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인仁을 이룬다.’는 의미로서, 이는 인仁이 정신수양의 시작인 동시에 끝임을 시사한다.

공자는 “군자가 진실로 어짐仁에 뜻을 둔다면,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공자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가 바로 우리들이 찾는 인자仁者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르쳤던 뛰어난 제자들, 이를테면 자로, 염구, 공서화와 같은 사람에게도 인자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았다. 공자가 그렇게 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서(恕)와 충서(忠恕)에 얽힌 비밀

공자는 제자 번지樊遲가 인仁에 대해 물었을 때, “인자는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한다. 또 인仁은 동정심을 모태로 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서恕’와 ‘충서忠恕’가 있다.

우선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심(心)자를 합한 형태다. 여기서 ‘마음이 같다.’라는 것은, 곧 ‘자기의 마음과 동일하게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공자는 이것을 충서라고 말하면서, “충서란, 도道에서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가령, 자신이 추워서 떨고 있다면, 그때 자신이 추운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름 아닌 충서의 의미다. 이를 종합해 보면, 공자는 인仁에 이르는 도道를 충서의 개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한편, 공자는 인仁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즉 그는 ‘자기가 남 앞에 서고 싶을 때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남을 먼저 그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인자’라고 강조했다.

이는 남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인仁에 도달하는 첩경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공자가 설파한 ‘인仁의 도道’는 맹자에 이르러 사단四端의 하나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학’에 나오는 혈구지도(絜矩之道;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하기 마련이니,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는 의미)로까지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서(恕)만 실천해도 좋은 인간관계는 따 놓은 당상!

‘과부가 과부 마음을 제일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남편의 사랑 속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여염집 아낙이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는 젊은 과부의 애환을 손톱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자고로, 불행은 불행끼리 위로가 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부로 한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시어머니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청상과부靑孀寡婦인 며느리를 대하는 것과 같은 자세가 바로 ‘서恕’의 모습이다.

만약 인간들이 저마다 이러한 서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웃음과 축복이 충만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관을 만드는 장인은 관을 짤 때 모든 사람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고, 수레를 만드는 장인은 수레를 만들 때 모두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인간이란 족속은 자신의 이익부터 제일 먼저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이 법도法道보다 앞서고 방종放縱이 예의를 망가뜨리는 한, 서恕가 자리 잡을 공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비자’를 보면, ‘태산은 흙과 돌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높은 산을 만들 수 있었고, 양자강 역시 작은 시냇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포용했기 때문에 큰 강을 이룰 수 있었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는 서恕의 자세로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해 준다면,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게 되어 큰 인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몽골제국의 칭기스칸과 중국 위나라의 오기 장군을 들 수 있다.

'서(恕)'는 리더십의 원천

칭기스칸은 검소하게 살면서 부하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자기 것을 부하들과 공유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또 그는 자신의 말에다 부하를 태웠으며, 자신의 옷을 부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게다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 전리품이 확보되면, 전투에서의 공헌도에 따라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부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그 때문에 칭기스칸과 부하들은 일심동체一心同體로 강력한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몽골의 기마군단이 세계 최강의 군대로서 연이은 불패신화를 창조하며,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칭기스칸이 몸소 실천했던 서恕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는 부하의 고름까지 입으로 빨아준 장군으로 유명하다. 오기는 대한민국 공수특전단의 지역대장처럼 직접 부하들과 함께 행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항상 부하들과 의식주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행군을 할 때에도 말을 타지 않고 부하들과 같이 걸었다. 자신이 먹을 식량도 부하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휴대했으며, 모든 고통을 부하들과 함께 나누었다.

오기가 보여준 서恕의 자세에 감동한 부하들이 그의 명령에 절대복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은 부하 중의 한 사람이 몸에 난 종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하를 발견한 오기는 자신의 입을 종기 부분에 대고 고름을 빨아냈다.

나중에 그 얘기를 전해들은 부하의 어머니는 울면서 쓰러졌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위사람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댁 아들이 졸병 신분인데, 지체 높은 장군께서 직접 그분의 입으로 고름을 빨아주셨소. 그런데 무엇이 서러워 그렇게 운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졸병의 어머니는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해에 오기 장군께서는 종기로 고생하는 제 남편을 보고 자신의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있었던 전투에서 제 남편은 오기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그만 전사戰死하고 말았습니다. 듣자하니 이번에는 오기 장군께서 제 아들 녀석의 피고름을 빨아주셨다고 하니, 이제 아들의 운명도 결정된 것 같아서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다.

‘손자병법’을 보면 ‘부하들을 친자식 대하듯이 돌봐주면 부하들은 불안한 계곡으로도 행군할 수 있고, 사지死地에 빠진 연휴에도 살아남게 된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는 리더가 서恕의 자세로 부하 직원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설령 조직에 어떠한 역경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서恕는 썩어가는 배추 잎처럼 시들시들한 인간관계를 싱싱하고 건강하게 회복시켜주는 신비의 ‘비아그라’라고 말할 수 있다.

'서(恕)'와 인간의 운명

‘조용헌 살롱’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6가지 비방을 접할 수 있다.

조용헌은 적선積善, 눈 밝은 스승明師과의 만남, 명상, 명당 터 잡기, 독서, 명리命理에 대한 이해 등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이런 6가지 비법이 모두 서恕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눈 밝은 스승과의 만남이나 적선은 서恕에 기초한 겸손한 자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명상과 독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과 수행을 독려하고, 명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부질없는 과욕을 자제함으로써 서恕의 마음을 한층 심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명당 터에 음택(陰宅; 묘터)과 양택(陽宅; 집터)을 마련했다는 것은, 이미 서恕를 실천함으로써 조상들과 이웃들로부터 신뢰와 칭송을 충분히 받고 있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명당 터의 확보는 조상과 이웃들의 아낌없는 협조와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서恕는 용서容恕다. 용서란, 많은 정신적 고통과 갈등이 수반되는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입은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플러스적인 발상으로 그것의 치유를 위해 적극 나서려는 용기가 수반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서를 하면, 용서 받는 사람보다 용서를 해주는 사람에게 더 많은 축복이 내려진다. 용서를 거부하면 마음의 상처가 새록새록 돋아나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지만, 용서를 허락하면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말끔하게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지갑 속의 여유 돈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라고 생각한다.

잘못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용서가 함께 하는 한, 기존의 인간관계는 마치 100년산 포도주처럼 깊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으며 원숙한 경지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이처럼 서恕에 기초한 용서와 화해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운명까지 밝은 모습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부부 사이에도 서(恕)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신랑과 신부가 맞선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양쪽 집안의 아버지가 주막집에서 대포 한잔을 나누다가 사돈을 맺자고 의기투합하면 그것으로 결혼이 성사되곤 했다.

신랑과 신부가 혼례식장에서 처음 맞대면을 하고도 그들 대부분은 백년해로百年偕老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들이라고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 남성들의 횡포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넓은 치마를 입은 여인답게 서恕의 정신으로 지아비의 모든 장단점을 포용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슬기롭게 사셨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결혼 전에 충분히 사귀어보고 나서 시집 장가를 가는데도 불구하고 이혼율이 무척 높다.

이는 전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정신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고한 구상(1919~2004) 시인은 어느 주례사에서 “아름다운 오해에서 시작되어 참담한 이해로 끝나는 과정이 결혼이라지만, 그 참담한 이해의 과정에 서로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실려야만 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이는 참담한 이해의 과정에서 부부가 함께 ‘서恕’라는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켜야 적어도 가정이 깨지는 파국破局만은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진리 중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 , , 등 다수가 있다. 김덕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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