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예전에는 자식들 버릇 고치는 데 '조상매' 라는 것이 있었다. 부모 속을 썩이거나 못된 짓을 한 자식을 앞세우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간다. 매는 손수 부모가 꺾어와 자식 손에 들려주고 아버지가 자신의 종아리를 걷는다.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때리게 한다. 자식을 버릇없고 못되게 기른 잘못을 조상앞에서 체벌로 사죄함으로써, 이 '조상매'는 대단한 감화력을 지녔던 것이다.

요즘 세태에서 만일 자식들에게 '조상매' 시험을 해본다 치자. 산소까지 갈수는 없고,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앞에 내어걸고 아버지가 종아리를 걷는다. 마땅한 회초리가 없어 플라스틱 자 정도를 자식 손에 쥐어준다. "잘못한 것은 난데 왜 아빠가 맞아요?" "네 잘못은 아빠의 잘못이니까 할아버지 보는 앞에서 내가 맞는 거다." "죽은할아버지가 어떻게 봐요?" 아버지 나름으로 납득시키려 해봤자 결국 '조상매' 재연극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파리나 유럽에서는 버스나 전철등 대중교통수단은 일찍부터 보호석이 정해져 있었다. 상이군인이나 장애자.노인과 어린아이를 안고있는 아녀자들이 혜택을 받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이 혜택에서 제외돼 있고 빈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어른이 타면 일어선다. 일본에서도 지난 70년대 이미 '전철에서 어린이를 세웁시다' 라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 차를 타면 어른들 사이를 뚫고 자리를 먼저 잡는 것이 대개 어린이다. 제자리는 물론 두팔을 펴고 자기 엄마자리나 일행의 자리까지 확보하려 설쳐댄다. 뿐만아니라 어린이들이 서 있으면 앉아있던 어른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처럼 돼있고, 어린이들도 양보받는 것을 권리처럼 여기고 있다.

 초등학교 정도의 어린이라면 지체부자유아가 아닌 이상 체력적으로 한시간 이상 서 있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대도 중년이 된 부모가 자신은 일어서고 자식을 자리에 앉히는 광경을 지하철에서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이모두 맹목적인 과보호가 빚어낸 결과이다. 어디이뿐인가. 주말 동네목욕탕은 아이들 천국이다.

또래들 끼리만 와서 난장을친다면 그래도 나무라거나 야단이라도 칠수가 있다. 버젓이 부모가 있는데도 자식들끼리 법석을 떨어도 아랑곳 않는다. 보다못해 점잖게 타이르거나 호통을 치면 되려 아버지 되는 사람이 얼굴을 찌푸린다.

같은 이유 때문에 가족동반, 그것도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오는 식당은 명대로 장사를 못하게 돼있다. 주인이나 종업원들은 아예 아이들의 무례를 타박하지도 못하고 옆손님이 언성을 높혔다가는 아이들의 부모로 부터 삿대질 당하기 일쑤이다.

 오죽했으면 손자 꾸지람도 자식 내외간 눈치봐야 하는 세상이라 하지 않던가. 송(宋)나라 명 재상이였던 사마광(司馬光)은 "자식 기르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음은 부모의 평생 허물이며, 훈도를 엄하게 하지 않음은 스승의 게으름" 이라 했다.

세태가 세태인 탓만큼 요즘 부모들이 자식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나 하며, 스승의 훈도가 왜 그다지 중요한지를 선생님들이 깨닫기나 할지... 365일이 '어린이날' 인 세상에 '5월5일' 단 하루만이라도 자식은 부모에게서, 부모는 자식에게서 해방감이라도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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