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 해월스님의 심우실에서

홀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으니

상대가 있고서야 비로소 내가 드러나는 것
이것이 연기법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라는 존재도
부모가 있은 연후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은 연후에 부모가 계시며
형이나 동생이 있어야 형제요
홀로 있을 때는 형제라는 말이 없으니
서로 상대를 말미암아 내가 존재한다
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세상이라고 하는 큰 덩어리도
나라고 하는 것이 있은 연후에 세상이요
나라고 하는 존재 역시 세상이라는 존재 없이
나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크게 보면 내가 곧 세상이요 세상이 곧 나이다.

늘 쓰는 말도 그렇다.


이 한글자와 음만 놓고 보면
도무지 한자가 아닌 다음에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다음에 타기
혹은 하기 라는 글자가 붙어야
비로소 입으로 하는 말인지
몸을 태우고 달리는 말인지 명확해 지니
우리는 이렇게 연기의 이치를
입과 행동과 생각으로
보여 주며 살아가고 있다.

소리 글자인 한글이
뜻글자인 한자와 구분되는 이유다.

하여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보는 자 나를 본다 하셨다.

하여 연기법은 결국
나 홀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는
공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공의 성품을 철견하여 깨달으면
그 때 비로소 부처를 보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병이 깊은 제자 바칼리가
죽기 전에 부처님을 뵙는 것이 소원이라
하는 말을 전해 듣고 문병하신다.

바칼리가 소원을 이뤘다 좋아하는데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바칼리여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라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보는 것이다 하셨다.

그 법이 바로 연기법이요
사성제 팔정도로 설명되는
세간에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사성제 팔정도라는 것조차
인연생기법을 자세히 나눈 것이니
부처님은 누가 무슨 가르침을 말하든
그 속에 사성제 팔정도가 들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법과 비법을
구분하라 하시는 것이다.

나도 역시나 연기의 산물이라
연기의 관계가 스러지면
자연히 공성으로 돌아갈 무상한 몸이라
무상한 몸에 집착하여 허망한 놀음에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을 일이다.

금강경에 사구게도 그렇다.

세간에 모든 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여 진실한 상이 아니고
그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다 하신다.

상이란 바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니
이 상이 상이 아님을 나는 것이
부처가 되는 첩경이요, 완성의 자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저 잘난 맛에 산다고 그런다.

그 거 잘난 맛이라는 것이 아상이고
상대 역시 그런 마음 상태로 살기에
그것을 인상이라 하지만
아상도 공하고
인상도 공하며
중생상도 공하고
수자상도 공함을 깨달으면
그것이 진정한 부처요 보살이다.

중생은 중생이 아닌 부처요
부처는 자기가 부처라는 상도 없는 이가 부처다.

다만 부처는 길 모르는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이정표를 보고
갈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았다 해서
차에서 내려 이정표에 절을 하고
감사하다 하는 사람은 없다.

그처럼 부처는 법과 진리
연기법을 가르쳐 주시고도
한마디 가르친 바가 없다
하시는 분이 부처다.

세상이 온통 무법천지가 된다 해도
그도 역시 법이 머무는 현장이요
한민족 5천년의 역사가
생사와 열반이 실현되는 도량이다.

악인도 공성의 나툼이요
선인도 공성의 현현이라
그 내부는 모두가 공하다는 공통점에서
생겨 난 아지랑이 물거품 같은 것이다.

그 가운데 연기법이 있어서
선과 악의 행위에 대한
엄중한 인과응보의 법칙이 작용하니
모든 것이 공하다 하여
함부로 행동하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니
해도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을
팔정도로 삼으라 하시는 것이다.

견.사.어.업.명.진.념.정

이 기회에 외워두고 이 팔정도조차
서로 인연생기에 의해 같이 일어나고
같이 스러지는 공성의 형현임을 생각하자.

6월 현충의 달
우리가 과거에 행해온 일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명확히 보자.

또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미래의 결과로 나타남을 각성하자.

“적폐청산을 하자”며
타인의 비리만을 집어내는 이들에게
“과거의 잘못에 사로잡혀 싸우기보다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그런 관계로 가자“고 하는 어느 학자의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물론 과거 청산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그 청산은 ‘한풀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언제까지
어리석은 짓에 함몰되고
양 발목이 사로잡혀 있으면서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정국을 풀고
미래 지향적인 국가와 사회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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