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의 동작치유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짹—짹—짹--짹. 참새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달라진 밖의 변화를 느끼게 해줍니다.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는듯한 참새의 울음소리는 지구의 큰 숨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에구나 싶어 가까이 내려다보니 제가 그만 싹을 밟아 버렸군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벌써 나오셨는지 몰랐어요.”

작약이 봄소식을 전하려 땅을 뚫고 안주인을 보고 있었지만, 무딘 이 사람의 눈에는 땅만 보였습니다.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줄 아는 그런 눈 말입니다.

다만 잠깐 둘러볼 생각으로 슬리퍼를 신고 서성였던 터라 나온 싹을 밟았어도 부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미안한 마음으로 작약과 눈을 마주칩니다. 벌써 사방에는 조심스레 꽃모양을 갖춘 들풀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건빵 속에 있던 별사탕 모양의 꽃도, 머리에 이고 있는 이름 모를 풀꽃도 말입니다.

노란 인동도 보이고, 세상을 매혹시킬만한 향을 지닌 백목단의 목대에는 메주콩만한 연분홍빛 촉 눈이 나왔습니다. 몽글몽글한 개구리 알 모양을 여러 개 합친 듯한 천리향 꽃망울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끔씩 소금물을 타 정성껏 뿌려 키웠던 해당화도 거만한 모습으로 잔가시를 둘러싼 가지에 촉을 틔우려 눈곱만한 자기 속살을 보여줍니다.

꽁꽁 둘러 얼지 않게 하려 쌓아두었던 연꽃 항아리를 풀어보니 연한 연두 빛 새싹도 보였습니다. 토란 모양과 흡사한 돌단풍 묵은 뿌리는 작은 포도송이처럼 생긴 꽃송이를 어느새 피웠습니다.

꽃대가 올라와 여러 개의 별꽃 모양을 피워내고 난 다음에야 아기손바닥만한 잎을 보여주는 돌단풍의 무리는 저희 집의 큰 자랑거리이기도 합니다.

“왜 나를 소개하지 않느냐?”고 시비를 거는 꽃도 있습니다. 뽀송뽀송한 아기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온 할미꽃의 무리도 입을 다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산달맹이 빛 좋은 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할미꽃을 저희 집 앞마당에서도 볼 수 있으니 이게 호사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저리 생겼을까. 눈을 땔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것이 할미꽃이 주는 행복입니다.

주황색 꽃 무릇은 그 추운 겨울동안 파란 잎을 간직하다 이 봄부터는 떠나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언제나처럼 떠날 때를 알고, 나올 때를 아는 계절의 엄숙한 질서는 인간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꽃들이 자기본분에 충실하게 때를 기다려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울림을 볼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새 봄이 시작될 것입니다.

봄은 시작입니다. 싹의 첫 트임이고, 우리의 가슴을 여는 첫 트임입니다. 저는 그런 첫 촉의 트임을 발견할 때를 서른일곱 번째 동작치유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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