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가령,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많은 애정과 사랑을 쏟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한테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아예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사회에 진출해서 성공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3류 인생을 살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암기공부에 올인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을 둘러보면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것은 학교 성적만이 인생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이 세상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필자는 그들에게 ≪장자≫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장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이 세상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것에 얽매여서 눈치나 살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장자≫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더 쓸모가 있다.’는 ‘무용無用의 용用’을 주장하며, 발상의 대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장자≫는 몇 가지의 우화를 이용해서 ‘무용의 용’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량棟梁이라는 목수木手와 상수리나무에 얽힌 얘기다.

옛날에 석石이라는 목수가 제나라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곡원曲轅이라는 지방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신목神木으로 모셔지고 있었다.

그 거대함이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몇 천 마리의 소가 더위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고 한다.

그 나무의 굵기는 남자 장정 100명이 손을 뻗쳐야만 겨우 잡을 수 있었고, 높이 또한 70~80척이나 되어서 산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우람했다.

그래서 나뭇가지 하나만 가지고도 큰 배 하나쯤은 거뜬히 만들 수 있었다. 거대한 신목 주위에는 언제나 그것을 한번 구경하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석의 제자들은 숨을 삼키며 이 거목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석은 눈길도 주지 않고 그 거목을 지나쳤다.

그를 수행하던 제자들이 석에게 질문을 했다. “저희들이 스승님한테서 목수 일을 전수받은 이래로 이렇게 좋은 재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지나치시니 저희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석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함부로 얘기하지 마라. 저 상수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무거워서 가라앉아 버리고, 시신을 넣을 관을 짜면 곧 썩는다. 가구家具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을 만들면 진딧물들의 놀이터가 된다.

나무기둥으로 만들면 금세 벌레가 먹는다. 저 상수리나무가 저렇게 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과연 석은 목수의 장인匠人답게 나무를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안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석이 제나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밤, 상수리나무의 목신木神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도대체 나를 무엇과 비교해서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배나무나 탱자나무처럼 열매가 있는 나무들은 너희들에게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나무들은 열매가 달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잡아 채여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

스스로의 장점은 스스로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법이다. 무릇 이 세상의 사람이나 사물은 모두 자신이 유용有用하다며 똑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쓸모 없으려고 노력해왔다. 천수를 마치려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수많은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나무그늘을 제공해주는 쓸모 있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오래 전에 쓸모가 있었다면 벌써 옛날에 베어졌을 것이다.”

이 상수리나무가 말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장자≫가 말하고자 의도했던 핵심 내용이다.

즉 굳이 쓸모가 있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일관되게 쓸모없는 길을 선택해야 만 장수長壽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장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유용有用의 용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무용의 용’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한탄하면서 ‘직목선벌 감정선갈(直木先伐 甘井先竭; ‘곧은 나무는 먼저 벌목되고, 물맛이 좋은 우물은 먼저 말라 버린다’는 의미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용의 용’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판단된다.

모든 게 다 소중하다!

사람이나 사물은 모두 다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하찮은 대상일지라도 그것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견고한 휴먼-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모두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 사회의 복원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개성과 선호選好의 다양성, 그리고 존재가치의 상대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상호 존중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독자들께서는 한번 산에 올라가서 주위의 나무와 풀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면 한다. 산에 가보면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보다는 볼품없는 나무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좋은 나무일수록 건물의 기둥감이나 서까래 감으로 지목되어 벌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볼품없는 나무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아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산비탈에 웅크리고 있는 볼품없는 나무들이 홍수로 인한 산사태를 막아주고, 오염된 공기에 산소를 뿜어주어 우리들이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염된 침출수와 각종 악취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난지도가 이제는 아름답고 드넓은 휴식공간으로 말끔히 단장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또 길가에 놓여있던 보잘 것 없는 돌멩이도 물속에 놓이면 작은 물고기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비탈길에 방치되어 있는 작은 나무토막도 그곳에 주정차駐停車 해 놓은 자동차가 길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주는 버팀목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교향악단을 구성하는 악기 가운데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화려한 악기만 중요한 게 아니다.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삼각형 모양의 트라이앵글도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트라이앵글 특유의 소리가 합쳐져야만 제대로 된 하모니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1원짜리, 5원짜리, 10원짜리, 50원짜리 동전이 세금을 내거나 정확한 개념의 가격을 지불할 경우, 매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잡초 또한 마찬가지다. 농부들은 잡초만 보면, 그것이 농작물의 정상적인 발육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적개심敵愾心을 발동시켜 곧바로 뽑아버린다.

그러나 논밭에 적당히 난 잡초는 다른 농작물간의 생존경쟁을 유발시켜 그것의 뿌리와 줄기를 튼튼하게 해주고 잎을 싱싱하게 만들어주는 이로운 역할을 한다는 게 그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것은 영국이 자랑하는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가 주창했던 메기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옛날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며 살던 어부들이 있었다. 청어잡이는 그들에게 있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들 어부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고민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북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청어를 런던까지 수송하는 과정에서 모두 다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활어가 죽으면 횟감으로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청어잡이 어부들은 ‘어떻게 하면 북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청어를 런던까지 산 채로 수송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헛수고로 끝났다.

그런데 오로지 한 명의 어부만 청어를 런던까지 산 채로 수송해서 많은 돈을 챙기고 있었다. 그것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그 어부는 좀처럼 그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른 동료들이 그 비법을 사용해서 청어를 산 채로 수송하는데 성공할 경우, 횟감 청어의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어느 어부가 유심히 관찰해보니, 산 채로 청어를 수송하는 어부의 통속에는 몇 마리의 메기(Cat Fish)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공유한 동료어부들은 청어를 산 채로 수송해 온 어부에게 “메기를 청어 통속에다 넣으면 수송 중에 메기가 청어를 모조리 잡아먹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하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어부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맞아요. 수송하는 도중에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요.

그렇지만 한 마리의 메기가 잡아먹는 청어 수는 기껏해야 1~2마리 정도에 불과합니다. 통속에 있던 나머지 수 백 마리의 청어들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면서 활발하게 움직이지요.

생존에 위기의식을 느낀 청어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결국 런던까지 이동하는 시간동안 청어들을 죽지 않게 만든 비결입니다.”

본래 토인비의 메기이론은 위기의식과 도전을 강조하면서 대응능력의 업그레이드만이 생존을 보장해주는 키워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횟감으로서 인기 있는 청어 못지않게 청어들의 생존을 도와주는 메기도 중요하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작물과의 적당한 경쟁을 통해서 그것의 발육을 도와주는 잡초처럼 말이다.

태산도 티끌이 모여서 만든 것이다!

큰 강물도 그 근원지를 찾아가보면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한다. 또한 드넓은 바다도 작은 시냇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찮은 것들을 따뜻하게 보듬으면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작다고 무시하면 결코 큰 것을 이룰 수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 리더들은 민초들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귀한 존재로 떠받들어 모셔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만 민초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리더로서 롱런할 수 있다.

기업의 CEO들 역시 자신들이 만드는 상품과 생산 공정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좋은 상품을 기획하고도 끝마무리를 엉성하게 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는 종식시킬 때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녀가 공부를 좀 못한다고 해서 구박하거나 그 아이의 미래까지 멋대로 예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기둥감으로 쓰일 아이도 필요하고 서까래 감이나 문지방 틀로 쓰일 아이도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이 기둥감뿐이라면, 장차 서까래와 문지방 틀은 무엇으로 만들겠는가?

필자는 ‘조물주가 우리 인간을 창조할 때, 적어도 한가지의 특기를 갖도록 설계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한 가지 선정해서 그쪽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모든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헤어디자이너로서 일가를 이룬 박준씨, 프로골퍼 박세리와 김미현양,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군, 세계적인 야구스타 박찬호씨 등이 우리들의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일깨우게 한 작은 영웅들이라고 생각한다.

김덕수 교수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 , , 등 다수가 있다. 조만간 출간 예정.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