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실을 보아야 한다. 사실이 인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시절 처칠이 한 말이다. 지난 24일 노무현대통령은 ‘울산보도연맹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공식사과이다.
 국가를 대표한 대통령으로서의 사과인 만큼 이보다 더한 ‘사실인정’은 없다. 잘못에 대한 ‘용서의 빎’도 그 격이나 정도가 최고수준이다. 이날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추모식’에서 노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사과와 함께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58년전 보도연맹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두가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가 전달되는 현장에는 정부를 대표해 각계 인사들이 배석했다. 사건 규명에 앞섰던 진실화해위원장과 행정자치부장관·대통령측근 비서관이 참석했다.
너무 늦기는 했으나 그래도 구색을 맞춘, ‘정부 추모사절단’인 셈이다. 이날 추모식장은 희생자가족들의 절규가 있었고, 오열이 이어졌다. 그러나 행사를 주최한 유족회측은 대통령의 사죄,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들였다. 대통령의 용단과 정부의 사실인정, 그리고 유족회의 사과수용모두가 빛을 발한 추모식이었다.
‘울산보도연맹사건’은 6·25전쟁이 부른 최초의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식 명칭이 ‘국민보도연맹’인 이 단체는 1949년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반공단체이다. 정부주도로 결성해 공산주의 사상 배격 및 분쇄를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지역할당제 때문에 6·25직전까지 전국의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이르렀다. 
그 중 상당수 연맹원은 좌익운동과 무관한 민간인들로, 강제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울산지역은 1,561명이 가입됐고 87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407명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463명의 원혼은 차디찬 산골짜기 어느 곳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다.
유족회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희생자들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57년이 지나서야 진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유족들이 고향을 등졌거나 연고가 끊겼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또 가족 중에 희생자가 포함돼 있다하더라도 그동안 겪은 수모와 핍박 때문에 선뜻 유족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보도연맹사건’은 연루된 당사자의 희생도 희생이지만 남은 유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빨갱이 취급에, 연좌제 사슬로 유족들은 크나큰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왔다. 사건이 있고 10년이 지나 겨우 마련된 희생자 합동묘도 5·16으로 다시 파헤쳐지는 아픔도 겪어야했다.
이번 ‘울산보도연맹사건’의 진실규명과 대통령의 사과는 그래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봐도 옳다. 위령사업의 지원이나 명예회복 조치만으로 유가족을 위로해서는 안 되고, 국가가 책임을 다했다고 발뺌해서는 더욱 안 된다.
억울한 희생자와 50여 년간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따라야 한다. 과거사 정리차원에서 현 정부가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했다면 차기 정부는 현실적인 보상책을 강구해 실천해야 한다. 정권 인수즉시 차기 정부는 이와 관련한 피해보상법 제정부터 서두르라.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