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5일은 식목일이다. 그 하루 전인 4일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淸明)이었다. 청명은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이때가 되면 완연한 봄이 되어 하늘은 맑고, 날씨는 따뜻해서 만물의 생기가 왕성해 질 때이다.

그래서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낮 시간도 제법 길어져서 농사를 준비하기 참 좋은 때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개나리, 벚꽃, 홍도화, 명자, 할미꽃 등 등 온갖 꽃이 만발할 때라서 천지가 아름다운, 참 좋은 때이다. 그러니 식목일에 나무심기는 얼마나 좋겠는가?

또 이때는 한식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도 하고, 올 해처럼 윤년이 드는 해에는 선대 산소에 잔디를 보식(補植)하는 등 잘 살펴 드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집이나 산소 주변 등지에 여러 가지 나무를 심는다.

요즘에는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베란다에 화분 몇 개를 새로 들여 놓든지, 아니면 묵은 화분을 새로 분갈이를 하는 방식으로라도 식목일의 의미를 살리기도 한다.

필자도 잔디가 많이 훼손된 조부모님 묘소를 사초(沙草)해 드리고, 증조부터 7대조까지 묘소 봉분(封墳)에 잔디를 보식해 드렸다. 그러면서 선산 일대의 칡넝쿨과 잡목을 제거하고, 새로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리고 났더니 묵은 체증(滯症)이 내려간 듯 상쾌해진 기분이다.

이렇듯 나무 몇 그루, 꽃씨 좀 뿌려도 기분이 남다른데, 넓은 산에 많은 나무를 심는다면 그 느낌이 어떨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생명을 심는 것이요, 꿈을 키우는 일이다. 위대한 철학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인 듯하다. 선친(先親)께서 성년이 되는 아들에게 ‘樹德種福(수덕종복)’이라는 글을 내려 주셨다. 그 때 필자는 ‘樹德(수덕)’은 ‘修德(수덕)’과 같은 의미로 보고, ‘스스로 덕을 닦아 널리 복을 나누라’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 지금도 가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인생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덕(德)은 고사(固辭)하고, 교양도 많이 부족한 필자에게는 실행하기 어려운 이상(理想)이지만, 그래도 ‘덕을 심고 기르기 위한 노력, 그리고 작은 복이라도 서로 나누려고 하는 노력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식목일에는 몇 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목원을 떠올리곤 한다. 천리포수목원은 지금이야 도로 사정이 좋아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1960년대 초 천리포 수목원은 궁벽(窮僻)진 태안반도 외딴 곳에 있어 교통이 불편했다. 이러한 외지에,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평생의 노력을 모두 쏟아 심은 나무와 풀, 꽃들이 큰 숲(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피와 땀, 그리고 정성과 열의로 그 수목원을 만든 ‘파란 눈의 나무할아버지(고 민병갈 원장)는 이미 20년 전쯤에 세상을 떠나고 없다. 먼 훗날을 위해 헌신하는 이러한 가치가 바로 진정한 식목(植木)의 의미라고 본다.

이제 8일 뒤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이 난무(亂舞)하다. 그래도 앞으로 4년간 국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지게 해줄 지도자를 심고, 기르는 큰일을 앞두고 있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인물들이 새로운 정치를 심고, 기를 지도자로 선출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은 누구나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처럼 나중에 정치계를 떠났을 때 오래도록 존경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선량(選良)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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