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행의풍수..故육영수여사 생가지 답사

故 육영수 여사 제2의 생가지 옥천읍 교동리(交洞里) 복원가옥.

문수산 모양이 태양(太陽)이 떠오르는 모양과 같으니 큰 인물이..

지난 6월 29일 사단법인 이산전통풍수지리연구회(理山轉統風水地理硏究會) 하계연찬회(夏季硏鑽會)겸 답산(踏山)일정으로 영부인(令夫人)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지를 찾았다.

회원 45명은 대전시 탄방동 롯데백화점 건너편 에서 관광버스로 오전 8시 40분 출발하여 10시경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 아랫마을 마장리 옥천육씨(沃川陸氏) 중시조 묘소 공주목사 제주목사 그 외 묘소와 고 육인수(전 국회의원) 생가지 등을 답산(踏山) 했다.

이어 영부인(令夫人) 육영수 생가지 능월리(陵月里)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안개가 많아서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풍수사로서 주변의 사(砂)를 세밀히 관찰하기는 무리였다.

현무(玄武)..뒷산은 관함봉(관모봉)이며 산모양이 관(冠)처럼 생겼다. 강력한 생기가 내려오는 대지(大地)에 안산(案山)은 문수산 산모양이 둥근 모양을 하여 일월(日月)과 같고 태양(太陽)이 떠오르는 모양과 같으니 큰 인물이 날 터임을 알 수 있다.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청정(淸淨) 암반수(巖盤水)로 양식한 숭어회와 중식을 오후 2시경 늦게 즐기는 동안 뇌성벽력(雷聲霹靂)과 세찬 소낙비가 삽시간에 많이 내렸다.

연찬회(硏鑽會)는 여러 회원이 진지한 자세로 풍수지리연구회장 남궁 승 박사 특강, 이사(理事) 이 희 선생, 이사(理事) 필자(筆者), 3인의 발표(發表)와 연구발전에 관련된 담소로 하계연찬회는 잘 마감됐다.

다음 영부인 故 육영수 여사 제2의 생가지 옥천읍 교동리(交洞里)에 도착하였다. 오래 전부터 육영수 여사 생가지 복원소식은 알고 있었으나, 요즈음은 복원작업으로 휴무상태였다.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복원 조감도.

1894년 새로 지어진 가옥은 조선후기 충청도 양반집의 전형적인 양식.

복원사업(復元事業) 게시문에 따르면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소재지는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이곳은 육영수 여사가 1925년에태어나 1950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터이다.

이집은 흔히 ’교동집(交洞宅)‘이라 불러지던 옥천 지역의 명가로서 1600년대부터 김정승(金政丞,) 민정승(閔政丞,) 송정승(宋政丞),이 살았던 집이라 전해진다.

1894년 새로 지어진 가옥은 조선후기 충청도 양반집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후 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陸鐘寬)씨가 매입한후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영역으로 구성된 아랫집, 큰집, 웃집과 담장, 쪽문,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원형과 많이 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중략)

당시 육종관씨는 400석 정도의 財産家이기도 했으나, 삼정승이 살았던 대(大)길지(吉地)를 논과 밭의 절반을 주고 대 결단을 내리고 매입했다한다.’

지난 2002년 4월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 문화재(文化財)로 지정된 이 가옥의 복원공사(復元工事)는 2004년 12월부터 시작돼 2000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복원할 건축의 총 넓이 6,477㎡ 의 터에 안채 등 13개 동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현재 안채 정도만 복원(復元)된 듯하다.

총 사업비(事業費) 90억 원 가운데 국비(國費)로 50% 정도를 충당(充當)할 계획이었으나, 기념관(記念館) 건립사업(建立事業)에 대한 국고보조금(國庫補助金) 지원이 여의치 못한 관계 등으로 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한 듯 보였다.

故 육영수 여사 생가지 솟을대문.

영부인(令夫人) 육영수 생애(生涯).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육종관과 이경령 사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上京)하여 배화여고를 졸업(卒業)한 뒤 한때 옥천여자중학교 교사(敎師)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0년 전쟁(戰爭)을 피해 부산에 피난(避難) 중일 때 육군 소령 박정희를 만나 결혼했다.

1963년 6대 대통령(大統領)에 당선(當選)됨으로써 대통령 부인으로서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내조(內助)했다.

그러나 그녀는 1974년 광복절(光復節)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격(銃擊)을 받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육영수 여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목련꽃같이 온화(溫和)한 미소(微笑)로 사람들에게 기억(記憶)되고 있다.

이집은 육 여사가 서거(逝去)한 이후 한동안 방치(放置)되다가 1999년 철거(撤去)되었는데, 2004년 12월부터 시작된 복원공사(復元工事)가 아직 본격화(本格化)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흩어진 집터마다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집터의 크기와 너른 대지(垈地)로 미루어 이 집이 굉장히 큰 집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1894년 신축(新築)한 바 있는 이 집은 조선(朝鮮) 후기(後期) 충청도 양반(兩班)집의 전통적(傳統的)인 양식(樣式)을 갖추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육 여사 부친(父親)이 사들인 후 원형(原形)과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추측(推測)하고 있다.

생가 안산(앞산)으로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생긴 모습도 나락을 쌓아놓은 노적봉(露積峯)처럼 생겨서 좋다.

안산(案山) 높이는 적당하고, 생긴 모습도 노적봉(露積峯)처럼 생겨..

풍수를 고찰(考察)해 보면 주산(主山)은 현무(玄武)라하며, 양택(陽宅)에서는 진산 이다.

현무(玄武)..양택 뒷산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이 일자문성(一字文星)이다. 일자문성(一字文星) 은 부귀(富貴) 쌍전(雙全)한다.

진산(鎭山)은 토체(土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의 정상 부분이 한 일(一) 자처럼 평평한 산을 풍수에서는 토체(土體)라고 부른다. 흔히 두부를 잘라놓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음양오행에서 토(土)는 덕(德)을 상징한다. 수(水)의 느긋함과, 화(火)의 정열(情熱), 목(木)의 고집, 금(金)의 결단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토다.

토는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으므로 균형감각(均衡感覺) 이 있다고 본다. 선과 악, 급함과 느림, 미(美)와 추(醜), 이타(利他)와 이기(利己)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동양의 제왕 학 에서는 이러한 균형감각을 제왕(帝王)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고 그 상징(象徵)이 토(土)이다.

故 육영수 생가 동쪽 담장.

그래서 풍수가(風水家)에서는 집 뒤의 현무(玄武)에 해당하는 산인 내룡(來龍)이나, 또는 집 앞의 주작(朱雀)에 해당하는 안대(案帶)가 평평한 두부 모양의 토체 형상(形象)일 경우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이른바 ‘일자문성(一字文星)’이 이것이다. 부귀(富貴) 쌍전(雙全)한다.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의 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좌청룡의 좌측이라는 방향은 집을 등지고 보았을 때의 왼쪽이다.

그러니까 집을 마주보는 방향(方向)에서는 우측(右側)에 해당한다. 우백호는 좌청룡과 반대 방향이다.

좌청룡·우백호의 실질적인 기능은 바람을 막는 역할(役割)에 있다. 좌측과 우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이 좌청룡, 우백호다.

만약 이게 시원찮으면 좌우에서 바람이 몰아치는 살풍(殺風)을 막지 못하면 그 터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본다.

사람이 거주하는 일반 양택(陽宅)의 경우 좌우 방풍(防風)은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다.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면 기운(氣運)이 흩어진다. 이곳은 빈틈없는 장풍(藏風)과 득수(得水)가 잘 되였다.

생가 안산을 주작이라 한다. 남쪽의 주작(朱雀) 앞산을 살펴보자. 주작에 해당하는 산은 보통 안산(案山)라고 부른다.

좌청룡(左靑龍)이 돌아서 안산(案山)이 되었다. 안산은 좌정(坐定)하고 앉아 있을 때 정면(正面)에 마주 보이는 산이다.

안산이 마치 볼록렌즈와 같다. 볼록렌즈는 집터를 향해 기(氣)를 반사해주는 작용을 한다.

안산은 너무 높아도 안 되고 너무 낮아도 안 된다. 적당한 높이가 좋다. 마루에 앉아 있을 때 눈높이 정도 되거나 그보다 약간 낮아도 좋다.

안산이 너무 높으면 위압(威壓)감이 들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허한 감이 들어서 안정(安定)감이 적다.

뿐만 아니라 정면(正面)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차단(遮斷)하는 기능이 약해진다. 이곳 안산 높이는 아주 적당하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 더구나 그 생긴 모습도 나락을 쌓아놓은 노적봉(露積峯)처럼 생겨서 더욱 좋다.

노적봉은 먹을 것이 풍부한 것으로 본다. 또한 일월(日月) 해와 달에 비유되는 안산(案山)으로 인물배출 그 역할 100% 발휘 했다.

주산(진산)가옥 뒷산.

그 모양이 금성(金星)이니 귀(貴)한 부인(婦人)이 나올 터..

교동집의 주산(主山)은 일자문성(一字文星)이며, 횡룡결혈(橫龍結穴)로 유혈(乳穴)에 속하며, 좌청룡(左靑龍) 끝이 안산(案山)으로 겸하여 본신(本身)이 안산(案山)의 형태(形態)가 되고 그 모양이 금성(金星)이니 귀(貴)한 부인(婦人)이 나올 터라는 옥녀단좌형(玉女丹粧形)이라 볼 수 있다.

물이 동북방(東北方)에서 흘러 들어와 서남방(西南方)으로 돌아 나가는 생기(生氣)터에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 왕향(旺向)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운명(運命)을 가진다고 하지만 자라는 동안 그 환경(環境)의 막대(莫大)한 영향(影響)을 받은 것이다.

충남 공주출생. 前 우성새마을금고 7, 8대 이사장. 현 (사)이산전통풍수지리연구회 이사. 전 공주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 강사. C.P :016-404-1434 智山 이원행
성격(性格)이며 사고(思考)하고 인식(認識)하는 내면적(內面的)형성은 산(山)과 주위환경(周圍環境)의 잠재적(潛在的)인 능력과 진취적(進取的)인 그 기상이 말없이 무시(無視)할 수 없을 만큼 영향(影響)을 받고 인격(人格)이 형성(形成)되어 지는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우리가 주장하는 음택(陰宅)보다 양택(陽宅)을 더 중요시 하며 연구(硏究)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어찌 사람의 운명이 한 곳에 국한(局限) 된 것은 아니지만 양택(陽宅), 음택(陰宅), 사주(四柱), 환경(環境), 노력(努力), 의지(意志)등의 집합체(集合體)라고 보더라도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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