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투어리즘' 의 산실(産室) 安心院 ⓒ 특급뉴스 김광섭


바로 법적인 문제였다.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 허가도 없이 6년 동안 각 가정에서 돈을 받고 숙박업을 해 왔던 것. 마을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손님을 ‘친척’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지역 농가에서 10번 이상 묵은 손님에게 ‘친척’의 지위를 부여하는 회원제를 도입했다. 쉽게 말해 ‘쿠폰제’이다. 당시 이 방법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며, 이후 주민들은 관련법을 개정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해당지자체에서 이 지역의 민박허가를 내 줬고, 이러한 효과가 전국적으로 파급됐다.

그러면 호텔 등 기존 숙박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도 “좋다”는 반응이었다. 학생들이 민박을 하게 될 경우 인솔교사는 호텔에서 머물게 되니 손님이 늘었고, 유명세를 탄 관광객들이 늘어 더 좋다는 것.

현재 아지무마찌 지역에서는 농한기에만 민박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함께 즐기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 작은 지역에 연간 5,000명에서 6,000명의 손님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침체된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마을’로 변모했다.

이곳을 다녀 간 손님들은 자기 집으로 가서도 연락을 하고,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는 등 그야말로 정말 또 하나의 친척이 됐다. 손님들에게서 받는 민박비는 저녁과 아침을 차려주고 6,000円이다. 부업으로 돈도 벌고, 전 세계인들과 교류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본의 아지무마찌마을이 침체된 농촌에서 활기찬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그들은 첫째, 시들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직시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이들은 잠에서 깨도록 만들었다.

둘째, 선진지 연수를 통해 자기들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남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의 하나다. 모방을 통해 액기스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새롭게 시도, 시행착오를 거쳐나가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셋째는 끊임없는 교육과 회의 통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도출되는 문제를 해결해 나아고자 하는 정신자세이다. 이들은 지금도 그린투어리즘연구회를 운영하며 미래를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넷째는 여성들이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민박을 시키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밥을 해서 제공해야 하는 것도, 침구를 펴주는 것도, 가고 난 후에 정리를 해야 하는 것도, 외부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시아버님을 설득해야 하는 것도 모두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다섯째는 개인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이 사업을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시너지 효과는 커진다. 이 동네에서 어느 한 집만 민박을 했었다면 그 개인은 물론, 이 마을도 지금처럼 활기찬 마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위기들을 극복하기위해 함께 노력했다. 이들은 민박을 운영하던 중 이렇다 할 허가가 없어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법률개정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친척’이라는 나름대로의 제도를 만들어 슬기롭게 대처했다. 위기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타개할 방법을 함께 모색해 나가려 한 것이다.

여섯째는 주어진 현실여건 아래 운용했다는 점이다. 만약 경제여건도 열악한 이런 시골에서 민박을 위해 집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등 큰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여건에서 도시민들의 심신을 달래 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자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일곱 번째 농촌을 돕기 위한 지자체의 지원이다. 일본의 지자체에서는 농촌체험비용의 절반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농촌체험이 더욱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제도다.

여덟째는 관습을 과감하게 탈피하려 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부모와 자식이 모처럼 만나도 호텔방을 따로 잡아서 자는 사람들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과 한 시간이 넘도록 문을 열어두고 이야기 하면서도 “들어오라”는 말도, “들어가자”는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본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을 받아들여 자기들이 쓰던 방을 내준 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단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관습을 과감히 깰 수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했다.

아홉 번째 첫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하지 않고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박을 처음 시행하던 당시 아침 제공에 3,000円을 받고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체험객들에게 가득 선물했다. 돈을 낸 사람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다시 찾는 법이다. 돈은 내가 흐뭇하면, 상대는 결코 흐뭇하지 않다.

열 번째,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상대방이 잘되는 것으로 보면 속이 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이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내가 잘되는 것이 마을사람들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이곳에 모으는 비결이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농촌도 일본농촌과 다를 바가 없다. 애써 지은 벼는 해마다 시청주차장, 농협주차장에 야적돼 있다가 수매가 조정이 돼야만 RPC로 이동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지원을 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마을에서는 60대가 청년역할을 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돼 있다. 딱한 현실이다. 상황이 전혀 다를 바 없다.

상황은 같은데 자각이 없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위기상황의 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우리의 선배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아래 애써 땀 흘려 노력한 결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의 아우토반을 보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처럼 우리 농촌도 아지무마찌를 선진모델로 삼아 도시민과의 상생발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여행’이 아닌, ‘선진지 견학’이 효과적이다. 가서 보고, 묻고, 듣고, 체험해 봐야 한다.

그곳에 가서 우리는 ‘한국 농촌의 희망’을 만나고 왔다. 여건상으로 볼 때 차라리 우리가 더 낫다. 우리는 일본처럼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성공의 달콤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농촌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두 힘써야 한다. 시작이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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