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제노바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가 원작인 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2014)’는 현대의학으로 치유될 수 없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언어학자 앨리스가 환자의 시각에서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자신의 기억을 인식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리처드 글렛저는 발음 장애로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글렛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손과 팔을 움직이지도, 먹는 것과 옷을 입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병이 앨리스가 겪고 있는 상황과 유사함을 알게 되자 서로의 병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을 이해하게 되고, 이를 영화화하게 된다.

글렛저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현장에 나와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나,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세상을 떠나 유작으로 남게 됐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병을 인지한 후 머릿속에서는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며, 그의 마음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매일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삶의 기억이 조금씩 지워져간다면 그 사람은 기억이 지워지기 전 무엇을 해야 할까?

앨리스는 언어학 교수로 교재를 출판했고, 전 세계적으로 강연을 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

어느 날 수업 중 ‘어휘’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헤매게 된다. 또한,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며 기억이 혼미해지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된다.

앨리스는 의사로부터 “당신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으며, 아이들에게도 유전되어질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복잡하고 난감해진다.

그리고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병이 악화되면서 남편과의 중대한 약속을 깨뜨리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자 가족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앨리스는 배제되기도 한다.

환자가 생기면 가족이 고통을 분담하게 되는데, 앨리스도 막내딸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막내딸과는 잦은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현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알츠하이머 협회를 방문해서 환자들을 둘러보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연설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하며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력과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을 한다.

앨리스는 “타인의 시선이나, 의식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나와 우리의 모습이 아닌, 병의 모습으로 인한 것”이라며 “병은 원인, 진행과정, 치료방법이 있기 마련이며, 자신의 아이들이, 다음 세대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지금 저는 살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기억을 못하는 제 자신을 질책하곤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을 향해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며,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애쓰고 있으며,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앨리스는 예전과 다른 우스꽝스런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를 보이는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타인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의식하게 된다.

‘스틸 앨리스’란 영화를 통해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나, 병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투쟁을 하는 환자들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존엄성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에게는 앨리스가 처했던 상황이 결코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서 하나씩 지워지는 일이 저항 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 때는 어찌해야 할까?

어쩌면 정상적으로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나’ 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도 모른다.

그러니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그런 나를 더욱 사랑해야 할 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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