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입니다. 11월에 내리는 가을비라서 그런지 참으로 고상하게 내립니다. 아마도 제게 재주가 허락된다면, 창호지 창문을 열어 살짝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방구석 저기 쯤 촛불하나 피워 놓고 묵향 가득한 난을 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그려봅니다. 난을 칠 때는 붓이 왜 아래에서 위로 가는 걸까요?

모든 것이 처음처럼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호흡을 멈춘 상태의 난의 밑그림은 11월에 내리는 이 비만큼이나 더함이 없는 검은 점 하나 뿐으로, 공허함을 메우지 못합니다.

못내 감출 수 없는 두려움에 올려친 난. 중년여자의 차마 토해내지 못한 탁한 숨소리가 난의 잎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이 비가 11월 가을하늘에 난을 치고 있는 듯합니다. 아주 고상하게 말입니다.

11월은 참 고마운 계절인 것 같습니다. 조그마해진 염치없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섬주섬 빗속에 멀리 있던 마음을 잡아 보려합니다. 조그만 마음주머니마저 비워질까봐 말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 11월비가 고마워집니다. 저는 이것을 동작치유의 29번째 이야기라고 하려합니다.

해보기 :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팔을 쭈욱 내밉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껴봅니다. 이때 몇 개 남지 않은 노란 은행잎도 함께 연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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