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1970년도 미국에 '지구의 날'(월드데이)이란 것이 있었다. 4월27일 '지구의 날' 에는 지구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감사하는 사회운동이 벌어졌다. '지구의 날' 이 제정될 당시 그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은 기념식에서 있었던 강연들을 모아 이듬해 한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이책의 첫장에는 '이책을 나무에 바친다' 라고 적혀있었다. 초등학생도 다아는 사실이지만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볼 때 한권의 책은 한그루의 나무가 죽어버린 사체(死體)와 다를 바없다. 한그루 나무의 희생없이 한권의 책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이치다.

'지구의 날' 을 정해 자연을 지키자는 그들의 뜻도 결국 현실 속에서 나무라는 생명체의 희생 위에서 전파될수 있었다. '지구의 날' 강연집은 나무에 그 헌사(獻詞) 를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식목일도 하나의 지구행사와 같은 성격이라 말할수 있다.

애림사상을 계몽하고 국토미화와 산림녹화를 위해 제정된 식목일은  올해로 62회째를 맞는다.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령으로 공포, 되고서 부터다. 범국민적으로 식수하는 날인 4월5일 식목일은 지난 2005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예전공휴일 당시에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와 관공서등은 이날 식수현장에 동원돼 나무를 심었다.

지난 60년대 울산에서도 각급 학교별로 '학교산'을 정해 식수를 해왔었다. 6.25전쟁으로 그만큼 우리의 강산이 황폐되고 헐벗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결과 지금은 울창하고 나무는 우람하다. 산불로 산림 손실이 있는 산에만 나무심기작업을 할뿐, 별도의 식목행사가 필요없게 됐다. 그렇다고 현재 우리의 산림이나 삼림이 마냥 건재한 것만은 아니다.

땔감이나 목재용으로 채벌되는 경우는 줄어들었으나 병충해와 대규모 개발로 몸살을 앓고있다. 도시 근교 산림은 아파트등 택지개발로 잠식되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삼림은 관리소홀로 병들어 가고있다. 산에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산림자원을 육성.보호하는 대책 또한 소홀히해서 안될 때이다.

예전 우리 선조들은 '내나무' 를 몇그루씩 갖고 자랐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족보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그 아이의 '내나무' 인 것이다. 그 나무는 그 아이의 운명과 유관하기에 정성스레 가꾸었고, 아이가 자라 시집. 장가 갈 때는 그 나무를 잘라 가재도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낭만주의적 녹색습관이 아닐수 없다.

지금은 주거공간이 아파트등 공동주택으로 변해 '내나무'는 커녕, 자기집 뜰에 한그루 '가족대 나무'를 심기도 어렵게됐다. 한 때 아파트 발코니에 설치됐던 화분마저도 안전을 이유로 철거됐다. 비록 그 의미는 퇴색됐지만 식목일을 맞아 도시 길목에 한 뼘의 녹지대라도 만들려는 의지가 살아났으면 싶다. 그마저도 여의치 못하다면 한그루 나무 대신 한송이 봄꽃이라도 발코니에 심어봄이 어떨까.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