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미목(眉目)이 수려한 경찰관이 빗속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모자가 젖고 옷차림은 빨래통 속에서 금방 건져 입은 꼴이다. 도로변 가게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할만도 한데 마냥 걷고있다. 결코 뛰지도 않는다.이유는 엉뚱하다. 비를 피한답시고 아무데나 서있는 것은 근무를 기피하는 것이며, 뛰어가면 시민들이 불안해 하기때문이란다.

공복(公僕)으로서 면목을 보인 영국경찰 얘기다. 낚시금지 수역에서 한 청년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거기에 경찰관이 나타났다. 바구니에 십여마리의 고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경찰관이 입을 열었다. "저기 '낚시금지' 표지판을 보지 못했소? " "괜히 딴데서 잡은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아놓고 여기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사람들이 오해할 것 아닙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능청맞기 까지한 친절이 돋보인다.

영국경찰이 철저하리 만큼 위민(爲民)경찰이라면 우리의 경찰상은 어떤가? '민중의 지팡이' 임을 자처하면서도 자유당시절에는 '몽둥이' 노릇을 했다. 5.16을 거쳐 군사정권 때에는 다른 큰권력에 눌리고 박봉에 지쳐 '약체경찰'로 전락했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시위현장에서 '방패막이'만 했다. 도무지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제대로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나이만 어언 환갑을 넘겼다.

 지난 6일 이택순 경찰청장이 경찰내부의 자정활동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모종의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경찰 구속자가 늘어난 것은 오락실 단속과 관련해 사적 친분관계에 있던 직원들의 실수가 적발돼 언론에 대서특필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치 "언론의 집중보도때문에 무사히 넘어갈 경찰관이 많이 다쳤다"는 뜻으로 비췄다. 이청장은 또 "경찰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조치가 다른 공무원 음주운전자에 비해 너무 가혹해서 경찰이 현장에서 뺑소니를 하는 사례를 많이봤다"고 실토했다.

이날 이청장의 발언은 해석하기에 따라 '제 식구 감싸기'가 지나쳐 공연히 언론을 트집잡는 모양새가 됐다. '경찰청 청렴도 향상 혁신전략워크숍' 격려사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공교롭게도 이로부터 나흘후인 지난 10일에도 반(反)FTA 시위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경찰로 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방패를 휘둘렀고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도 방패와 곤봉으로 폭행을 가했다. 일부 기자들은 취재장비등을 보여주며 기자신분을 밝혔으나 막무가내로 방패를 휘둘렀다고 말했다. 또기자신분을 알고서도 경찰은 "폭행 현장사진을 찍었으면 경찰에 신고하면 될것 아니냐" 며 계속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시위진압 경찰이 취재기자들을 분풀이 삼아 폭행한 것은 드문 일이였다. 과격한 시위대의 돌팔매등을 염려해 기자들을 안전지대로 유도한 적은 있어도 시위대와 싸잡아 폭행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경찰이 언론을 적대시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경찰 내부의 암묵적 소통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문민정부 들어 경찰의 위상과 처우는 매우 높아졌다. 급여도 현실화됐고 근무여건도 대폭 향상됐다. 경찰 자체 조사에서도 현직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고 이직율도 낮은 편이다. 실제로 울산지방경찰청이 올해 일반순경 공개채용시험 응시원서를 접수한 결과 17명 모집에 713명이 응시했다. 경쟁율이 무려 42대1이다. 그만큼 경찰직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공복으로서의 위민정신과 자질향상이다. 경찰직을 단순한 취업수단이나 생계 영위의 직장으로 여기는 한 영국경찰의 얘기는 먼나라 전설에 불과할 것이다. 멀잖아 우리 경찰에도 노조가 결성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성숙된 경찰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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