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참 예쁘고, 듣기 좋은 말이다. ‘고맙습니다’란 말로 우리 농막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농막은 2016년 8월말 40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제2의 삶을 위한 작은 나의 공간이다. 작지만 오밀조밀 꽤 쓸모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정우와 윤우(손자)가 좋아할 만한 공간 배치였다.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손자들이 오래 간직할까 고민했다.

6평의 작은 농막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다락도 만들고, 지붕 위에 장군산을 조망할 전망대도 만들었다. 농막 이름도 ‘곰북재’란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곰북재 옆에는 예쁜 붕어들의 놀이터와 물레방아도 설치했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정우와 윤우가 공주에 오면 반드시 곰북재에 가자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곰북재’라는 농막이름이다. ‘곰북재’라는 팻말을 걸었더니 “‘곰북재’가 무슨 뜻이에요?”하고 묻는다.

쉽게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어렵게 설명해보자. 한자로 ‘금양재(錦陽齋)’라 썼다. 반응은 오히려 시큰둥하다 못해 현학적 오만이라는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한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다음부터 쉽게 말해야지하고 다짐했다. “곰은 공주의 옛말이고요, 북은 북쪽이라는 뜻이고, 재는 집이라는 뜻이에요. ‘공주의 북쪽 집’, ‘고마나루 북쪽 농막’, ‘금강의 북쪽 쉼터’라는 뜻이에요.”라고 말이다. 그렇다. 공주 북쪽에 한반도 모양의 아기자기한 서정적 농장이 있고, 그 쉼터의 이름이 ‘곰북재’이다.

정호완 등 언어학자에 의하면 단군 할아버지 살았을 때 ‘니마’와 ‘고마’란 말이 있었단다. ‘니마’는 해, 하늘, 불, 낮, 남자, 아버지의 상징으로 후대에 ‘님’으로 바뀌었고, ‘고마’는 달, 땅, 물, 밤, 여자, 어머니의 상징으로 ‘곰’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선생님의 ‘님’은 ‘니마’에서 온 것이고, 곰나루의 ‘곰’은 ‘고마’가 줄어든 말이란 것이다.

곰북재의 곰도 마찬가지로 옛말 ‘고마’에서 온 것이다. ‘고마’가 일상어로 고착된 것은 ‘고맙다’에 찾을 수 있다. 고맙다는 ‘어머니답다’. ‘자애스럽다’는 의미이다.

‘고마’란 말은 동물 이름, 부족이름이었지만, 그 의미의 외연을 넓혔다. 나라 이름, 민족 이름, 지역 이름을 나타내고, 일상어(고맙습니다)로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훈민정음(한글)으로 표기된 ‘고마’란 말은 찾지 못했다. 용비어천가에 ‘고마나루’란 말이 있다기에 열심히 찾았으나 ‘公州江’이란 말밖에 찾지 못했다.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고마’를 찾으면 대박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훈민정음 ‘고마’는 찾지 못하고 한자로 쓴 고마는 찾았다. 중국 주서(周書)에는 백제 사람이 조공을 바치는 그림과 함께 백제의 도읍을 ‘固麻(고마)’라 표기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가면 복사본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백제 유민이 사는 곳을 ‘高麗(고려)’라 쓰고 일본말로 ‘고마’라 읽는다. 또 곰을 나타내는 한자 ‘熊(웅)’도 ‘구마’라 읽는다. 熊本(구마모토), 熊谷(구마가야) 등이 그 예이다. ‘고마’가 나라 이름, 동물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마’가 ‘곰’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한자 사용이 일반화 된 통일 신라 시대에 이미 곰으로 불렸을 것 같다. ‘고마고을’이 이미 ‘곰골’로 바뀌고, 한자로는 ‘熊州(웅주)’라 표기했다. 이것은 고려 태조 23년에 ‘公州(공주)’로 표기한 것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공’은 바로 ‘곰’이기 때문이다.

‘熊川(웅천)’도 이미 ‘고마 가람’이 아닌 ‘곰강’으로 불렸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1447)에 ‘公州江’으로 표기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공주강을 지칭하는 말로 ‘錦江(금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강 전체를 아우르는 ‘錦江(금강)’은 조선 후기 ‘동국문헌비고(1770)’, 연려실기술(1776), 대동여지도(1861) 등에서 볼 수 있다. 금강은 고마가람>곰가람>곰강>금강으로 진화했다. 금강은 고마다운 강, 고마운 강이다.

이제 우리 농막 곰북재(錦陽齋)를 다시 살펴보자. ‘곰북재’의 곰이란 한자가 없다. 그래서 ‘錦(금)’이라 썼다. ‘비단’이 아니라 ‘곰’이다. 다시 말하면 곰강인 금강의 표식이다.

그럼 ‘錦陽(금양)’의 ‘陽(양)’이란 무엇인가? 북쪽을 의미한다. ‘漢陽(한양)’은 한강의 북쪽이다. 요즘 집값으로 들썩이는 서울 강남은 ‘한양’이 아니다. 엄격히 말해서 사대문 안을 ‘한양’이라 지칭했다. 중국의 낙양이나 심양도 마찬가지다. 물길이 있고, 그 북쪽 터전이 바로 ‘陽(양)’이다. ‘錦陽(금양)’은 금강의 북쪽 터전이다. 곰북재는 금강의 북쪽 터전에 자리 잡은 작은 집이요, 고마의 정기가 깃들인 쉼터이다.

우리 농막의 이름을 읊조리면서 고마의 의미를 되새긴다. 고마의 의미는 대한민국의 상징이고 표상이다. 고조선의 표상이 바로 고마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겨레의 이름이다. 우리는 바로 고마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고마는 중국과 일본까지 떨친 글로벌화한 백제의 이름이다. 또한 번영과 영광의 미래 이름이기도 하다. 21세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다시 태어난 이름이고, 미래의 공주 이름이다. 참 고마운 이름이다.

아들이 물었다. 장군산 곰북재 전설이 무어에요? 장군산 곰북재 전설? 고마나루 전설이 과거라면, 곰북재 전설은 미래이지. 우리 정우와 윤우가 만들어갈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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