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쯤 홍콩발 기사로 산동대학 고고학 팀이 고대의 성벽을 발굴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제법 크게 기사가 실렸다.

산동성 '띵꽁(丁公정공)지역에서 발견된 이 고대문자는 곧'띵꽁문자'로 불리기 시작 했다 한다. '띵꽁문자'의 해독에는 세계적인 고대문자 전문가들이 총동원 되었다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각기 달랐다. 가로7.6~4.6센티, 세로3.2센티, 두께0.35센티 사다리꼴 도자기 조각이었다. 그 위에는 11개의 고대문자가 신비를 간직한 채 새겨져 있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자와는 분명히 다른 문자라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다. 즉 갑골문을 거쳐 청동기에 쓰인 금문, 예서, 해서로 이어지는 중국 한자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문자라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 민족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의 종족들이 사용했던 문자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한다.

한국의 학계에서는 관심조차 끌지 못한 이 '띵꽁문자'의 분석을 위해 일본의 기자와 학자들이 파견해서 상세히 보도했다. 이들은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라는 견해 등을 발표하면서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이토록 이 문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문자의 발견지점이 중원 문화의 발상지인 허베이,허난 일대가 아닌 중국의 동쪽 끝 산동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발해로 흘러드는 황하의 옆구리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바로 동이족이 활약하던 벌판이었다. 동이족에 대한 기록은 한국의 고대 문헌에서는 잘 찾기 힘들지만 중국의 문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은나라 때의 갑골문에서는 이 지역에 살던 종족들을 런fang(人方인방)이라고 불렀고, 주나라 때의 청동기 문자에서는 '이(夷)'라고 불렀다. 후대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이들을 '똥이(?夷)'라고 불렀다 한다.

중국의 고대문헌에 동이족에 대한 기록들이 상세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이들이 끊임없이 중원을 침범하면서 중국의 한족들과 오랜 시간을 싸웠기 때문이다. 원래'이(夷)'에서 동이가 된 까닭은 이들이 중원의 동쪽 끝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중원을 향해 거칠게 말을 몰던 용맹스런 종족들. 바로 동이족인 것이다. 동이족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의 누나 형님들이 아닌가? 이 동이족의 터전에서 고대문자가 발견 되었는데도 우리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지리연구까지 해가면서 그 문자의 해독에 골몰했다고 한다.

중국의 한 학자가'동이족의 문자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비쳤지만, 다른 중국학자들의 비난 때문에 의견을 접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은 심증을 굳혀 가면서 그러나 말없이 연구에만 몰두 했다고 한다.

일본학자들의 견해는 신석기때 상당수준의 문화권 부족이 사용했던 문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앞으로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출현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이 지역에 성벽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이미 이 지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문화가 발전해 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전제아래 그렇다. 관련유적이 지속적으로 발굴되리라 추정했다. 또 그는 아마도 커다란 홍수 때문에 많은 유물이 바다로 쓸려갔을 것이라는 추정도 곁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매스컴, 어느학자도 이 글자의 해독에 매달리지 않았다. 명함크기만한 토기조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 학계의 뜨거운 열기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연구가 깊어질수록 중국의 국수주의 학자들은 한족의 갑골문보다 정신적으로 앞선 문자가 4,500년 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애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가짜라는 견해까지도 사석에서 내놓곤 했다 한다.

그것은 중화문화 5,000년의 뿌리를 흔들어놓는 중대한 시련이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이 문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에 하나 이 문자가 정말로 동이족의 것이라면 한민족의 조상이 정말로 중국의 동쪽을 휘젓던 민족이라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고구려의 옛 땅 문화들과 발해의 유적들만으로도 은근히 켕기는데 "띵꽁문자"라는 그야말로 문화의 땅문서까지 확인된다면 아시아의 문화와 정신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 모르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바닥 만한 땅덩이도 두 조각으로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쪼개고 있는 이 우리들, 이 좀팽이들의 조상이 정말로 그토록 대단 했던 인물들이란 말인가?

고구려 때의 만주벌판은 물론 발해의 물을 마시며 산동 일대에서 말갈기를 세워 달리던 사나이들이 아낙들이 정녕 우리의 조상 이었단 말인가? 부끄럽게도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판단을 내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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