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 이일주 교수 칼럼

엊그제 7월 21일은 천주교에서 정한 제24회 농민주일이다. 지난 1994년부터 농민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해 왔고, 1995년에는 춘계 주교회에서 연중 제16주일을 ‘농민주일’로 제정하여 지금까지 매년농촌과 농민을 위한 사랑모으기 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전국의 각 교구에서 다양한 농민주일 행사를 한다고 한다. 성당에서 기념미사를 하고, 직거래 장터를 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알고, 특별히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농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한편, 농민이 아닌 사람들이 농민과 연대하여 농업과 농촌을 위한 좋은 일을 한다는데 천주교가 농민주일을 제정한 본질이 있다고 본다.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고, 평생을 많은 농촌 출신 학생들을 가르쳐 본 교육인의 한사람으로서, 천주교회가 농민주일을 정하여 농민과 농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감사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율이 23%에 불과한데도 최근 마늘과 양파 파동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농산물이 농민들의 노력의 대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필자는 ‘자녀를 대학까지 가르치는 농민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표현한다.

우리 주변에서 농업에 전념하고 있는 농민들을 보면 자나 깨나 재배하고 있는 작물들만 생각한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에게는 사람이 먹을 물까지 대주고, 파종하기 전에 거름을 충분히 주고 여러 번 갈아엎어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결실이 풍성하게 해 준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밭으로 논으로, 밤사이에 작물들이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두둑이 내려앉으면 다시 북을 돋아 주어 뿌리가 튼실하게 자라게 해 준다.

그래서 ‘농작물은 농민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농민들은 작물의 특성에 맞게 토양도 개량해 주고, 때를 잘 맞추어 파종하고, 날씨, 기온 등을 작물에게 잘 맞도록 여건을 조성해 준다. 실로 인간이 자손을 애지중지 하듯 마치 작물이 인격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대한다.

교육인들이 아동이나 학생들을 대하는 것 이상으로 농민들은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고 배려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교육인 중 Parker는 “학교는 인간 농원이요, 교사는 인간의 산 경작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농민과 교육인은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농민과 교육인 모두 소중한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된다.

농작물이나 인간이나 급한 마음으로 농민이나 교육인의 마음대로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농작물과 아동?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여건을 조성해 주고 그들 스스로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북 돋아주고, 또 기다려 줘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어린 농작물이나 영?유아일수록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농작물 재배가 농민의 농업기술에 의해 좌우되듯이 교육은 교육인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농업과 교육은 큰 차이점도 있다. 농업은 한 해 잘 못되면 그 다음해 농사를 잘 하면 되지만, 인간 교육은 한번 망치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한다. 농작물을 기르는 과정은 인간을 교육하는 과정만큼이나 소중하지만, 결실을 맺은 농작물 중 우수하지 못한 것은 제 값을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소중하지 않은 존재란 없다.

오히려 여건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동?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과 교육투자를 하여야 한다. 그 것이 바로 형평성(equity)에 맞는 교육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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