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의 세월을 품는 작품을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석공예가 김방집(48)씨는 자신의 그런 고집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고 있다"며 미안해하면서도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30여년간 돌에 혼을 불어 넣으며 외길인생을 살아온 그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예술가로써의 자존심만큼은 버리지 않겠노라"다짐하고 있다.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 남양유업 옆에 자리한 운천석재 대표인 김씨는 도를 닦는 것만큼 어렵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스스로 만족하면서 “하루 세끼 밥 굶지 않고 살면 됐지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김씨는 17살이었던 지난 1976년 석수장이의 길로 들어섰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한 김씨는 사촌매형이 운영하던 석재공장에 취직하면서 돌과 인연을 맺었다.


체계적인 교육은 아니었지만 작업현장에서 선배들의 손놀림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 3년간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석공예기능사, 석조각기능자, 문화재 보전수리기능자이기도한 김씨는 전국 사찰을 돌며 일하는 등 그 기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 1997년 불교미술대전 동상, 1998년 충남미술대전 조소부문 입선 등 많은 대회에서 입상했다.

또 각종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으며, 지난 2002년 제37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돌 조각가들의 모임인 한국석조각협회(한국석조각연구회) 충남지부장으로 후배들을 데리고 수많은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현재는 후배를 위해 자리를 내놓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8년여에 걸친 대구 동화사 일을 마치고 정착할 곳을 찾던 김씨는 2000년 4월 이곳 장기면 봉안리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값싼 중국산을 수입해 지금의 생활고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끝까지 어려운 길을 고집하겠다는 김씨는 “처음 배울 때부터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며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운천석재 김방집 대표.
김씨는 또 “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님들이 등을 돌릴 때 참으로 안타깝고 속도 상하지만, 편하게 살자고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어 “정(精)과 성(誠)이 없이는 예술품이 나올 수 없고, 기능 없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며 “모든 기능인들이 그런 편한 길을 간다면 더 이상의 문화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때로 바보 취급을 당하고, 사서 고생한다며 손가락질도 받지만 누군가는 해야 될 일 아니겠냐?”며 “사회가 발전할수록 문화의식 수준도 덩달아 발전해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아 예술인의 한사람으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불상, 불탑, 납골묘, 조형물, 자연석간판 등 맞춤주문제작 전문업체인 운천석재 김 대표는 “꾸준히 후학양성에 힘쓰겠다”며 아사달이 석가탑에 혼을 불어 넣었던 것처럼 정과 망치를 들고 오늘도 선조들의 예술혼을 뒤쫓기 위해 여념이 없다.

운천석재: 041-858-5233, 011-980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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