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의 동작치유-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꽃샘바람이 난리다. 나는 똘기(?)가 있어 이런 날 엉덩이가 들썩거려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강가에 사는 나는 바람에 익숙하다지만, 봄바람은 그런 듬직함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뜨끈한 선짓국이 나를 부른다. 이럴 때는 공주산성시장을 찾는다. 시장 안에는 20여년 넘게 선짓국을 파는 식당이 있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러 쫑쫑 썬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땀을 내며 먹는다.

어릴 적 모친께서는 양동이에 가득담은 붉은 핏덩어리가 섞인 무언가를 가지고 오셔서 대파와 무청을 넣어 가마솥 가득 끓여 하숙생과 가족들에게 푸짐하게 내어주셨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선짓국은 봄철 둔해진 미각을 깨울 뿐 아니라, 봄이 내 품안에 안겨짐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꽃향기보다 더 진한 향. 아마도 난 그 어머니의 품 속 같은 구수한 냄새가 섞인 나의 온몸으로 기억되어지는 그 향기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마치 젖내기 아기가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이마에 땀을 뽀송뽀송 내며 젖 먹던 모습이 향기로 변할 때처럼 말이다.

어찌 그것을 ‘향기’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더 멋진 표현을 할 수 없는 나의 무지가 아쉽고, 속상하다.

식사를 끝내고 시장 통 골목을 빠져나올 때 쯤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겨드랑이엔 황태포를 끼고 있는 한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그분께서는 겨우내 잘 지내셨는지가 궁금해서 조상 묘를 찾으러 가는 게 분명해 보였다.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유독 황태포가 보인 것일까? 아마도 믿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웠던 것일 게다. 행동 때문에 본 것이 아니라, 느낌이 나를 깨운 것이 아닌가 싶다.

봄이다. 할미꽃도 보았다. 시장 통 선짓국 집을 향했다. 아저씨 겨드랑이에 낀 황태포도 보았다.

그렇다. 나는 이 봄날 나의 어머니의 품을 본 것이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불더라도 그것은 봄바람이다. 엄마의 품 같은 봄. 바. 람. 나는 이것을 서른여덟 번째 동작치유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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