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 공주대 명예교수 칼럼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 등을 가르칠 때 어떤 한자(漢字)를 훈장이 먼저 읽어주면 학동들도 따라서 읽고 암송하거나, 뜻을 새기는 방식으로 교육했었다고 한다.

어떤 한 서당에 혀가 짧은 훈장이 있었는데 혀짤배기 발음 탓에 ‘바람 풍(風)’이라고 발음하지 못해서 ‘바담 풍’, ‘바담 풍’하고 가르쳤다. 그러니 학동들도 훈장을 따라 큰 소리로 ‘바담 풍’, ‘바담 풍’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서당 훈장이 “내가 언제 ‘바담 풍’ 했느냐. ‘바담 풍’ 했지!, 똑바로 따라 하거라!!” 그러니 이 서당 훈장을 따라 배웠던 학동들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 속담은 교육자가 지녀야 할 모범적인 책임감과 사회적 책무성(responsibility)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교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교직에 있었던 교육인들이 피해 갈 수는 없다고 본다. 43년 6개월 간 오로지 교직에만 있었던 필자가 바로 며칠 전인 지난 8월 31일 정년퇴임을 하면서 가졌던 마음을 한마디의 주제어(key word)로 정리해보니 영락없는 ‘바담풍 교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1인당 GNP가 고작 70$ 정도 되었을 때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고, 어렵사리 공부했던 혀 짧은 교수가, 21세기 핵가족 시대에 소황제 처럼 태어나서 1인당 GNP가 30,000$정도 되는 시기에 자라고 배워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교사가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인성 좋고 유능한 제자들을 가르치겠다고 이리 저리 뛰어다녔으니 어찌 바담풍 교수가 아니겠는가?

그런 교수에게 학부 학생들이 지난 6월 5일 정년사은행사를 해 주고, 대학에서는 조촐하지만 8월 22일 격식 있게 정년퇴임식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8월 23일에는 유아교육학과 교수들과 교육대학원, 대학원의 유아교육학과 석, 박사 제자들이 또 퇴임식을 해 줘서 ‘바담풍 교수’라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또박또박 받았으니 그야말로 정년을 맞이하는 꼭뒤가 결코 편하지 않았다.

그동안 국립 종합대학교 사범대학의 교수로서, 유아교육법과 정책을 연구한 학자로서의 인품이나,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37년간이나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퇴임직전에는 대학원장을 맡아 두 분의 총장을 모시고 대과(大過) 없이 대학경영의 막중한 책임까지 져 보았다는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동고동락했던 교수들 전원이 추천을 해서 남은 인생도 평생 공주대학교의 명예교수가 되어 사회활동을 활 수 있는 영예도 얻었고, 국가로부터 황조근정훈장까지 받았으니 그 영광스러운 소회(所懷)를 어떻게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영어로는 퇴임을 보통 ‘retire’라고 한다. 제2의 인생을 달려가기 위해 타이어를 새롭게 바꿔 끼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영예롭게 정년을 맞이하여 하는 퇴임은 당사자만의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또 새로 달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동안 연구와 교직에 충실하고 개인의 영예를 얻기 위해 숨차게 뛰어 왔던 것과 같이, 이제부터는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또 다시 힘차게 달려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생이 다할 때 남은 가족과 제자, 사회로부터 꼭뒤가 덜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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