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도, 위장도 없이 내장이라곤 '간'밖에 없는 강철판의 사나이 떵샤오핑이 등장했다. 떵이 일찌감치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 떵샤오핑은 일찌감치 외국물을 먹고 중국은 지구촌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평생 이도 한번 안 닦으면서 죽의 장막 속에서 살기를 원했던 마오와 궁합이 맞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 해서 한때 마오의 후계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막판에 우파로 몰려 숙청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강철판의 사나이 떵샤오핑은 마침내 중국을 휘어잡는다. 그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웠다. 고양이가 쥐를 잡 잡으면 됐지,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떠냐는 논리다. 떵 역시 마오처럼 중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감'을 잡고 있었다.

몸을 뒤집은 중국인들, 그들은 이제 다른 세상이 보고 싶었다."개혁개방改革?放"그래 한번 열어 보자.바깥세상을 한번 받아들여 보자. 중국 인민들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바깥에 대한 호기심을 떵이 예리하게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러나 개방을 법에 일일이 맡기다가는 말 많고 탈 많은 당내투쟁에서 표적이 되고 말일. 총명한 그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의 어록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단 조금 열어봐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닫는다.”

‘改革?放’단 4글자로 13억이 넘는 인구를 20여년 이상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틀을 놓은 떵,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감'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이기에 그들은 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법치는 정치의 예술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치는 정치의 반찬인 뒷거래를 망쳐놓을 어색한 존재. 중국인들의 논법에 의하면 법치는 교과서요 인치는 예술. 당연히 중국의 지도자들이 예술의 경지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러해서 권력을 잡은 떵은 당연히 다음 주석을 골라 놓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중국 인민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떵은 사실 주석을 고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짱저민의 등장. 그러면 왜 떵은 당시 멀쩡하던 쨔오즈양을 버리고 짱저민을 발탁했을까? 기록들을 보면 오히려 짱저민 보다 더 논리적인 인물이 쨔오즈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쨩저민은 합리적인 인치, 즉 떵이 마음에 그리고 있는 사리사욕을 부리지 않는, 능력 있고 정직한 인치를 할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반면에 쨔오즈양은 중국 최초로 법치를 중국에 끌어들이려던 인물 이었고,이점을 떵은 못미더워 했던 것이다.

민주주의 도래 .그러나 중국의 현실과 민주주의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쨔오즈양은 천안문사태를 기화로 중국 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자 했다. 쨔오즈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당장 우리에게 맞지 않지만, 낙후국가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 됩니다.“

떵의 대답은 이렇다. "내말이 바로 그거야. 하지만, 구체적 방법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근데 중국문제에서 가장 중요한건 안정이야. 절대로 중국이 혼란에 빠져선 안 돼".

바로 이 부분이다, 이른바 ‘개발독재이론’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정치철학에 대해 쨔오즈양과 덩은 조금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즉 떵은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꽉 틀어 쥔채 앞으로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아닌 떵에 의해 발탁된 쨔오즈양은 최고의 권좌에 오른 뒤 잠시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정치적 인기에 마음이 쏠린 것 이었다. 개혁개방과 함께 들어온 민주주의 열풍은 마침내 천안문으로 밀려들었다. 3000명 학생들의 항의단식의 시작. 부패타도. 빼이징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보는 쨔오즈양과 떵의 시각은 달랐다. 떵은 계엄령 선포를 가결했다. 회의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쨔오즈양은 천안문으로 달려가 학생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단식중단과 귀가를 타일렀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 병을 이유로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짱즈민이 발탁됐다. 공산당 투쟁 내력, 중국 최대의 도시 상하이 당서기, 시장의 경력,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언어 능력, 전기과 출신의 과학적 소양, 청렴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강점인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확실한 반감과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투철한신념, 중국 전통의 문화적 소양 등 무엇 하나 떵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짱저민이 갖추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확실한 반감과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은 떵으로 하여금 서구 민주주의의 언저리를 기웃대던 쨔오즈양을 주저앉히고, 짱을 발탁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