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정의는, 정의를 내리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인 신영복 선생이 사랑에 대해 내린 정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더욱이 감옥이라는 극도의 폐쇄공간에서 절망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관장하는 ‘사랑’에 대한 성찰省察이기에, 그 맛은 마치 한겨울 밤에 먹는 동치미 국물과 같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해서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22에서 인용


사랑은 그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 상사와 부하간의 사랑, 직장 동료간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 치사랑(손윗사람에 대한 사랑), 내리사랑(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사랑) 등등. 그러나 이처럼 다종다양多種多樣한 사랑도 그것을 하나로 꿰뚫는 공통의 법칙이 존재한다.

사랑의 법칙

첫째로, 신장 기증의 릴레이식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게 하는 선순환善循環적 가치를 지니며, 삭막한 사회에 온기溫氣를 불어넣는 온풍기 역할을 한다.

둘째로, ‘사랑은 고통의 연속을 통해서 피어나는 시련의 장미’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저절로 얻어지는 대상이 아니다.

사랑은 봄철의 파종播種에서부터 가을철의 추수에 이르기까지 온갖 노고와 정성을 기울이는 농부의 마음으로 열심히 가꾸고 보살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별다른 수고 없이 덤으로 얻는 사랑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또 그런 사랑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곧바로 식어버리는 특성이 있다.

셋째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게 사랑이며, 사랑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다.

윤활유가 기계의 마모를 막아주며 기계 작동에 따른 소음을 줄여주듯이, 사랑 또한 감정변환 모드를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방향으로 작동시켜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를 더해준다.

넷째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다. 미움은 남에게 얄미운 짓을 하는 사람보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고약한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남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미운 마음에서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면 작은 손가락 3개가 자신을 향해 있다는 점이 그것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 건강과 심적 평화를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이제 사랑은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생활 속의 민방위’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섯째로, 현대 사회는 뒤처진 사람들을 위한 완충지대를 제대로 구비해 놓고 있지 않다. 오직 사랑만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사랑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애착과 용기를 갖게 함으로써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여섯째, ‘사랑하는 두 사람에겐 바늘구멍도 좁지 않지만, 서로 미워하면 드넓은 세상도 한없이 좁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움이 상대방의 단점만 보게 한다면, 사랑은 그와 정반대로 장점만을 보게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양귀비처럼 미인이고, 신사임당처럼 현명하며, 시골 아낙네에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한 성격의 아가씨를 아내로 삼고 싶은 사람은 동시에 3명의 처녀를 탐내는 것과 똑같다"는 얘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만이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한 인간으로 바꿔주는 능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사랑의 법칙 6가지 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첫 번째 법칙이다.

사랑 속에 잠복해 있는 감동의 바이러스는 전염성 측면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훨씬 능가한다.

이미 우리는 신장 기증에 따른 릴레이식 사랑을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어떤 분이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자기 남편에게 신장을 기증하자, 그에 감동한 아내가 자신의 신장을 다른 환자에게 선뜻 기증해주는 훈훈한 인간애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의 사랑

한편,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는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980~1968)와 앤 맨스필드 설리반(Anne Mansfield Sullivan) 선생님의 사랑을 꼽을 수 있다.

헬렌 켈러는 어릴 때에 앓은 열병의 후유증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가정교사인 설리반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마침내 세계적인 사회복지 사업가로서 인간승리를 일궈낸 인물이다.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여 공격적인 성품을 지닌 헬렌 켈러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설리반 선생님의 인내와 사랑, 그리고 기도였다.

설리반 선생님은 헬렌 켈러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던 인식의 창구, 즉 촉각을 통해서 지적知的 충격을 주었고 그것이 그녀의 학구열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헬렌 켈러는 맹인, 벙어리, 귀머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버드대학의 래드크리프 칼리지에 입학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헬렌 켈러는 섬세한 필력으로 여러 권의 주옥같은 책을 집필하였고, 평생 동안 맹인복지사업에 헌신함으로써 ‘3가지의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한 성녀聖女’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자인 헬렌 켈러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설리반 선생님도 한때는 쓸모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설리반은 매우 불행했다. 그녀가 10살 되던 해에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버려졌고, 이들 남매는 그곳에서 온갖 학대와 시련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그런 와중에 남동생이 죽었고, 설리반도 원인모를 눈병에 걸려 실명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시련과 절망 앞에서 용기를 주는 이야기(김동범 저)’라는 책에 따르면, 설리반은 정신병까지 얻어 매사추세츠 근교의 한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을 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설리반을 산송장처럼 취급하며 더 이상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병원에는 퇴직을 앞둔 늙은 간호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설리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극진한 사랑으로 정성껏 돌봐주었다.

나이 많은 간호사가 행한 사랑과 봉사는 무기력의 블랙홀에 빠져 있던 설리반에게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았던 정신병이 말끔하게 치유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퇴원해도 좋다는 통보를 병원 측으로부터 받았지만, 설리반은 돌아가지 않았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을 진심으로 돌봄으로써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만난 사람이 7살의 어린 장애아인 헬렌 켈러였다. 그리고 설리반은 늙은 간호사로부터 받은 사랑에다 자신의 사랑까지 보탠 ‘아주 큰 사랑’으로 헬렌 켈러의 영혼을 자극해서 그녀의 상상력과 기억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헬렌 켈러의 인간승리 이면裏面에는 위대한 스승인 설리반 선생님이 있었고, 설리반 선생님의 배후에는 퇴직을 앞두고 불쌍한 설리반을 위해 숭고한 인간애를 발휘했던 늙은 간호사의 조건 없는 사랑이 있었다.

즉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이들 세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사랑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인간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해주는 수단으로 사랑을 따를만한 게 없다. 그 대상이 연인이든, 동업자든, 부모든, 직장상사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하는 한, 인간관계는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 모드의 작동을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는 ‘오해’와 불신에 기초한 ‘시험’이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5-3=2’과 ‘2+2=4’의 원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오(5)해가 생기면 세(3)번을 숙고해보자. 그러면 이(2)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2)해를 하고 나서 또 이(2)해를 한다면 누구든지 사(4)랑을 할 수 있다.’라는 의미다.

사랑을 지키고 가꿔나가는데 있어서 숙고熟考와 따뜻한 이해만큼 소중한 게 없다. 또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시험에 대해서는 중국의 탄줘잉이 따끔한 충고를 주고 있다.

그의 충고가 의처(부)증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나 연인간의 사랑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에서 여기에다 옮겨 적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예단하지 마세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지나치고 나서야 후회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따금, 후회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탄줘잉 편저,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김명은 역)' p.95에서 인용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 , ,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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