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추석명절을 지내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게 지냈다. 집안을 대청소하고 언제나 만나면 즐거운 손자 맞이하랴, 차례 상에 올릴 음식 준비하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밀렸던 얘기 나누랴 늦은 밤까지 밝은 빛이 꺼질 줄 모른다.

금년 추석은 추수 전에 빨리 와서 모든 차례 제물을 햇것으로 장만하기 어렵기도 해서 한 해의 풍년 기분을 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추석 전에 강속으로 진행된 태풍 링링이 전국을 휩쓸고 가면서 많은 피해를 입혀 마냥 즐겁기만 한 추석이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일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정국이나, 민심도 갈라져서 가족이나, 친척 간에도 정치얘기는 해서 안 되는 금기의 추석을 보내기도 한 것 같다.

추석날이 오기 전에는 ‘명절’, ‘가족’, ‘고향’, ‘만남’, ‘풍요’, ‘나눔’ 등의 주제어가 들어가는 말들이 많이 오가다가, 추석날이 되면 아침에 잠깐 ‘차례’, ‘성묘’에서 시작하여 오후가 되기도 전 어느 사이에 ‘정체’, ‘설거지’, ‘짜증’, ‘피로’ 등등의 명절증후군 얘기로 가득하다.

한동안 ‘주부명절증후군’이 회자(膾炙)되더니, 요즘에는 명절을 보내기 위한 경제 부담과 아내의 스트레스 호소 등으로 인한 심리적 불편을 느낀다는 ‘남편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자연스레 쓰여 지고 있는 것 같다.

본래 추석은 오래 전 조상 때부터 지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로, 이 날이 되면 외지에 나가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모두 함께 모여 정과 기쁨을 나누고, 조상에게 올리는 차례를 지낸 후 성묘하고, 맛있는 절기 음식을 이웃, 친척, 친구들과 나누면서 서로 간의 친목을 다지고 여러 민속놀이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져 왔다.

어디 그뿐인가, 추석이 음력 8월 15일로 정해진 것은 대대로 조상께 풍년의 감사를 드리고, 주변과 함께 오곡백과를 서로 나누어 어려운 이웃을 함께 염려하는 매우 좋은 전통도 계승해 왔다.

그러던 추석의 풍속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추석이 ‘조상과 부모 등 웃어른을 섬기는 날[차례와 성묘]’이라는 생각이 ‘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내는 날[휴가]’이라는 의식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그 사례로 ‘D귀성(歸省)’, ‘ㅁ귀성’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잘 먹지 않는 전이나 나물 같이 신세대 며느리들이 잘 만들 수도 없고, 즐겨 먹지도 않는 차례음식이나 조율이시(棗栗梨?; 대추, 밤, 배, 감)같은 과일을 피자나 더 맛있는 과일 같은 것으로 바꿔 진설(陳設)하기도 하고, 차례를 지내는 방식도 다양하다고 하니 과거 전통 차례 절차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실로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변화이다.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것은 다반사이고, 성묘도 미리 하고, 추석 연휴 때는 국내?외로 가족여행 가는 사람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설날에 시댁(본가)으로 가서 지내고, 추석 때는 친정(처가)으로 가서 지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상은 명절을 보내는 현대인들의 의식(意識)이 180도로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조상숭배, 추수감사, 부모와 시댁 중심 ’이 ‘후손과 부부와 자녀 중심’으로 변하고 있고, ‘명절’이 ‘휴가’로 변하고 있으며, ‘특별한 가족행사’가 ‘평범한 일상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상과 부모를 섬기며, 가족 등 주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세시 풍속을 즐기던 명절’이 ‘핵가족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시간 여유를 가지면서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일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화가 전통문화를 유지, 계승해야 한다고 보는 측면에서는 심각하게 우려되는 현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명절도 세시풍속이라는 점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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