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속성에는 항상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 언론에 있어서 폭력은 곧 무기이다.

우매한 언론일수록 자신들의 주장하는 바를 따르게끔(또는 강제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폭력으로 결코 정의를 세울 수는 없다. 폭력은 그 자체가 이미 정의롭지 못한 데다 무모한 일이다.

따라서 언론은 이지(理智)를 가진 실재(實在)가 돼야한다. 폭력이 아니라 이지력에 따라야함이 언론의 정도다. 흐르는 물의 방향을 억지로 되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잘 흐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자 본분이다.

별 것도 아닌 신정아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허위학력으로 불거진 신씨 사건이 파문으로, 스캔들로, 게이트로, 급기야 정쟁으로 번져가고 있다. 병적인 신드롬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막상 본인에게는 구속집행도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신씨 개인문제에 앞서 시대적 경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가치인식의 경도(傾倒)라는 지적이다. 신씨의 출세욕과 허영심이 비단 신씨 개인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 흐름이 그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출신배경과 학력, 또 외모와 출세가 지상(至上)이 된 사회에서 신씨 사건은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병폐와 시대적 가치판단의 전도(顚倒)로 빚어진 이번 사건은 언론의 접근방식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신씨 개인의 신변잡기에 모든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국 대형사고가 빚어졌다. 문화일보가 신정아를 발가벗기고 만 것이다. 대표급 신문이라는 조선,동아.중앙일보도 인터넷판을 통해 그 추잡한 범죄에 가담했다. 영락없는 공범들이다.

무엇보다도 주범인 문화일보는 시종일관 무모했고 뻔뻔했다, ‘알몸사진의 게재이유를’사건 본질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으로 두달 넘게 끌어온 이번 사건이 중요한 ’이해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알몸사진'의 주인공이 실제로 신씨든, 아니면 항간에 떠도는 '합성사진' 이든 왜 하필이면 '알몸사진'이 이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일까. 그것도 독자들의 '알권리'를 앞세워 이해를 돕겠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게다가 '성로비 물증'이라는 언급은 도 무언가. 진짜이든 가짜든 '알몸사진'과 '성로비'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가. 또 사건본질을 이해하는데 어떤 이유로 '단서'가 된다는 것인가.

한마디로 '입 가리고 고양이 흉내’내는 수작이다.그리고 독자의 '알 권리’운운했는데 문화일보 독자층은 사진 하나로 천리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단 말인가. 아니면 날개 달린 상상력을 지녔단 말인가. 문화일보는 가만있는 독자까지 바보로 만들려 했고 심히 우롱했다.
이미 미쳐버려 이성을 잃은 문화일보는 그렇다 치고 잘나간다는 조선.동아.중앙일보는 또 왜 이 모양인가. 무슨 보물단지라도 찾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신정아 누드사진 발견’이라 외쳐댔는가.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는 그리 콧대높게 시비 걸더니만 문화일보 사진과 기사는 왜 그토록 줏대없이 찍고, 베끼고 법석을 떨었을까.

그리고 얄팍한 아류(亞流)신문들은 왜 도둑고양이 마냥 지면으로는 동업자를 삿대질하고 온라인상으로는 은근슬쩍 문화일보를 컨닝했던 것일까.

신씨를 발가벗기기에 혈안이 돼 있던 그 많은 언론들이 당사자가 귀국하고 난 이후 왜 일제히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는가.

이 모든 의문의 해답은 ‘언론이 미쳐있기 때문’이다. 다들 이성을 잃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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