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 교수(공주대학교 사범대학)칼럼

오늘은 6월 25일, 69년 전 북한군이 불법으로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일제로부터 1945년 8월 15일 독립한 우리나라는 군사적 편의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국군이, 북한은 소련군이 나누어 점령하고, 5년간 신탁통치를 하기로 합의했었다. 한국민은 맹렬히 반탁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좌파세력이 소련의 지령을 받고 신탁통치를 찬성하면서 한반도에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야기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유엔에 한반도 문제가 제기되었고, 남북 대립 속에서 1948년 8월 남한만의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해 12월에 유엔총회에서 합법정부로 승인 받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는데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한반도에 각 각 다른 두 개의 정권이 수립되어 대립하였다.

북한은 정부 수립을 마친 뒤 미, 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였는데 공산세력의 준동에 대응하기 위해 남한에서는 미군의 계속 주둔을 요청했지만 결국 미군이 1949년 6월에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였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면서 한반도는 같은 부모, 형제를 둔 민족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비극이 초래되었던 것이다.

‘남한을 해방시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전쟁’ 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북한의 공격으로 당시 남한은 그야말로 엄청난 전쟁 지옥으로 빠져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되었지만, 한국군 58,127명, 미군 54,246명, 그 외에 영국군, 캐나다군, 터키군 등 15개국 군인 3천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공산군에 의해 사망한 양민이 12만명나 되었다고 하며, 일반 국민들까지 합치면 500만명이나 죽었다고 하니 어찌 이런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싶겠는가.

공주도 한국전쟁의 참상을 비껴가지 못했다. 공주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하게 끌려가서 죽은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10년 전인 2009년 7월 9일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속칭 살구쟁이 골짜기에서 한국전쟁 당시 공주의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한다.

국도변에서 1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야산에 길이 14-19m, 폭 2.5m, 깊이 55-120cm, 규모의 4개 구덩이에서 모두 235구의 잔혹하게 사살되어 묻힌 유해가 발견되었는데, 이 들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은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살구쟁이 말고도 한국전쟁 중에 공주의 여러 지역에서도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

특히 요즘 사사건건 국민 여론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들의 높은 리더십과 강한 책무성을 기대하게 된다. 비극의 한국전쟁을 딛고 일으켜 세운 고귀한 자유와 평화는 안보가 담보될 때 영속될 수 있는 것이며,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공주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고귀한 목숨과 바꾸면서 배운 화합정신을 승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보훈의 달을 보내는 엄숙한 날 6?25에, 공주보 문제 등 등 오늘도 견해를 달리하는 정치권과 주민들이 서로 반목하는 일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고, 공주 시민 모두가 한 팀(one team)이 되어 단합하는 새로운 날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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