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잼 있는 중국이야기-22

"又?又?"~섬세하면서 아주 빨갛다. 한국여자들의 산뜻한 입술화장을 본 중국인들의 표현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에게 느낀 가장 강한 인상으로 의외로 한국여성들의 입술을 꼽는 이가 많다.

밝고 선명한 붉은색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한 한국탤런트의 입술, 젊은 중국 여성들에게 개혁 개방이란 다름 아닌 칙칙한 색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도한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의상이나 화장 등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유달리 '촌스럽다'는 감정을 많이 갖게 된다.

문화인류학적인 면에서 보면 각 문화권의 색채 표현은 거의 모두 신비주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신비주의 삶의 모습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많다. 그러나 문화란 별게 아니다. 바로 색깔의 차이인 것 같다.

중국인들은 체크무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 은은하거나 중간색들에 대해서도 별로다. 그들은 원색을 즐기고 좋아한다. 촌스럽다고 느끼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파스텔톤과 중간색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극단의 선택이 지니는 이미지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이 선택한 가면일수 있다. 파스텔톤에 익숙하기 때문에 촌스러워 보일뿐이다. 인간은 원래 자연의 일부이다. 그래서 원래 자연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

모임, 야유회, 특히 등산갈 때면 유달리 원색을 입고 싶은 이유는 마음의 고향,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일 게다. 중국은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 중의 하나다. 중국인들 역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성정들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들은 표면을 잘 꾸미지 않는다.

하지만 색상은 자연색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빨간 내의. 빨간 바지에 빨간 자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중국인들의 표면은 수천 년 내려온 자연의 모습 거의 그대로다.

중국인들은 고대로 부터 색상을 계급구분의 표시로 활용했다. 전설 속 요순 황제의 웃옷은 검은색, 하의는 붉은색 이었다. 그 후 한나라 이후엔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또 농민, 상인, 마부, 가마꾼 등 각각의 고유 색상이 있었다.

중국인의 색상심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경극의 얼굴 그림이다. 이 얼굴그림에는 기본적으로 붉은색, 검은색, 흰색, 보라, 하늘색, 녹색, 노란색, 금색, 은색 등이 쓰인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붉은색과 녹색, 검은색과 흰색이다.

붉은색은 충성심과 용기, 의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경극에 등장하는 꽌위(관우)의 얼굴은 온통 붉은색이다. 또 삼국지에서는 꽌위의 수염을 붉은 수염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오 시대에 붉은색의 ?은 공산주의 사상에 투철함을 뜻했다. '홍'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또 ?은 떴다는 의미다. 유명해졌다는 뜻이다.

녹색은 주로 하층민이 입는 색상이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관노, 농민 등이 녹색 계통의 옷을 입었다. 삼국시대 황건적의 유니폼은 황색 두건에 풀빛 옷이었다. 황색은 흙과 땅을 상징하며 풀빛 옷은 글자 그대로 민초를 상징한다. 녹색은 파장이 짧아 차가운 이미지를 동반하는 색깔이라 한다.

중국인에게 차가움은 책벌의 의미이다. 그래서 녹색은 천민적 느낌뿐만 아니라 차가움과 벌을 의미한다. 이른바 냉궁이다. 마음을 차갑게 얼려버리는 책벌이다. 차가움은 누구나 꺼리는 이미지이며, 녹색이 하층민을 상징하는 것에는 계급적 냉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국 남성에게 녹색 모자를 선물하는 것은 큰 실례다. 녹색모자를 썼다는 뜻의"戴?帽子"란 "마누라가 바람났다"는 뜻이다. 지금도 상용되는 어휘다.

공산혁명 이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계급통일을 완성한 일등공신은 녹색 인민복이다. 과거에는 천민의 대상이었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의해 전 인민을 대표하는 메인컬러로 변한 것이다. 공산 혁명 이후 녹색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정치적 색상으로 변모했다.

또 경극의 얼굴그림에서 녹색은 의리와 용맹을 뜻한다. 그런데 이 의리와 용맹은 충성의 붉은색과는 다소 다른 것 같다.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끼리끼리의 충성과 맹세 그러니깐 조금은 뒷골목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의리와 용맹의 색이다.

검은색은 철학의 색이다. 중국인에게 검은색은 단순한 무채색이 아니다. 고대에 황제가 입은 웃옷은 검은색 이었는데 그것은 하늘이 밝아올 때의 여명의 상징이라 한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포용하는 종합색이다. 중국인의 검은색 역시 다양함의 융합색이다. 중국인의 검은색. 그을음으로 먹을 만들고 먹색만으로 예술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삼라만상의 깊은 세계를 표현하느라 이색 저색 발라봐도 신통치 않아 마지막으로 채택한 색이 검음이다.

검은색은 식자층의 색이며 철학의 색이다. 하지만 마오의 시대에 검은색의 黑는 반동을 뜻했다. 혁명과 전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검은색은 또 침착함과 깊음의 상징이다. 경극의 얼굴그림에서 검은색은 정직하고 고상한 인품, 공평무사의 상징이다.경극에 나오는 포청천의 얼굴은 까맣다. 바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백색 역시 철학의 색이다. 그러나 결백과 터부의 색이기도 하다. 먹선이 지나고 난 백색은 사색의 공간이다. 상상의 공간. 중국인의 깊음이 어우러지는 흑백의 절대 조화의 공간이다. 고대에 백색은 결단의 색 이었다. 제후들이 맹약을 할 때는 백마를 잡아 그 피로 글씨를 썼다한다. 그러나 현재의 일상생활에서 백색은 가장 꺼려지는 터부의 색이다.

중국인에게 백색은 죽음의 색이다. 흰 양초는 장례 때만 쓴다. 흰색봉투는 조의금을 낼 때만 사용한다. 결혼식 축의금을 흰 봉투에에 담아가서 황당해하는 경험은 물려줄 만한 것이 못된다. 이러한 터부 때문에 경극 얼굴 그림에서 백색은 주로 간사하고 거친 성격을 나타낸다. 삼국지의 조조가 얼굴에 온통 밀가루를 뒤집어 쓴 모양으로 묘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경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만 봐도 즐겁다. 흥분하기 시작한다. 어우러지는 노랫소리, 춤사위에 중국인들은 빠져든다. "낑낑낑 꺙꺙"꽹과리 소리와 현란한 원색, 무술적 몸놀림이 하나가 되는 희한한 예술이 경극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경극속에서 자신들의 자화상과 우상을 본다.

붉은 꽌위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성과 깊은 의리, 딱편 어깨에 민초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검은 포청천의 얼굴, 그리고 간악한 조조의 빤질거리는 하얀 얼굴. 일곱색깔 중국인을 이해하는 기초는 바로 이 색채 심리학이다.

중국인들은 전혀 촌스럽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할 뿐이다. 중국인들이 체크무늬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경극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근 300여개에 달하는 얼굴그림에 체크무늬는 없다. 경극이 사라지지 않는 한 중국인의 원색 선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원색을 좋아해도 꺼리는 색상 배합이 있다. 촌스러운 색깔을 꺼리는 표현으로 이런말 이 있다. "붉은 바탕에 녹색무늬, 죽은 개 색깔" 중국 젊은 멋쟁이 여성들이 가장 꺼리는 색상 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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