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 이일주 교수 칼럼

지난 8월 3일 토요일은 말복을 앞두고 치열한 날씨가 극성을 부린 날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떨어지는 무더위에 공주에서는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명탄서원 공주를 추로지향으로 꿈꾸다’라는 큰 주제로 지난 6월 1일부터 10회에 걸쳐 이루어진 명탄서원의 토요 인문학 강좌의 종강식이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본래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예부터 지금까지 학문 활동이 활발하고 예절이 바른 곳’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유학(儒學)을 대표하는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鄒)나라와 같이 ‘예절과 학문이 뛰어나 인문학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이날 공주시의회 의장과 공주문화원장, 공주향교 전교,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에서부터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에 재학 중인 84세 할머니까지 여러 명이 모여 종강식을 하고,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장을 지냈던 문화 전문가의 인문학 강의가 이어졌다.

이 강좌는 공주시가 주최하고, 백제문화전승보존회와 명탄서원이 주관한 2019년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숨어있는 명탄서원?충절사 다시 보기’로, 명탄서원과 관련 있는 인물과 유적, 그리고 그 분들이 남긴 문서 등 유물과 사상을 통해 현대인들이 지녀야 할 큰 교훈을 얻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철학을 배우고자 함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명탄서원은 공주이씨 후손이면서,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문인으로, ‘두문동 72현’의 1인으로 추앙받은 송은(松隱) 이명성과 조선 초기 여러 요직을 거친 후, 세종 때 궤장(?杖)을 하사받고, 우의정에 추증된 사봉(沙峰) 이명덕을 제향하기 위해 1490년(성종 21)에 건립되고, 1585년(선조 18)에 사액(賜額)된 서원이다.

공주이씨는 공주를 관향(貫鄕)으로 하는 문중으로, 송은과 사봉 선생 외에도 임란공신 이천장, 이괄의 난 때 인조를 공주에 호종(扈從)했던 이정구, 공주향교를 이건하게 한 이정란 등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이필주, 이호원 등 훌륭한 독립운동가와 항일 애국지사 이덕영도 공주이씨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明齋) 윤 증(尹 拯)의 어머니가 공주이씨이며, 전주이씨 덕천군 후손으로 조선 시대 진주목사였던 이몽경(李夢慶)이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해 공주이씨인 어머니 외향(外鄕)인 공주로 입향하였고, 삼의사(三義士)를 배출한 만경노씨 문중의 노 혁(盧 革)이 공주이씨와 혼인하면서 공주에 처음 입향하게 된 것을 보면 공주이씨가 공주에 기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공주에는 명탄서원 말고도 석탄 이존오와 한재 이 목, 동주 성제원, 조헌, 송준길, 송시열, 서 기를 제향하는 충현서원, 초려 이유태가 후학을 양성하던 용문서원, 그리고 조선 단종과 황보인, 김종서, 정 분 등 충신과 성삼문 등 사육신과 생육신 등 모두 95위가 모셔져 있는 숙모전, 문극겸을 배향한 고간원, 그 외에도 문회당 등 등 많은 서원, 사우 등에서 매년 공주향교와 각 문중이 주관하는 제향과 인문학 강좌 등을 통한 대학자와 충신들의 높은 정신을 오늘날까지 계승하려는 노력을 해 오고 있다.

요즘과 같이 물질이 만능이 된 것 같은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문화지체(文化遲滯)’ 현상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과 역사 문화의 도시 우리 공주에서는 과거 백제시대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문명을 계발하였듯이, 이미 도래해 있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자칫 잃을 수도 있는 인문 정신을 되살려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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