려의 2대 왕 혜종의 어머니는 전라도 나주 사람이었다. 왕건이 호남에서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이다가 사지로 내몰렸을 때, 혜종의 외가 나주의 ‘오씨’들이 왕건을 구해 냈다.

혜종은 나주에서 태어났고, 이미 3살 때 세자에 책봉됐다. 고려의 탄생에 혜종의 외가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역사적 징표다. 이지사의 ‘시원찮은 백제’ 발언에 나주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조선 500년을 흔히 ‘李씨 조선’이라 부른다. 일제가 조선을 폄훼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는 하지만, ‘전주 이씨’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 

태조 이성계가 ‘목조’로 추존한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 이안사는 전주에서 살다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여진족의 강역인 함경도 지역으로 들어갔다.

 100년 이상 고향 전주를 떠나 살았지만, 이성계는 자신이 전주 사람임을 잊지 않았다. 고려의 무장 시절,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주에 들러, 고향의 부형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재명 지사가 ‘전주 이씨’ 분들에게는 또 뭐라고 해명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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